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무거나 Oct 11. 2021

제법 안온한 날들을 읽고

아이는 마지막 수필 수업에 참가하여 듣고 있다. 나는 아이의 수업이 끝나는 동안 도서관에서 시간을 때워야 했다. 들고 온 '눈 떠보니 선진국'을 읽다가 내가 소유한 책 보다 여기 오지 않으면 읽을 수 없는 책을 읽자고 마음을 바꿨다.

가을을 맞이하여 도서관에는 다채로운 행사 포스터들이 붙 있었다. 첫 번째 온라인 강의는 남궁인이었다. 내가 구독하는 시사인에서 가끔 글을 기고하고 몇 달 전 이슬아 작가와 책을 낸 의사, 의사라는 전문직에 책도 몇 권이나 낸 부러운 인간 이것이 남궁인 작가에 대한 내 배경지식이었다. 그의 책을 한 번도 읽어보진 못했다.

그의 책이 제법 많았지만 가장 끌리는 제목의 책을 골랐다.

'제법 안온한 날들' 파란색에 눈을 꼭 감고 있는 표지, 그래 이거다.

솔직히 아무 기대 없이 책을 펼쳤다.

  기대 없이 펼친  첫 장 '평생의 행운'에서 나는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준비된 휴지는 없고, 빌린 책에 내 눈물이 닿게 할 수 없기에 손가락으로 눈물을 계속 닦을 수밖에 없었다.

조용한 도서관에서 나는 소리 없이 한참을 훌쩍였다.

뇌출혈로 2년간 투병, 엄청난 위장관 출혈, 간경화를 겪었던 할머니의 응급실 행은 모두 다 같은 생각을 했다. 할머니는 죽을 것이다. 심폐소생술 끝에 결국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보호자로 온 할아버지께 남궁인 작가는 "이미 돌아가셨어요. 현장이 안 좋습니다. 저희가 정리하고 말씀드릴게요"라고 알려 드린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꼭 환자에게 할 말이 있다고 지금 보여 달라고 한다. 막을 논리가 없던 작가는 할아버지에게 돌아가신 할머니를 보여드린다.

할아버지는 피투성이가 된 할머니의 손을 붙들고 자신도 피범벅이 된 손으로 울먹이며 말한다.

자네는 나와 함께 오래 살았네. 감사했네. 여보. 당신. 나는 행복했네. 많은 사람 중에 자네와 평생을 함께해서 나는 행운아였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순간이 없다네. 이제 자네가 떠났으니 나는 오래 살지 못할 것일세. 먼저 가 있게. 좋은 곳이라고 들었네. 여기보다 평온한  곳이라고 들었네. 어떻게 우리가 같이 한날한시에 가겠나. 대신 자네가 먼저 간 것일세. 곧 따라가겠네. 자네 지금 모습이 조금 수척할지라도, 자네의 영혼은 평안해졌음을 믿는다네. 자네가 이런 모습이라고, 나는 자네가 고통스러웠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네. 그래서 나도 괜찮네. 곧 보세. 좋은 곳에서 헤어지지 않겠네. 사랑하네.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니 잘 가게. 잘 가게나......

숱한 죽음을 목격한 응급의들도 눈물을 감추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고 적혀 있었다.

나도 그 현장에 있는 것처럼 슬픔이 고스란히 전해 왔다. 할머니의  긴 투병 생활에 할아버지는 일말의 지침도 없으셨을까? 깊은 병환, 고령 그 뒤에 죽음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생각했다.  무덤덤하게 할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리라 나는 생각했다. 그런데 나의 예상과 달리 할아버지는 무척 흐느껴 우셨다. 서로의 사랑 크기를 비교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겠지만 나는 문득 이런 사랑을 할 수 있을까? 내게 질문해 보았다.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보인 사랑은 슬프고 아름답고 숭고했다. 나도 이런 사랑을 하고 생을 떠날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아직은  No라고 내 마음이 대답을 했다. 조금 더 나이가 들면 Yes라고 내 마음이 말해줬으면 좋겠다. 내 이름은 남기지 못해도 사랑의 흔적은 남기고 떠나고 싶다.

삶과 죽음의 사투를 매일 마주하는 응급의 남궁인 작가가 기록하고 따뜻하게 관찰한  '제법 안온한 날들'  

삶과 죽음을 다투는 치열한 직업이 아님에도 나의 일상에 조금 다른 것이 침범해도 내 마음은 일렁인다. 책이 주는 제목만으로 내 마음을 일렁이게 한 잡념들이 조금 가라앉는 느낌이다.

다가오는 토요일에 작가가 온다. 온라인으로만 하는지 직접 만남을 가질 수 있는지 도서관에 문의해 봐야겠다. 만약 직접 그를 만날 수 있다면 그의 다른 책을 사서 그를 만날 것이다. 닥쳐오는 업무로 스트레스를 받는 요즘이지만 다가오는 토요일은 미리부터 설렌다.

  토요일을 생각하며 나는 제법 안온한 날을 맞을 것 같다.

제법 안온한 날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