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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거나 Jun 28. 2021

나도 밤에 걷고 싶다

밤을 걷는 밤을 읽고

'밤을 걷는 밤' 책을 소개한 브런치 작가의 글을 읽었다. '익숙한 그 집 앞' 이후의 오래간만에 낸 그의 에세이집이었다. 예전의 나였으면 당장 구매를 했지만 토이, 유희열에 대한 마음이 조금 식은 나는 당장 구매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집에 계속 책이 쌓여서 인테리어를 망친다는 동생의 구박과 사놓고 읽지 않은 책도 제법 있기에 며칠을 고민했다. 그러던 중 책모임 회장님이 읽고 싶은 책을 보내주면 회원들에게 책을 사줄 수 있다는 쪽지를 보고 냉큼 나는 유희열의 '밤을 걷는 밤'을  

쪽지로 보냈다. 그렇게 나는 유희열의 '밤을 걷는 밤'을 만났다.

  이 책은 유희열이 책을 목적으로 쓴 에세이 집이 아니라 카카오티비에서 '밤을 걷는 밤'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그의 생각들을 정리한 책이었다.

책을 받고 먼저 한 일은 카카오티비를 찾아보았다. 카카오티비에 생각보다 많은 프로그램이 있는 것을 보고 시류에 편승하지 못한 옛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밤을 걷는 밤'을 카카오티비에서 검색했다. 무료로는 본영상을 다 볼 수 없는 1분 보기 영상이었다. 그 동영상은 가슴을 일렁이게 만들었다. 유희열이 아닌 학창 시절 좋아했던 희열님이 계셨다. 매일 밤 12시 워크맨 이어폰을 꽂고(아 나의 연식이 나타나는ㅠㅠ ) 책상에 앉아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문제집을 펼쳐놓고 그를 기다렸다. '유희열의 FM 음악도시'  시그널 음악은 나만의 오롯한 밤을 알리는 신호였다. 그 신호탄이 울리면 나는 정제된 밤의 세계로 깊숙이 들어갔다. 루이치 사카모토의 'Rain', 쳇 베이커의 'My funny valentine', 를 유희열의 FM 음악 도시를 통해 알게 되었다. 지금은 애써 찾아 듣지 않지만 유희열의 음악 도시는 각양각색의 뮤지션을 소개해주고 내 귀를 호강시켜줬다. 밤을 걷는 밤 1분 동영상에서 유희열이 아닌 희열님은 FM 음악 도시 시그널 음악에 맞춰 서울의 밤거리를 걷고 있었다. 그 동영상을 인트로로 나는 책을 읽었다.  

  첫 챕터는 희열님이 어릴 때 살던 청운효자동이었다. 희열님에게 그곳은 어릴 때 놀던 친구들은 그곳에 없지만 늘 변함없는 마음속 행정 구역이라고 적혀 있었다. 내가 어린 시절 살던 아파트는 재개발이 되어 흔적도 없고, 내 딸은 직장이 4년마다 옮겨야 하는, 차 운전을 싫어하는 월세사는 엄마를 뒀기에 메뚜기처럼 옮겨 다녀야 했다. 나도 딸도 긴 호흡을 주는 변함없는 마음속 행정 구역이 없다.

내 편의를 위해서 이리저리 옮겨 다녀 아이에게 변함없는 "마음속 행정 구역"을 주지 못해 미안하다. 한 곳을 금방 지루해하는 엄마보다 집을 제일 사랑하는 우리 딸이 스스로 변함없는 행정구역을 정하는 것이 더 빠를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역마살 있는 엄마 때문에 공간은 시시각각 변할 수 있지만  딸이 가장 안정감을 주는 공간이 가족이 있는 곳이고 생각할 수 있도록 바르게 잘 키우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서울 시민이 아닌지라 그가 걷던 곳을 글만 읽고 상상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가 걷던 곳이 너무 궁금하여 결재를 해서 그가 갔던 곳을 영상으로 확인해보았다. 읽었던 곳보다 아름다운 곳도 있었지만, 내 상상으로 남겨둘 걸 하는 곳도 있었다.

이 책은 토이를 좋아했던 10대, 20대의 내 모습을 꺼내볼 수 있어서 좋았다.

서울 시민은 갈 때가 참 많아서 좋겠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5년이 정말 단 1초도 기억 나지 않을까?/희열님은 남자고 스텝진까지 붙어서 안전하니 밤에 산책이 가능하지 않을까?/하는 부러운 감정들었다.

부러우면 지는 건데 해가 늦게 짐에도 운동이라고는 실내 자전거밖에 못하는 내가 안타까웠다. 긴 시간 직장에서 있었는데 나를 위해 또 밖에 나가면 딸아이가 좋아하지 않는다. 10분 남짓 걸으면 큰 호수를 도는  멋진 산책로가  집 주변에 있음에도 직장에서 돌아왔을 때 너무 반가워하는 딸아이의 눈을 보면 선뜻 '엄마 운동하고 올게!'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저녁과 밤 시간만큼은 아이와 같이 있어줘야 아이의 마음도 내 마음도 편할 것 같다. "나도 같이 가!"하고 말을 하면 지금의 고민도 훅 날아갈 터인데 궁둥이가 무거운 집순이 딸은 한치도 양보하지 않는다. 낮에도 같이 있어줄 수 있는 여름 방학을 노려야겠다. 그때엔 매우 가벼운 마음으로 "엄마 걷기 운동하고 올게! 하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때에는 심취한 정치 유튜브보다 토이, 페퍼톤스나 브로콜리너마저의 음악을 들으며 젊은 시절 내 모습을 머릿속에 꺼내면서 팔을 열심히 휘저으며 파워워킹을 해야겠다.

나도 밤을 걷는 밤을 맞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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