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작가의 2월의 인스타라방책으로 선정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꼭 한번 읽고 싶었던 책이었다. 이슬아 작가도, 방송에서도, 내가 구독하는 잡지에서도 올해의 책으로 이 책이 많이 언급되었기 때문이다. 책에 대해 잔뜩 기대를 했지만 소문난 잔치에 혹여 먹을 것이 없지 않을까 우려도 되었다. 다행히 이 책은 전자다. 빌리지 않고 소장해서 더 좋은 책이다. 학부모들이 내가 결혼하기 전, 아이를 낳고 키우기 전 "부모가 아니라서 그래요.. " " 애를 안 키워봐서 입장을 잘 이해하지 못하네요."라고 던졌던 말들이 있다. 그 말은 일부 맞는 말도 있지만 김소영 작가님을 보면 그 말은 모두 다 틀린 말 같다. 오히려 부모가 된 나, 선생으로서의 내가 부끄러워지게 하는 책이다. 글방의 선생님이지만 그녀는 어느 아이의 부모는 아니다. 하지만 그녀가 어린이를 관찰하는 눈과 마음은 여느 부모보다 선생보다 다정하고 정성스럽다. 나는 아이들의 말을 이렇게 정성스럽데 담아 본 적이 있었을까 반추해보았지만 그냥 일희일비하고 흘러가게 내버려 뒀다. 김소영 작가가 글로 써 내려간 무수히 많은 말들이 인상 깊었지만 나는 특히 '시간이 걸릴 뿐이에요'라는 챕터가 좋았다. 글방에 다니는 현성이가 끈을 묶어야 하는 풋살화를 신고 오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새로 산 신발이라 엄마가 아침에 끈을 묶어 주셨지만 글방에서는 신발을 벗어야 했다. 묶는 게 어려우면 선생님이 나중에 거들어 주겠다고 하고 현성이는 글방에 들어간다. 그리고 그날 현성이와 "시간이 흐르면'이라는 그림책을 읽는다. 시간이 흐르면, "아이는 자라고 연필은 짧아져." 시간이 흐르면, "빵은 딱딱해지고 과자는 눅눅해지지" 그리고 이어서 신발 끈을 묶는 어린이 모습이 등장하며 "어려웠던 일이 쉬워지기도 해"라는 문장을 읽으며 작가의 마음이 뭉클해져서 현성이에게 "그러니까 어른이 되면서 신발 끈 묶는 일도 차차 쉬워질 거야."라고 말했다. 나는 "네"라는 반응을 예상했는데 현성이의 말은 내 예상과 달랐다. "그것도 맞는데, 지금도 묶을 수 있어요. 어른은 빨리 할 수 있고, 어린이는 시간이 걸리는 것만 달라요." 어른보다 야무지게 잘 해내지 못한 어린이들을 보면서 다 영글지 못한 존재로 은연중에 그들을 낮게 봤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반성이 들었다. 시간 안에 결과물을 만들지 못하면 나는 그 아이들을 답답해하곤 했다. 어느 아이는 서툴러서, 어느 아이는 너무 완벽해서 조금의 실수도 용납치 않아 앞으로 나아가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찬찬히 나의 어린이들을 떠올려보면 현성이의 말대로 시간이 조금 걸릴 뿐이지 스스로 할 수 있었다. 내 목표에 어린이들을 도달하게 하려는 내 조급한 마음이 아이들의 성장을 방해한 거 아닌가 싶다.
"어린이를 기다려 주는 순간에는 작은 보람이나 기쁨도 있다. 그것도 성장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어린이와 어른은 함께 자랄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어린이를 기다려주면, 그런 어린이들은 조급한 우리들의 모습이 아닌 다른 어른이 될 것이라고 작가는 말했다. 느긋하고 여유로운 김소영 작가의 시선으로 나도 어린이들을 바라보고 싶다. 김소영 작가의 시선으로 나를 보면 나는 아이들에게 뻥도 잘 치는 고약한 어른이다. 화재경보기를 cctv라고 속이며 "부모님들이 너네 수업하는 거 다 보고 있어!" 하면 순진한 아이들은 허리를 곧게 세우고 자세를 가다듬는다. 내 나이가 100살이라고 하면 " 에잇 , 우리 엄마랑 비슷해 보이는데(눈썰미가 꽤 좋군!) / 30대처럼 보이는데(너님 젊게 봐줘서 고마워) 100살이면 우리 할머니 나이보다 더 많은데 선생님 나이 진짜 많다! 그런데 건강하시다.(너님 왜 이렇게 극도로 순진한 거니?)"라고 다양한 반응이 나온다. 결혼을 했다고 해도 사귀는 남자 친구 있냐(진짜 사귀면 바람이야)고 생각나는 대로 날 것 그대로 말하는 어린이들. 이 어린이들의 순진하고 착한 마음을 이용하는 어른이 되지 않도록, 그들의 착한 마음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으므로 우리 어른들이 나쁜 어른을 응징하는 착한 어른이 되어야겠다는 작가의 가르침을 또 한 번 새기게 된다. 김소영 작가처럼 어린이들의 행동과 말을 정성스럽게 담아 나도 성장하는 어른이 되어야겠다. 나긋나긋한 육아서, 소곤소곤 속삭이는 친절하고 다정한 교육서 같은" 어린이라는 세계"를 많은 어른들이 읽어봤으면 좋겠다. 더 이상 정인이와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아름다운 어린이의 세계와 함께 우리 어른들도 아름다운 어른들의 세계를 만들어 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미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현성이의 말처럼 " 시간이 걸리고 있는 것일지도......" 성숙한 어른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김소영 작가의 우아한 문체도 너무 갖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