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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거나 Feb 11. 2021

꽃 같은 책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를 읽고

  김금희 작가의 2월 인스타라방책으로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선정되었다. 유시민 작가의 알릴레오에서도 박완서님의 '엄마의 말뚝'을 다뤘는데 김금희 작가도 박완서님의 소설이었다. 박완서님이 돌아가신지 10년째 되는 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그분의 책도 다시 쁘게 단장을 하고 독자들에게 돌아왔다. 대학생이었을 때, 박완서님의 소설과 산문집을 꽤 많이 읽었다. 그런데 글로 남겨두지 않은 탓에 모든 내용과 그때의 생각이 증발해버렸다. 다시 한번 기록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이 책은 서울 대학교를 다니던 내가 전쟁 때문에 학업을 중단하고 생의 전선에 뛰어드는 과정을 담았다. 밥을 먹을 수 있을까? 적으로부터 안전할까? 라는 생의 근원적인 물음보다 자신들이 안착한 곳이 이데올로기적으로 아군의 땅인가? 적군의 땅인가가 중요했다.

전선이면 보통 전선인가. 이데올로기의 전선 아닌가. 어떻게 온전하게 살아 돌아오기를 바라겠는가,라는 체념 끝에는 분노가 솟구쳤다. 이데올로기 제까짓 게 뭔데 양심도 없지, 오빠 같은 죽음이 양심이 짐이 안 되는 이데올로기 따위가 왜 있어야 하느냐 말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먹고사는 문제도 그까짓 이데올로기도 어느 하나 순탄한 것이 없었다. 서울 대학교를 다니다가 만 나는 올케와 함께 빈집을 털기도 하고 오빠가 죽은 뒤에 가장이 되어 피엑스에 취직하며 처절한 삶을 이어갔다. 이 책의 줄거리는 전쟁 중의 한 여인이 겪게 되는 파란만장한 삶 이야기라고 단순하게 요약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은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내가 소설 속의 나로 몰입하며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 기분으로 소설 속 세계를 누비는 진귀한 경험을 했다. 나는 소설 속의 미스박이 된 채, 집털이 범이 되어 심장이 쫄깃한 경험도 해 보았고 근숙 언니와 찻집을 하다가 쫄딱 망했을 때의 허망함을 느껴보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은 글만으로도 독자로 하여금 그 세계를 온전히 그려볼 수 있는 박완서 님의 글 때문이다. 아래 글은 파자부에서 초상 부서 옮기게 되면서 멀뚱멀뚱 서 있기만 해서  월급만 먹는 눈치 덩이 미스 박, 내가 초상화부에서 다시 기세 등등한 것을 묘사한 부분이다.

내 나이 스물둘이었다. 파마도 하고 엷게나마 입술칠까지 하게 된 것이 어찌 타의에 의해서만이겠는가. 그렇건만도 조금씩 모양을 내고 싶어 하는 자신에 대해 괜히 남의 탓을 하려고 했다. 화가들 때문에, 초상화부를 위해서 내 몸 아낄 줄 모르고 대단한 희생을 하고 있는 것처럼 여기면서 안하무인으로 행동했다. 모양을 낸다는 건 곧 양키들을 겨냥한 적극적인 자기 상품화에 다름 아니라는 피엑스의 특수성 때문에도 그러했지만, 초상화부 매상의 꾸준한 신장세 때문에도 나는 마음대로 세도를 부렸다. 뒷짐을 지고 화가들 사이를 누비며 그림 솜씨가 마음에 안들면 손끝으로 톡톡 책상을 두드리면서, 아무개 씨, 그것도 그림이라고 그렸어요. 발가락으로 그려도 그보다는 낫겠어요, 양키 돈이라고 거저 먹으려 드는 게 아녜요, 이런 그림 떠맡기려면 내 입이 얼마나 해진다는 거나 알구 이래요? 하며 나는 마치 방과 후에 열등생만 남겨 놓고  억지로 과외 지도 시키는 여선생처럼 교만하고 짜증스럽게 한숨도 쉬고 신경질도 부렸다.

박완서님의 문장 하나하나를 따라가다 보면 나는 어느새 내가 아닌 미스 박이 되었다. 우 디테일하게 그 세계에 접속할 수 있었다.

 박완서님의 두 번째 자전 소설, 그 산에 정말 거기 있었을까 중에 나는 주인공이 목련 나무를 보는 부분이 슬퍼서 가장 인상 깊었다.

목련 나무였다. 아직은 단단한 겉껍질이 부드러워 보일 정도의 변화였지만 이 나무가 봄기운만 느꼈다 하면 얼마나 걷잡을 수 없이 부풀어 오르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 미친 듯한 개화를 보지 않아도 본 듯하면서 나도 모르게 어머, 얘가 미쳤나 봐, 하는 비명이 새어 나왔다. 그러나 실은 나무를 의인화한 게 아니라 내가 나무가 된 거였다. 내가 나무가 되어 긴긴 겨울잠에서 눈뜨며 바라본, 너무나 참혹한 인간이 저지른 미친 짓에 대한 경악의 소리였다.

아름다운 봄꽃을 보면 아름다워하는 것은 마땅한 인간의 본능이거늘 그 본능마저 억눌려야 했던 그 시절의 사람들의 삶. 그 산이 거기 있었을까 박완서님은 물음표로 제시했지만 이 책을 다 읽으면 그 산은 정말 거기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전쟁 중에도 인간임을 포기하지 않고 의연하게 버티고 살아가는 군상들이 있었기에 단연코 그 산은 거기 있었다고 말이다.
곧 봄이 온다. 코로나로 사람들이 지쳤고 지쳐간다.  부풀어 오르는 목련을 보고도 기뻐하지 못하는 아픈 사람들이 작년보다 줄었으면 한다. 2021년도는  미스박의 말처럼 더 이상 마모되는 삶이 없었으면 좋겠다. 자유롭게 기를 펴고 성장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는 박완서님의 첫 번째 자전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세 번째 자전소설 '그 남자네 집'도 찬찬히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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