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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거나 Jan 24. 2021

안느끼한 산문집을 읽고서

안느끼한 산문집을 재미있게 읽다가 좋아하는  작가의 북클럽 책을 읽어야겠다는 의무감에 잠시 내려놓았다.  그런데 작가님의 추천 책이 너무 어려웠다. 쥐가 날 것 같은 뇌를 식히고 싶어 나는 다시 안느끼한 산문집을 펼쳤다. 쭉 읽고 바로 서평을 썼으면 좋았는데 다른 책을 읽다가 돌아와서 그런지 나의 끊어진 호흡이 아쉬웠다. 그래도 다시 읽으니 버티는 삶을 담담하게 풀어낸 이슬 작가의 세계에 금방 몰입이 되었다.
이 책은 내가 구독하는 브런치 작가의 서평을 읽고 책 제목도 매력적이고 다른 내용도 궁금하여 읽게 되었다. 작가는  내가 즐겨봤던 SNL 프로그램의 막내 작가였으며 내가 가끔 보는 프로그램 '신나는 토요일'의 작가이기도 하다. 그래도 방송 작가인데 제법 벌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는데 현시대의 물정을 너무 모르는 나만의 착각이었다.
'가난을 팔아 돈을 벌 수 있다면' 챕터를 읽으면 그녀의 가난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1000만 원이 없어도 잘 살 수 있는 주인이 1000만 원을 올리면 재정적 아사 직전인 처자들에게 보증금을 천만 원 올려달라고 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부동산 아저씨가 무슨 그런 집에  천만 원을 더 주고 사느냐고 당장 나오라 말에 이슬 작가와 그녀의 룸메는 분노와 신뢰를 가득 담아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고 부동산 아저씨가 보여주는 집을 보러 가기 시작했다. 그들의 재정에 맞춘 집은 하나 같이 붉은 벽돌의 외형을 하고 있었다. 어떤 집은 천장이 기울어지거나 독한 하수구 냄새가 나고 어떤 집은 곰팡이 꽃이 무수하게 피어 있었다.  보여주는 이도 보는 이도 머쓱하게 만드는 집,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는데 뭔가 잘못한 것 같은 상황
결국 이슬 작가와 룸메는 그 돈으로 갈 수 있는 전셋이 없었다. 이슬 작가는 자신의 차고 넘치는 가난을 팔고 싶은 자신의 마음을 담배연기로 털어내고 이자람 밴드의 '나의 가난'을 씩씩하게 부르며 살던 옥탑방으로 걸어가면서 이야기가 끝난다. 천만 원이 없어도 잘 살 수 있는 주인 덕분에? 두 처자들은 빚을 내서 결국 꿋꿋하게 가난을 버티며 살아가야 했다.
2000에 월 68로 옥탑방 밖에 살 수 없는 우리나라 서울의 물가에 기가 눌린 동시에, 나는 이슬 작가가 참 단단한 사람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름도 비슷한 이슬아 작가의 삶도 살짝 오버랩되었다. 가난해서 슬프지만 젊어서 찬란하고 유쾌한 삶을 그녀는 A4 세장에 매일을 담담하게 담아냈다. 그래서 '안느끼한 산문집'이 탄생했다. 나는 그녀가 이 책으로 얼만큼 그녀의 삶이 풍족해졌는지 모르지만 그녀의 반려동물과 그녀의 룸메가 조금은 더 나은 주거 환경으로 옮겼길 바란다.  그리고 그녀의 두 번째 작품 '새드엔딩은 없다'도 10쇄 이상을 찍길 바란다.
그녀의 인스타그램을 보면 그녀의 냥이들과 함께, 자신의 책이 베스트가 된 것에 놀라워하며 기뻐하머 잘 살고 있는 듯하다.

이슬아 작가의 대범함도, 강이슬 작가의 유쾌함도 그녀들이 스스로 삶을 개척해가는 원동력은 모두 그녀들을 온전히 지지해주고 사랑하는 부모님 덕분인 것 같다는 것을 그들의 책을 읽어보면 느낄 수 있다.  
이제 10살인  내 딸도 작가가 되고 싶어 한다. 친정 엄마는 그런 꿈은 밥 벌어먹고 살 수 없다고 어린아이에게 안된다고 한다. 나는 내가 되고 싶었던 작가의 꿈을 그녀가 이뤄주려나 내심 반갑기도 하고 작가의 삶이 녹록지 않음을 이슬 작가의 책을 읽고 더 알아버렸고, 작가는 엉덩이 힘으로 하는 것이라는 풍문을 알기에 창작자로서 살아가는 내 딸의 삶이 걱정도 된다. 아직 10살 어린아이이기에 오지랖 넓은  나의 걱정은 잠시 접어두련다.

 
90년생 작가들은 인스타를 통해 그들의 삶을 자주 보여준다. 해시태그와 사진 몇 장으로 독자와 소통을 할 수 있으니 블로그, 유튜브보다 호흡이 길지 않은 별 그램 어플은 작가들에게나 그것을 통해 소통하고자 하는 독자들에게나  꽤나 매력적일 것 같다. 나와 비슷한 80년대 생 작가들은 그들의 삶을 보여주는 작가도 있으나 강연이나 북 토크를 통해서 만나야 하는 작가들이 많은 것 같다.  우리 딸이 만약 작가가 된다면 그녀는 어떤 어플로 독자들과 만나고 어떤 이야기를 펼쳐 나가야 공감을 얻게 될지 사뭇 궁금하다. 하나 바란다면 미래의 작가들의 산문집에는 가난한 삶을 버티는 존버 정신 같은 것은 이야깃거리가 되지 않길 바란다. 미래의 세대들에게도 버티는 삶을 요구하는 것은 너무 잔인한 것 같다.
이 책은 학창 시절 제법 공부를 잘했다는 이유 하나로 안정적이고 제법 괜찮은 직업으로 살아가는 80년대생 내가 지금도 이 치열하게 살아가는 90년생 젊은이들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게 하는 책이다. 강이슬 작가처럼 젊은 사람들은 이 책을 보고 위로를 받길 바라며 나처럼 얄팍한 기득권이 된 사람들은 조금 미안해하며 베풀며 살아가길 바란다.

얼마 전 호기심에 돋보기를 빌려서 껴보았다. 호기심에 빌렸는데 글자가 제법 잘 보여 살짝 충격을 받았다. 보는 즐거움, 읽는 즐거움이 내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꽤 크다. 이 즐거움이 옅어지는 것은 너무 슬프다. 루테인 한 알을 블루베리 한소큼을 입으로 털어 넣어야겠다.
눈은 늙어가지만 생각은 늙지 않길 바란다. 나도 슬아 작가와 이슬 작가의 부모님처럼 자식에게 무한 사랑을 주는 부모이고 싶다. 그 사랑의 끝이 내 딸의 손에서 작품으로 짜잔 하고 탄생하면 얼마나 좋을까?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며 침침한 눈알을 굴려야겠다. 빨리 눈 찜질기가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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