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아 작가가 장기하와 방송을 한다고 했다. 그 둘의 콜라보가 재미날 것 같다. 장기하가 책을 출간했다고 한다. 장기하가 책을? 나는 내 스케줄표에 방송 날짜를 적어두었으나 그날 방송을 듣진 못했다. 그런데 "상관없는 거 아닌가?"란 책 제목은 언젠가 꼭 읽어보아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책을 장바구니에 담고 싶었지만 며칠 전 동생이 "책 좀 그만 사, 한번 보고 읽지 않잖아. 빌려봐 제발. 집에 책 짐이 늘어나는 거 싫어!"라는 잔소리가 생각나 도서관에 책 예약을 해놨다. 몇 번 공짜로 책을 살 기회도 있었지만 책 예약 순번을 기다려보자는 쓸데없는 오기로 나는 2달 만에 이 책을 접했다.
장기하라는 뮤지션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한번 공연을 본 적도 있고 그의 음악도 꽤 많이 플레이리스트에 담아두었다. 좋아하는 뮤지션이긴 했지만 그가 펴낸 책에 대한 기대는 단순 호기심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책이 괜찮았다. 음 살걸 그랬나 싶은 책이다. 이 책에 장기하가 언급했듯이 기대를 안 했던 영화, AI가 추천해줬던 chill mix 음악들이 좋았듯이 나도 그에게 살짝 미안하지만 기대치 없이 접한 책이라 더욱 좋았다. 그리고 그는 뮤지션으로 나는 직장인으로 그는 파주에서 나는 C도시에서 그는 창작을 업으로 나는 창작을 취미로 살아가는 점이 다르다. 하지만 나이 때가 비슷해서인지 '프렌즈'에 대한 언급, 그를 유명하게 만든 '싸구려 커피'에 대한 추억에 관한 부분을 읽으면 나와 사는 곳이 다른 먼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불 킥을 차고 싶은 순간이지만 어린 날의 나는 그깟 성적이 뭐라고 하나만 틀려도 부들부들 떨고 그랬었다. 1개밖에 안 틀린 나를 칭찬하지 못했고 1개나 틀린 나를 미워했다. 그깟 성적이 뭐라고 말이다. 그렇게 좁은 시선으로 대학을 들어갔고 직장을 갖게 되어 오늘 40대의 문턱에 왔다. 내 직장에서도 승진 코스를 밟을 수 있지만 대학과 직장을 다니면서 나는 돌을 맞았는지 내 스스로 경쟁 구도에서 밀려나는 삶을 택했다. 나보다 나이 어린 후배들이 어느 날 승진해서 나의 상사가 되는 날이 있겠지만 뭐 "상관없는 거 아닌가?" 암기력이 좋았는데 지금은 굳이 외우려 들지 않는다. 그래도 뭐 "상관없는 거 아닌가?"
"상관없는 거 아닌가?"라는 문구는 삶을 다 산 듯 관조적이고 힘을 빼는 말 같지만 나처럼 생의 뚜렷한 목표 없이 평범하게 소소한 일상을 누리는 삶도 괜찮다는 위로의 말 같다. 모두들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자수성가하는 삶을 살 필요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책을 읽는 내내 그의 생각에 동의했다. 책에서 그가 언급한 비틀즈의 Abbey Road의 노래도 들어보았고, 나의 뮤직 chill mix가 궁금하여 뮤직 어플이 추천해주는 음악도 들어보았다. 혁오와 적재가 만든 동백꽃을 추천해줬다. 그리고 이 책에서 언급한 '찬실이는 복도 많지'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영화는 계륵 같은 넷플릭스에는 나오지 않아 숙제로 남겨두었다.
그리고 그의 책 '시대를 앞서간 명곡' 챕터를 읽고 생각이 바뀌었다. 얼마 전 빅뱅의 노래를 들으면서 빅뱅 노래는 요즘 들어도 참 세련되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요즘 들어도 촌스럽지 않은 것이 잘 만든 것의 반증이라고 믿었다. 과학기술은 앞으로 진보하지만 예술은 앞으로 나아가는가? 인간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높은 수준의 아름다움을 추구하게 되는가? 는 그의 끝없는 질문을 보고 옛 음악을 대하는 옛 문학 작품을 대하는 나의 자세에 돌을 한 대 맞는 기분이었다. 현대의 잣대가 세련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자이다. 그냥 다른 것보다 트렌디할 뿐 트렌디하지 않더라도 그것을 향유하는 사람이 있다면 뭐 "상관없지 않은가?"
딸이 엄마는 내가 공부를 잘하고 대학을 좋은 데 갔으면 좋겠냐고 물었다. 나는 이 책을 들이밀며 "상관없는 거 아닌가? 했다. 다른 엄마들은 공부 잘하라고 한다던데 엄마는 이상하다고 했다. 그래서 더 좋다고 했다. 엄마는 내가 꼴등을 해도 되냐고 물었다. 나는 또 책을 들이밀며 "상관없는 거 아닌가?" 했다. 그 외에 물음에도 이 책을 들이밀었지만 마지막 물음에 이 책을 들이밀었을 때 발끈했다.
"엄마는 내가 행복 안 해도 상관없어?" 아차. 물음을 흘려듣고 책을 내밀었다. 니 행복은 상관있다고 했다. 네가 공부를 잘하든 대학을 잘 가든 상관은 없는데 네 생각을 표현하는 글을 쓰고 행복하게 사는 것은 상관있다고 말하며 꼭 안아줬다. 딸아이의 얼굴에 웃음꽃이 폈다.
자녀의 행복만큼은 상관있지만 대부분 내 인생은 어떻게 흘러가든 상관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사법부가 나의 투표권에 대해 응징하는 요즘을 보니 그건 참 상관있는 것 같다. 나는 민주주의 시민으로 살고 싶기 때문이다.
이 책을 나처럼 40대 초반의 사람이라면 가볍게 읽어볼 만한 것 같다. 가볍게 읽히지만 읽고 나서 드는 생각들은 제법 묵직하다. 나의 서평이 그 책을 읽어볼 만큼만 닿았으면 좋겠다. 다행히도 신은 이 책에 대한 기대치를 높일 만큼 수려한 글솜씨를 주시지 않으셨다. 허긴 어찌 쓰던 남한테 해악만 안된다면 상관없는 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