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로 끝난 게 맞는 건지… 제발 이로써 끝이기를!
11월 19일은 기존 상가 계약 만기일이었다. 11월 5일부터 철거를 시작하고 원상복구는 19일에 마무리되는 일정이었다. 계약 만기일 전에 원복까지 끝나는 걸로 예상했지만 19일 오전에도 바닥을 깔고 있었고 전등도 아직 달리지 않은 상태라 불안한 마음이 컸다. 역시나 만기일에 보증금은 반환되지 않았고, 나는 어쩔 수 없이 건물주인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후에 보낸 문자에 대한 답이 없어 건물주인에게 저녁에 전화를 걸었다. 그의 대답은 아직 원상복구가 제대로 되지 않았고 확인할 부분이 더 있다는 답변이었다. 그래서 철거와 원상복구를 담당한 사장님께 연락하여 건물주인의 의사를 전달하고 다음날 아침에 상가에서 뵙자고 말씀드렸다.
나는 소위 말하는 악덕 건물주인을 잘못 만난 케이스이다. 첫 개원이었고 모든 게 낯설고 어떤 걸 중요하게 봐야 하는지조차 아무 생각이 없던 시절이었다. 그렇다고 지금이라고 분간이 되는 건 전혀 아니다.
인수개원 1년 정도가 된 시점에 처음 이사를 생각했었다. 주변에서는 이전 주인과 마찬가지로 양도를 하고 넘기라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무슨 정의감에서인지 내가 겪고 있는 고통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시키고 싶진 않았다.
이전 주인은 2년 정도 병원을 운영하다가 나 같은 호구를 만나서 험한 꼴 안 보고 이 상가에서 탈출한 사람이다. 1년 정도 병원을 운영해 보니 이전 주인이 이 병원을 양도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건물주인이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전 주인은 건물주인의 독특한 성향과 운영 중이던 병원의 치명적인 단점들을 중개업자와 양수인에게 알리지 않았다. 심각한 문제점들을 알았더라면 나는 아마도 다른 물건을 찾아보았겠지만, 시장에 나와있는 다른 물건들도 그 나름대로 심각한 문제들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좋은 물건들은 대부분 비공개 시장에서 거래가 완료되고 공개적으로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하여 우여곡절이 많은 첫 개원이었지만 나는 이곳에서 처음 시작한 걸 후회하지는 않는다. 어떠한 선택을 하던 힘든 건 매한가지였을 거라 생각한다.
건물주인은 계약종료 임차인에게 원상복구를 핑계로 보증금을 늦게 반환하고 보증금의 일부를 돌려주지 않는 악명 높은 이력이 있는 사람이다. 나는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결심한 순간 변호사 상담부터 알아보았다. 지인을 통해 소개받은 부동산전문 변호사는 계약종료 통보를 내용증명을 통해서 하라고 했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 원상복구 소송도 준비해 보자고 했다.
3달 전 나는 변호사를 통해 계약종료 내용증명을 건물관리실에 등기로 보냈다.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계약종료 통보를 해야 하는 기한은 계약만료 2달 전까지이다. 내용증명을 갑자기 받으면 건물주인이 노할 수 있다는 주변의 의견을 반영하여 등기를 보내기 전 계약종료에 따른 퇴거를 구두로 먼저 전달했다. 등기가 도착한 날 건물관리실에서 병원으로 연락이 왔다. 건물이 점점 비어 가는 상황에 애가 타지 않는 건물주는 없을 거다. 병원을 양도해 보는 건 어떠한지. 이전하는건 아닌지. 건물 사용에 불편한 부분을 개선해 보겠다고. 유선상으로 마음을 돌리기 위한 이런저런 얘기를 한 거 같은데 나의 결심은 확고했기에 건물관리인에게 처음 들어보는 말들이 전혀 들리지 않았다.
상가 계약 만기일 다음날 오전, 현장에서 철거업체 사장님과 건물주인을 만나서 원상복구한 현장을 검토하고 건물주인의 요구사항을 꼼꼼히 사진 찍어두었다. 건물주인은 원상복구에 대한 비용을 임차인이 내는 거라 부족한 부분을 임차인을 거치지 않고 철거 사장님에게 전달할 수 없어서 원상복구가 다 끝나지 않았다는 식으로 에둘러 말했지만 이는 모두 거짓말에 불과한 핑계라고 생각한다. 건물주인이 철거와 원상복구 공사 도중 사장님에게 직접 지시한 부분들이 워낙에 많다는 건 이미 내가 다 전달받았던 거라 원상복구는 건물주인의 입맛대로 대부분 되어 있는 상태였다.
건물주인의 이야기가 길어짐에 따라 추가적인 요구사항은 나의 대리인과 조율하셔야 한다는 말과 함께 보증금 이야기를 다시 꺼내보았다. 변호사의 조언에 따라 정확한 보증금 반환 일시를 다시 물어보았다. 어제 건물주인과 통화가 끝나고 밤늦게 다음날 송금하겠다는 문자를 받긴 했으나 끝까지 긴장을 놓을 순 없었다. 신뢰가 제로보다 못한 마이너스였기에… 끈질기게 반환 일시를 물어본 결과 이날 오후에 송금하겠다는 답변을 받았고, 대략적인 시간까지 계속 물어보니 화를 내기 시작하셨다. 지금까지 나 같은 임차인은 없었다며. 상대하기 머리 아팠는지 가족에게 토스하고 건물관리실로 올라가셨다. 그리고 다행히 이날 오후 보증금이 계좌로 송금된 것을 확인하고 한 시름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