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게 뭐냐고 묻는 말처럼 시시하고 재미없는 질문이 없다고 생각했다. 요즘 제일 재미있는 질문은 “좋아하는 거 뭐예요?”다. 좋아함에 대한 고찰을 나누는 건지도 모른다. 나도 처음에는 내가 딱히 좋아하는 게 없는 인간인 줄 알았다. 그건 나를 잘 몰라서 그랬던 거다. 일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하루의 나의 선택들이 오롯이 나를 있게 한 취향들임을 눈치챌 수 있다. 이 책을 집어 든 이유가 ‘아, 나는 참 무색무취의 사람이야'라는 이유 때문이라면 긍정의 앤처럼 좋아할 게 죽도록 많아지는 취향의 전사가 된 나와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성덕의 자족충만 생활기의 [좋아하는 게 너무 많아도 좋아]라는 책도 있다. ‘적당히 대충 산다'가 삶의 모토이긴 하나 일단 꽂히면 덕후의 경지까지 간다는 소설가 조영주의 유난까지는 아니어도 그 ‘대충 사는 인생’에 ‘좋아함'이 없었다면 우리는 살았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그래서 어쩌면 나도 ‘좋아할 것들이 이 세상에는 이렇게 많은가’ 하며 감탄을 쏟아낼 날이 온다고 말이다. 사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으며 세상에 감탄할 일이 점점 줄어든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어느 날 문득 나를 돌아보니 그랬다. 모두가 다 아는 세상처럼 보였고, 나처럼 밋밋하거나 심심한 것 투성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더 이상 새로울 게 없겠군, 하는 생각은 나를 더 쓸쓸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런 쓸모없는 생각은 나를 잘 몰랐기 때문이고, 진짜를 바라볼 줄 아는 안목이 부족했던 것이다.
종이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의 목록을 일단 적어보자.
말캉하게 만져지는 작은 강아지의 촉감과 느낌
이른 아침의 따뜻한 커피와 빵 한 조각
가만히 나무의 흔들림과 그 소리를 듣는 일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이 자리를 옮겨 떠다니는 모습
신기한 눈빛으로 호기심을 쫓는 고양이의 눈
봄철의 얼었던 땅이 헐거워지며 꽃나무의 몽우리가 트는 일
땅콩 조각이 와그작 씹히는 텁텁한 크런치 땅콩잼
간단한 시저샐러드 한 접시
이렇게 적고 보니 좋아하는 게 없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겠다, 싶었다. 이런 취향의 조각은 살면서 ‘나'를 만들어 간다. 나는 왜 그걸 선택했지?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나의 내면의 숨겨진 마음이나 기쁨, 슬픔들이 속속들이 들어차 있는 걸 발견하게 된다.
200년이 지난 지금도 장 앙텔므 브리야 사바랭의 말은 의미 있게 다가온다.
“네가 무엇을 먹는가 말하면 나는 네가 어떤 사람인가 말할 수 있다"
내가 무색무취의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면, 종이 한 장을 꺼내 하나씩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연필로 혹은 볼펜으로 꾹꾹 눌러쓸 수 있다. 참고로 하나 더 덧붙이자면, 나는 노릇하게 토스트를 한 베이글 위에 하얀 크림치즈를 얹어 먹는 일을 신성하게 생각할 정도로 좋아한다. 따끈함과 차가운 크림치즈의 조합은 뭘로 설명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일식집에 가서 후식으로 먹는 녹차 아이스크림 뎀뿌라도 좋아한다. 아, 나는 반대되는 조합을 사랑하는 사람이구나, 단번에 알 수 있다. 삶에서도 나는 정말 반전을 꿈꾼다.
이쯤 되면 독자인 당신에게도 좋아함의 철학이 분명 생각날 수 있다. 그걸! 바로 그것을 적어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