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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앤 Jun 08. 2023

고독할수록 더 고독하라

고독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를 말한다면, ‘고독할수록 더 고독하라’는 말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우리는 고독을 무서워한다. 김정운 문화심리학자는 한국 사회가 ‘고독 저항 사회'라고 한다. 그러나 요즘 십 대 이십 대들은 혼밥을 즐기고 카페나 음식점들은 홀로 온 손님을 낯설게 여기지 않는다. 한참 이런 붐이 일 때 나 홀로 경주 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배낭 하나 매고 걸으며 반찬이 수십 가지가 나오는 한정식이 너무 먹고 싶었다. 혹시나 해서 식당 아주머니에게 혼자임을 알렸더니 흔쾌히 앉아서 먹으란다. 앗싸! 그때 나는 쾌재를 불렀던 것 같다. 몇 분 후에 깔리는 반찬 의식(?)을 바라보며 경이로운 마음까지 들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렇게 한국 사회는 변해간다. 일본의 혼밥을 좇아한다는 생각을 안 했던 건 아닌데, 어느 정도 한국도 자리를 잡았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은 고독에 관대한 나라다. 게다가 이미 고령화가 되었고 고독에 대처하는 자세도 이미 그들에게는 익숙하다. 김정운 문화심리학자의 말을 빌리면, 오래 사는 나라에서 고독은 당연한 거라고.


나는 이 고독을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보고 싶다. 고독도 취향이 되는가 누군가 묻는다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이 한 단어에는 신기율 작가가 말하는 ‘은둔의 즐거움'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나 혼자만의 시간을 얼마나 잘 보내는가는 마음에 빗살 무늬를 긋는 일이다. 이 말을 하고 나니 마음 안에 일정한 규칙을 만들고 패턴을 창조한 쿠사마 야요이가 생각난다. 자신만의 세계에서 정신적 안정을 누려야 했던 야요이는 동그란 모양의 패턴을 이용해 특별한 예술을 했던 일본의 설치 미술가다.

이 모든 일은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은둔의 비밀이 된다. 고독을 자체로 즐길 수 있다면 내면을 바라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마흔 초반을 임신과 육아로 힘겹게 보내는 날들이 있었다. 물론 그 시기는 탄생에 대한 신비로움을 경험하고 엄마가 되는 일에 합류하는 놀라운 체험의 시간이지만, 거의 대부분의 일이 엄마인 한 여자의 책임이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올바른 표기는 아니지만 흔히 말하는 ‘독박 육아’다. 아이를 키워내는 시간 앞에 나는 나만의 시간이 지극히 필요했다. 예전에 ‘슈퍼맨이 돌아왔어요' TV 프로그램을 순전히 재밌어서 보던 때가 있었다. 당시 아이가 없던 나에게는 그저 귀여움에 낄낄대며 아무 생각 없이 시청하는 방송이었다. 한 연예인 가정에 엄마를 제외하고 아빠 홀로 아이를 보는 날이었는데 아이의 물음이 아직도 기억난다.


“아빠, 엄마는 어디 갔어?”

“어, 엄마도 엄마만의 시간이 필요해서 오늘은 아빠랑 있을 거야.”

“왜? 엄마는 시간 맨날 있잖아.”

“있어도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해.”

“왜? 같이 있으면 좋잖아. 우리가 싫대?”


아이의 질문에 아빠의 쩔쩔매는 모습이 그저 웃기기만 했다. 실제 육아 전담을 하며 프로그램의 부자지간 대화가 문득 생각났다. 그만큼 나는 절실했다. 오로지 자신으로 돌아가 나를 보듬는 시간은 나를 소생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처럼 여겨졌다.


이제는 커서 아이가 나에게 제법 나가라고도 한다. 물론 화장실에 있을 때로 제한되기는 하나, 문도 잠그는 걸 보면 진심이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응가를 하며 내 두 다리를 꼬옥 붙잡고 있던 아이였는데, 한 번 두 번 용변을 보고 나니 이제는 나보고 나가란다. 처음 문을 걸어 잠갔을 때는 문 앞에 우두커니 서서 쫓겨난 신세 같았지만 서운한 마음은 곧 바뀌었다. 이제야 샛별이도 혼자만의 시간을 원하는구나, 생각하니 그게 꼭 볼 일을 보는 화장실이어도 엄마로서는 대견했다. 우리는 그렇게 커간다. 채우는 취향을 따라 고독의 시간 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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