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저는 취향이 없는 것 같아요.”
나는 운전을 하던 중이었고 조수석에 앉은 제시가 말했다. 나는 제시의 말이 반가웠다. 자신이 취향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남의 취향만 따라가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나도 사실 무취향의 인간이었다. 나 자신에게 무엇을 좋아하느냐고 스스로 물어본 적도 없다. 나중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취향 없음이 취향이라며 자랑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아슬아슬했다. 지나고 보니 인생 곳곳에 취향이 아닌 게 하나도 없었다. 나는 그저 나를 알지 못했던 것뿐이었음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제시는 취향 없는 자신에게 물음표를 던지며 가벼운 고민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그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지는 모르지만 그날의 제시는 그랬다.
많은 이들이 나처럼 살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또는 나를 알지 못한 채 남의 취향이 자기의 것인 양 착각하며 살고 있거나. 우리는 우리 자신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당신이 왜 당신인지 말하지 못한다면 세상에 내어졌을 때 포식당하고 말 테니까.
예전에는 인터넷을 하다 보면 팝업 광고가 제법 많았다. 내가 원하지도 않는데 컴퓨터 귀퉁이로 무수한 광고가 올라왔는데, 그걸 보며 판매자들은 마케팅의 천재라고 생각했다. 곁눈질로 광고를 읽다 보면 나에게 그 물건이 꼭 필요한 것처럼 여겨졌다. 너도나도 사는 물건이라니까 더 혹해서 보게 되기도 했다. 요즘은 아마존 쇼핑이 그렇다. 몇 명이 그 물건을 샀는지가 보인다. 내가 정작 필요한 건 그런 기능성 있는 물건이 아님에도 너도나도 샀다니까 관심을 가지고 다시 보게 된다. 나 또한 생각 없이 주문을 하고(개인정보 자동 입력으로 편리함마저 더했다) 배달 받은 물건이 몇 있다. 나도 쇼핑에 실패를 한다. 아마존은 쉽게 환불도 가능하다. 굉장히 정당한 판매라고 생각되겠지만 한 번 내 손에 들어온 물건은 좀처럼 환불이 쉽지 않다. 어떤 물건은 그마저도 귀찮아 잊고 있다가 환불 기간을 넘겨버린다. 모두 심리를 이용한 마케팅일 뿐이다.
나는 그들의 심리게임 놀이에 꼭두각시가 아니다,라고 생각하면 제정신의 나로 돌아올 수 있다. 너무나 간단한 문제인데 현대인들은 마음을 쉽게 뺏기며 산다. 이것 또한 외로움의 증거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미국은 배달 서비스가 최근 인기를 끌고 있다. 코로나19 이후로 배달의 문화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지금 다시 한국의 배달이 주춤대기는 하지만. 그에 비해 미국의 배달문화는 더 기승이다) 그런데 주문하는 메뉴가 커피 한 잔, 혹은 프렌치프라이 하나일 때도 있다. 심지어 걸어가도 될 거리에 배달비와 팁을 기꺼이 낸다. 그럴 때면 고개가 갸웃 뚱해진다. 모르긴 몰라도 심적으로는 ‘외롭구나'를 느낄 수 있다. 그것이 중독이 되어 별거 아닌 물건이나 필요하지 않은 먹거리를 배달 받는다. 심지어 개 간식도 있다.
이럴 때일수록 자신의 외로움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마음을 바라보고 감정을 인지하는 일은 나를 오롯이 알기 위한 시작이다. 그러다 보면 나다운 선택이 무엇이었는지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되거나 나의 취향이 무엇인지를 새롭게 알게 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한국의 모든 제시들이 자기를 조금씩 알아가기를 애정을 담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