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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앤 Jun 16. 2023

시선이 마음이다

내가 한 선택이 과연 옳았나 생각할 때가 있다. 자장면과 짬뽕 중 어떤 걸 먹을까, 하는 문제라면 차라리 쉽겠지만 인생은 그리 만만하지가 않다. 뒤늦게 후회한들 또 한쪽의 선택하지 않은 쪽이 더 옳다는 보장도 없다. 그저 살아볼 뿐이다. 그때그때의 선택이 최선이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자신에게 취향이 없다고 한다면 그건 더욱 미지 같은 어려움일 수 있다.


“엄마, 뭐 시켜야 해?”


치킨이 먹고 싶다고 한 조카는 메뉴만 붙들고 내내 발만 동동 굴리며 있었다. 그래도 그 다음 해에 한국에 나갔을 때는 제법 메뉴도 빠르게 선택하고 시킨 것에 만족하는 걸 보기도 했다. 그런 조카의 변화가 보기 좋았다. 친정 언니는 그게 ‘서서히'였다고 하는데 조카의 느린 속도를 견디어 준 셈이다. 나는 서른이 지나고 마흔에 서야 ‘나'라는 사람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에는 시간이 투자되고 노력에 대한 댓가가 서서히 드러난다는 것에 긍정한다. 알아가는 건 순간이어도 내면에 스미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리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서서히 그렇게 나를 발견하며 살아가는 게 아닐까. 살면서 시선을 주는 것들에 가만히 귀 기울이면 거기엔 나의 마음이 있음을 알게 된다. 취향이다. 내가 너와는 다른 무엇을 거기에서 보았으며 마음이 움직였다는 사실은 나만의 고귀한 취향을 나타낸다. 그래서 나는 시선이 좋다. 내가 무엇을 보는지 바라보는 일도 좋다. 그렇게 나만의 것들이 모이면 나만의 색깔이 된다. 현재까지 있어온 많은 것들은 바로 나의 선택에 의한 것들이다. 하나하나 바라보면 아무렇게나 살아온 흔적도 있지만 아파하고 잠못이루며 고민하며 나아갔던 흔적이 더 많다.


행복은 구체적인 것이어야 한다. 모호하게 싸잡아 외적인 것으로 행복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건 나 자신이 더 잘 안다. 그 행복이 대체 어디로부터 왔는가를. 서은국 교수의 [행복의 기원]에서는 행복이 생존과 종족을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진화론적 심리학이기는 하지만 우리의 뇌를 알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행복은  세로토닌을 활성화시킨다. 아침에 조심스러운 햇살이 커튼의 빈틈을 찾아 방 안으로 들어오면 저절로 눈이 떠지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이렇게 깨는 아침은 우리 뇌를 즐겁게 해주는데 이때 세로토닌이 마구 생성되는 시간이다. 주중에는 이른 새벽에 일어나지만 주말이 되면 이런 행복을 일부러 누리기 위해 알람을 끄고 계속 잠을 청하다가 해가 들어오면 슬며시 그제야 눈을 뜬다.


행복한 기억은 뇌가 반복하고 싶어 한다. 긍정의 경험을 통해 생존에 필요한 것을 이어갈 수 있다. 그렇게 인간은 사소해 보이는 일에서도 기쁨을 찾아낼 수 있는 존재로 만들어졌다. 번식하고 종족을 만들며 끊임없이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게 되어 있다는 게 바로 서은국 교수의 핵심이다. 행복하기 위해서 산다는 말이 있지만 살기 위해서 행복을 선택한다는 말. 나 또한 지금까지의 사고를 뒤집는 이 말 한마디가 충격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결론은 같으며 행복이 행복이 아닌 게 될 수 없고, 또 그것이 생존 때문인들 바뀌는 게 있을까?


그저 나의 시선을 바라보며 메타적인 사고를 가지는 재미를 누려보자. 그 안에서 당신의 취향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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