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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eak Dec 17. 2024

시험기간에 떠나는 여행

시간의 일상을 벗어나기

 우리는 모두에겐 하루 24시간이 공평하게 주어진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만의 루틴으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을 하고, 퇴근 후의 시간을 다르게 보내고 각자의 취침시간에 맞춰 잠을 잔다. 이렇게 5일을 보내면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이틀의 주말이 주어진다. 주말은 또 다양하게 여러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소모된다. 물론, 3교대 근무나 2교대 근무를 하는 사람들이나 프리랜서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24시간을 보낼 것이다. 교사들에겐 일반적인 사람들과 다른 게 시간 보내기가 가능한 기간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종업식을 하고 개학식을 하는 사이의 일명 '방학'기간이고 또 하나는 전체 학생이 한꺼번에 치르는 '지필고사'기간이다. 시험 출제를 위해 교사들이 머리를 싸매고 있는 시기가 지나면 '지필고사' 기간은 학생들이 머리를 싸매고 교사들은 상대적으로 일상의 시간을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보통 시험기간에는 오전만 시험을 치고, 오후엔 연가를 써서 일찍 퇴근하기 때문에 교사의 성향에 따라 다양한 삶의 퍼레이드가 나타난다. 나는 오후 반나절의 소중함을 중요하게 느껴 밀린 일처리는 물론, 시간의 일상을 벗어난 여행을 떠나곤 한다. 


밀린 일처리와 여행

 여행이 뭐가 있나? 일상을 벗어나면 여행이지.... 이런 의미에서 시험이 끝나고 오후가 되면 그냥 존재 자체로 여행이 되는 것이다. 낮잠을 자거나 홀로 영화관을 찾아 영화를 보고, 동료들과 어울려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 모두가 여행이다. 왜냐하면 이것이 반복되는 퇴근 후 저녁시간이 아니고, 주말도 아니기 때문이다. 한 번도 경험해 보기 힘든 주중의 오후, 남들은 모두 일을 하느라 열심히인 그때, 나는 일탈을 즐긴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는 생각해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이번 시험기간은 건강검진을 앞두고 있었서 하고 싶은 것을 하기보다는 밀린 일처리를 하기 위해 움직였다. 유튜브 영상을 찍기 위해 앞산 등반을 한 다음날이라 온몸이 쑤셔와 운동은 물 건너갔고, 벌써 독감에 걸린 거 같지만 독감예방주사도 맞아야 하고 오토바이 엔진오일도 갈아야 했다. 이제 나에게 주어진 오후 일정을 위해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계획을 짜는 와중에 부친상을 당한 친구의 소식을 듣고 새로운 일정이 추가되었다. 고민 끝에 일정이 완성되었다. 선월만두반점(점심식사)➜오토바이 엔진오일 교체➜독감예방주사➜친구 문상➜귀가의 일정을 정하고 퇴근을 준비하고 있었다. 물론 이 일정에서 점심식사는 준비된 재료 소진 시 문을 닫는 곳이라 일정에 변동이 생길 수 있었지만, 나머지 일정들은 그대로 소화가 가능했다. 즉, 첫 번째 일정이 꼬이면 그에 대한 차선책만 만들어 놓으면 계획은 문제없이 진행될 것이다. 먼저 오토바이를 타고 점심식사를 위해 엔진오일 교체하는 대리점과 가까이 있는 대구 중구의 전통 노포 '선월만두반점'에 들렀다. 다행히 내부의 불은 켜져 있었고, 난로 위 따뜻한 보리차로 속을 데우고 야끼우동 한 그릇과 야채만두(포장)를 시켜 맛난 점심을 먹었다.

바지락이 들어있는 야끼우동

 양과 함께 가성비가 뛰어난 집이다. 단점은 화장실이 없다는 것! 혹시나 가시려면 참고하기 바란다. 점심을 먹고 인근 오토바이 대리점에 엔진오일을 교체하러 갔다. 집 앞에서 하면 되는데 직장에서 퇴근하는 루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항상 이곳에서 엔진오일을 교환하고 있다. 정렬된 오토바이를 보면서 앞으로 구매할 오토바이도 한 번 구경하기도 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야마하 대구 대리점

 오토바이 엔진오일도 교환했으니, 이제 독감예방 주사를 맞으러 가야 한다. 결혼 전에는 독감예방 주사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는데,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면역력이 떨어지는지 1년에 한두 번 심한 감기몸살을 앓고 나서는 꾸준히 예방주사를 맞고 있다. 시간은 넉넉하고 오토바이 주차도 원활하기 때문에 예방주사를 맞는 병원 선택의 제1원칙은 가격이다. 그래서 올해도 복십자 병원에서 간단한 문진서 작성 후 주사를 맞았다. 그리고 오늘의 마지막 일정인 친구이자 후배의 부친상 문상을 가야 한다. 집에 가서 옷을 갖춰 입고 저녁에 찾아보려 했지만, 오늘이 마지막이라 오후에 가서 문상을 하기로 하고 병원으로 향했다. 엔진오일을 교체한 오토바이는 좀 더 부드럽고 빠르게 반응하는 듯했고, 병원 주차장의 차단기 사이로 유려하게 빠져나가 장례식장 앞 공토에 거침없이 주차를 했다. 복장은 잘 갖추지 못했지만, 친구를 만나 위로를 하고 문상을 드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평상시 같으면 메인 반찬 하나에 저녁을 차려 주었지만, 오늘은 이른 퇴근으로 시간이 넉넉하여 아이들에게도 메이 반찬 두 개를 제공하기로 했다. 오늘의 메뉴는 마파두부와 김치찌개로 언제나 그렇듯 아빠의 요리는 우당퉁탕 정신없이 만들어진다. 그래도 맛있게 먹는 아이들 때문에 즐거운 마음도 있고, 차려놓은 것을 거들떠보지도 않을 때는 다시는 너희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지 않겠다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날은 그대로 전자의 마음으로 잘 먹어줘서 나의 여행이 잘 마무리될 수 있었다. 

마파두부와 김치찌개를 끓이고 시간이 남아 상해가는 마늘도 모두 다져 냉동했다.

 깔끔한 지필고사 이후 일탈은 이렇게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내일은 또 어떤 일탈 혹은 여행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라고 생각하지 말고 일탈이든 여행이든 내가 계획하고 실행해야 현실로 다가온다. 릴스나 쇼츠처럼 머릿속으로 생각에만 빠져 있지 말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뭐라도 하는 일상의 시간을 벗어난 여행을 해보자. 


PS. 릴스나 쇼츠를 벗어나고자 말했지만, 내가 만든 쇼츠는 하나 보고 가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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