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들이지 못하는 삶은 지나온 시간을 정의할 수 없게 만든다. 협의 절차 없이 급하게 다음 단계로 넘어간 인생이 끝을 내지 못해 과거를 과거로 남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쓰레기처럼 뒤섞인 삶은 몽땅 뭉뚱그려져 엉망진창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 한꺼번에 쓰레통에 담긴다.
불현듯 깨달았다. 왜 글이 쓰고 싶었는지, 무엇을 쓰고 싶었는지 말이다. 자꾸 쓰고 싶어서 미치겠는데 그 마음이 무엇인지 몰라 일단 써보자 했었다. 도무지 가라앉지 않던 이 울렁임은 무엇인가. 가끔은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밀물과 썰물처럼 하루에도 몇 번을 이리저리마음이 휩쓸리곤 한다. 글을 쓴다는 행위 자체가 콘크리트 벽돌처럼 일상을 무겁게 짓누른다. 미쳤지 미쳤어 고통에 몸부림도 친다. 머리털을 쥐어뜯느라 짜부가 되면서도 기어이 또 쓴다. 그리고 찾아오는 잔잔해짐이 글을 썼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그러던 어느 날 위치나 줌토크 중 정신없던 스위치가 갑자기 탁 꺼졌다. OFF! 혼란했던 불빛이 꺼지자 밝은 어둠이 사위를 차분하게 만들었고 그 고요한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선명하게 보였다. 평온했던 삶에서 아주 급하게 쫓겨났던 그때처럼 깨달음도 그렇게 갑자기 찾아왔다. 순간 아주 오래된 그때의 어린 내가 헤매는 것이 보인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대강 이해는 했지만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벌을 받는 기분이다. 뭔가 잘못한 것처럼 도망 다니는 인생이 가련하다. 시간은 가고 점점 어른이 되어가지만 여전히 어린 나를 데리고 다니는 어른이 된 나. 과거를 놓아주어야 했는데 시기를 놓쳐 버렸다. 나는 제대로 된 이별식을 준비한다. 성숙한 이별식이 필요했던 나는 글쓰기라는 의식을 치른다. 글을 쓰기 위해 내 모든 과거를 끄집어낸다. 쓰레기통을 뒤집는다. 정리한 과거는 과거로 돌려보내고 지금의 삶을 꺼낸다. 그러자 미래도 보인다. 쥐가 나도록 글을 쓰는 과정에서 어떤 걸 보여줄지, 어떤 걸 감출지 생각하는 것으로 뒤죽박죽이던 삶이 정리되는 절차를 밟게 된 것이었다.
같은 인생은 하나도 없다. 그런데 우습게도 모두 다 같은 인생 범주라는 것을 알겠다. 저마다의 사연이 그 삶을 특별하게 만든다. 자신만이 느끼는 주인공 시점이다. '왜 나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 진짜 나만 사는 나의 삶이니까 말이다. 그 특별한 삶의 주인공인 나의 마음을 ' 너도 그래? 나도 그래!'라는 대답으로 공감을 자아내는 것이 에세이다. 글을 쓰면서 우선 스스로 공감을 해야만 다른 사람도 그 마음을 느낄 수 있다. 나는 글을 쓰는 과정에서 먼지 털듯 마음 구석구석을 털어내는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러자 뒤덮었던 아련한 그리움이 과거는 과거대로 미래는 미래대로 정리가 되어 현재를 담을 수 있는 빈 공간이 생긴 것이다. 수고했다고, 덕분에 여기까지 무사히 도착했노라고 과거의 나에게 인사를 한다.
아련한 그리움에게 이제는 좋은 추억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나는 그만 불을 끄고 과거에 고요한 안식을 준다.
지나온 과거를 놓아주자. 치열한 시간이었을 수도 있고 멈춘 시간이었을 수도 있다. 어떤 시간이었더라도 그 시간을 잘 지내왔기에 지금이 있다. 그때의 나도, 그때의 시간들도 다 열정이었다고 한 번 꽉 안아주고 보내주자. 낡은 인생 위에 붉은 장미꽃을 얹어 그린 그림을 올려놓고 과거에 대한 장례식을 마친다. OF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