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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경 Mar 23. 2024

보통의 가족

보통의 가족들처럼 그렇게 살기를


식당이 소란스러웠다. 시끄러운 소리에 다른 아이들도 덩달아 흥분을 하기 시작했다. 각 반 담임들은 자기 아이들을 최대한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지금 이곳에는 복합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라 집단으로 흥분을 하게 되면 자칫 큰 사고나 부상으로 이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나는 출근 한지 일주일도 안 돼 길고 긴 세월을 마치 이곳에 뼈를 묻은 느낌이었다. 첫 출근부터 호되게 신고식을 했고 매일매일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기 바빴다.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당황하기 일쑤였고 글자로 배운 복지는 현장에서 쓸모가 없었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마음으로 이해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다른 세상을 같은 세상으로 믿고 있었음을 채 일주일도 안 되어 반성하기 시작했다. 

그 아이 발작이 언제 어디서 왜 처음 시작이 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1년 계약직 담임 보조로 들어간 나는 아이들의 신상에 대해서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그저 수업보조와 점심 식사보조가 내 할 일이었다. 얼마나 쉽고 단순한가. 더구나 담임이 있고 우리 반 아이들은 얌전했다. 문제가 크게 두드러져 보이는 아이가 눈에 띄지 않아 내심 안심했다. 비록 한글을 가르치기도 힘든 지능과 조울증, 자기 세상에만 빠져 있는 자폐 등 여러 복합적인 장애를 두 서넛 이상씩은 가지고 있는 중증이었지만 그런대로 괜찮았다. 이미 오랜 시간 반복 학습으로 규칙과 질서를 터득한 학년이었다. 함정은 내가 초짜라는 데 있었다.

그날도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나 혼자만 백조였다. 물 위 모습은 여유롭고 한가로워 보였지만 수면 아래에서 나는 아무도 모르게 열심히 허튼짓을 해대고 있었다. 담임만 나가면 나를 테스트하는 아이와 머리싸움을 했고, 어떻게 해야 이 아이가 내 말을 들을까, 어떻게 해야 이 아이를 수업에 참여하게 만들까 고민했다. 약 오르는 건 번번이 실랑이를 하다가 종소리가 나면 자리에 앉는다는 거다. 그것도 해맑게 눈 맞춤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그 시간 다른 아이들 역시 자기들만의 세상에 가 있으니 지금 여기에는 나만 있다. 이 아이들과 어떻게 해야 함께 있을 수 있을까. 

쉬는 시간이다. 화장실도 잠시 편하게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옆 칸에서 울음 섞인 말소리가 들렸다. 화들짝 놀라 문마다 귀를 대고 있음 직한 화장실칸 문을 두드리며 애를 썼다. 무슨 일이냐고 문을 일단 열어보라고 설득하느라 진땀을 뺐지만 요지부동이다. 하지만 허무하게도 혼자 열연을 하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문을 열고 손을 씻고 나가는 여학생. 진이 빠진 내가 더없이 한심하게만 느껴졌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여기 아이들은 혼자 이야기를 하는 아이들이 많다. 알고 난 후에는 속지 않았지만 처음엔 진짜 깜짝 놀라서 콩닥콩닥 뛰는 가슴이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그렇게 오전 시간이 지나도록 몇 번 철렁철렁하고 나면 가장 난관인 점심시간이 온다. 잠시 눈길만 돌려도 손으로 음식을 한 움큼 집어 입으로 쑤셔 넣거나 얼음이 되어 먹으라고 계속 알려주어야 먹는 아이, 수저로 먹는 방법을 몰라 연신 수저를 같이 잡고 먹여 줘야 하는 아이까지 혼자 제대로 밥을 먹는 아이가 몇 명 되지 않는다. 믿어지는가. 이 아이들 학년은 무려 고 3이다. 겉으로는 짐짓 미소를 띠고 천천히 움직이지만 나는 점심시간이 가장 긴장이 었다. 음식물이 기도라도 막는 날엔 큰일이 날 테니 말이다. 지정된 자리에 아이들을 앉히자 한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담임이 자리에 앉은 아이들 식사 지도를 하기로 하고 내가 찾으러 나섰다. 한 바퀴를 돌아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 엇갈려 식당에 간 건 아닐까 들어가 보니 난리가 났다. 아이는 저 앞에서 이미  흥분을 해 머리를 아무 데나 짓찧고 다른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고 몇몇 아이들은 몸까지 마구 흔들기 시작했다. 남자 선생님들 네 분이 급하게 아이들 잡는다. 흥분한 상태에서는 굉장히 힘이 세진다. 남자 선생님들 여러 명이 붙잡아도 잘못하면 내동댕이 쳐질 수도 있어 요령 있는 분들이 필요하다. 노련한 분들의 제압으로 금방 진정이 되었고 잠시 조용해지자 언제 그랬냐는 듯 점심 식사시간은 다시 이어졌다. 나만 물 밑 아래 발짓이 바쁜 백조다.

그 아이는 아침에 먹어야 하는 약을 빼먹었고 그 때문에 흥분이 지속된 상태에서 무언가 발단이 되었던 것 같다고 했다. 후에 우울이 심한 아이가 아침에 먹어야 하는 약을 먹지 않아 종일 우는 것도 보았다. 대체적으로 말로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울거나 흥분해서 몸을 자학하는 것으로 표현한다는 건 배워서 알고 있었으나 실제로 보니 위험한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자칫 폭력적으로 보일 수 있는 제압 과정은 아이를 보호하기 위한 최선책임을 나는 직접 그 안에서 생활의 전과 후를 다 함께 지내보고서야 이해하게 되었다. 모르는 사람들 눈에는 힘으로 보호해야 하는 상황이 폭력으로 보일 때도 많다. 내가 보는 것을 다 믿지 말자 다짐한다. 

내가 근무했던 곳은 학교뿐 아니라 다양한 시설까지 함께 있다. 마치 커다란 하나의 세상이 섬같다. 시설에서 사는 아이들은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그곳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 아이도 시설에 사는 아이였다. 태어나자마자 부모가 포기 각서를 쓰면서 시설로 들어왔고 벗어나는 방법은 결혼을 하거나 독립을 하겠다 스스로 의사를 밝히거나 죽어야 한단다. 아이가 말을 하는 도중에 엄마 소리를 많이 해서 나는 엄마가 진짜 엄마인 줄 알았다. 하지만 시설에서 돌봐주는 분들을 엄마라 칭했고 이 아이들은 시설이 자신들의 집이요 돌봐 주시는 분들이 가족이었다. 그렇구나, 이런 가족도 많겠구나. 내가 마지막 출근을 하는 날 다시 안 오다는 말을 듣고 아이는 물었다. 그럼 언제 올 수 있냐고. 기대나 희망을 갖게 해 주더라도 금세 잊어버리고 기억을 못 할 아이였지만 나는 어떤 기대도 희망도 나를 향해 품게 만드는 것이 죄를 짓는 것만 같아 냉정하게 대답했다. 

" 다신 안 와. 우리는 영원히 만날 수 없어. 00 이는 여기서 엄마랑 보통의 가족들처럼 살아. 알겠지?"

아이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는 솔직하고도 진실하게 답하고 싶었다. 그 이상 책임질 수 있는 것이 없었으므로. 

인생 초짜였던 나는 글로 배운 복지를 1년간 시설 아이들을 경험하면서 보는 세상이 다가 아님을 배웠다. 보이는 세상보다 안 보이는 세상이 훨씬 많다는 것도 함께. 가족의 의미가 하나일 수 없고 선택일 수 없다는 사실은 힘들게만 생각했던 나를 정신 차리게 만들었다. 00 이에게 보통의 가족들처럼 살라고 말은 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래도 그렇게 빌어주고 싶었다. 보통의 가족들처럼 좋은 사람을 만났으면 하는 바람으로. 지금은 중년이 되었을 00이는 아직도 그곳에 살고 있을까.


돌고래는 무리를 지어 산다고 한다. 어린 새끼를 공동으로 키우고 부상 당하거나 늙은 동료를 돕는다고 알려져 있다. 아픈 돌고래가 숨을 쉴 수 있도록 수면 위로 올려준다니 놀랍기만 하다. 사연이 있는 많은 아이들이 돌고래처럼 공동의 보살핌을 받고 공동의 가족을 갖는다면 좋겠다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본다. 나의 기도 목록에는 하나가 추가 되었었다. 00 이가 주변에 돌고래 무리처럼 좋은 사람들이 가득하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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