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내 물 끓는 소리가 나고 믹스커피를 컵에 붓는 동작은 마치 물고기가 지느러미를 의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수동적이다. 물고기는 전진, 후진, 균형을 위해 지느러미를 사용하지만
우리가 보기에는 그저 꼬리를 흔들어 대는 것처럼 보인다.
뜨거운 커피가 한 모금 몸 안에 퍼지자 삶이 실질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00은 살아서 관심을 힘들어 하고 00는 죽어서 관심을 피했다.
'그 사람'은 사라졌으나 아무도 관심이 없다.
물고기 같다.
둔감한 상태에서 지느러미를 흔들자 물의 파장은 멀리까지 퍼져나간다.
널리널리 퍼지다 흩어져 끝내 사라지는 물결 그 끝에 물고기의 생각은 있을까.
처음부터 사라지는 물결을 모르는 물고기는 움직인다는 관념조차 없이 흔드는 지느러미에 의해 어디론가 나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그 사람'도 몰랐겠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그때부터 이미 이야기는 시작되었을 것이다. 무언가를 소유하고 있다는 의식은 자유롭지 않을 때 생긴다. 갑자기 깜깜해진 당혹감에서 곧장 지느러미를 의식하고 ' 아, 지느러미가 있네.' 생각이 들자 그것이 자신에게만 집중하게 만들고 한없이 예민한 상태를 만드는 것이다. 오로지 자극에 반응하는 몸과 우울, 불행, 분노와 같은 나쁜 감정들이 신경의 변화를 자극해 살아있구나 느끼게 할 뿐이다. 앞으로도 뒤로도 가지 못하는 물고기는 날개짓을 하듯 지느러미를 힘껏 펄럭이며 바닥을 파기 시작한다. 뿌옇게 일어나는 흙먼지에 물고기가 모습을 감추었다.
'그 사람'은 제 인생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자의식을 갖기 시작한 건 모든 상황이 불확실해지고부터다. 표정이 사라지고 표현이 사라지더니 점차 ' 그 사람' 도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 그 사람' 을 일깨우는 책임과 의무에는 움찔했으며 가끔씩 그 생각에 몰두하곤 하였다. 그러나 ‘그 사람’은 대부분 나무가 있고 돌이 있고 하늘이 있듯 그렇게 있었다.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되지 못한 ‘그 사람’이 어딘가에 있기는 했다. 물고기는 처절한 몸부림으로 바닥을 통과해 저편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고 또 생각한 '그 사람'은 나무가 있고 돌이 있고 하늘이 있어 볼 수 있다는 것을 마치 이제 막 눈을 뜬 아기처럼 보게 되었다. 점차 표정도 짓고 표현도 찾고 급기야 제 인생도 알게 된 '그 사람'은 지느러미를 유연하게 움직여 물결 끝에서 이내 다시 시작되는 물결 무늬를 따라 꼬리를 흔들어 대며 헤엄치는 물고기를 보았다. '00'은 가족이 관심을 받고 '00' 는 과거가 관심을 받는다. '그 사람' 이 찾아온 것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 하지만 이제는 '그 사람' 이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