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윤경 Jun 05. 2024

아프냐, 나도 아프다

공감 능력



거창하게 미시적 거시적이라고 하면 우습지만 그래도 난 그녀를 보고 있으면 이 말이 생각난다. 점차 우주적 차원으로 들어가는 움직임이 시간 여행을 하면 인간이 사는 세상이 어찌 변해있을까 궁금하다. 공감이 없고 이기적인 마음만 가득한 사람은 남의 아픔을 전혀 보지 못한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만 마지막에 살아남는다면 이 우주는 어떤 모습이 될까.



그녀는 똑똑해 보인다. 그녀의 어머니는 더 똑똑해 보인다. 모녀는 너무 잘 났다. 그 모녀는 시도 때도 없이 잘 남을 드러내야 직성이 풀린다. 그녀의 어머니는 충고를 잘 하는 그녀를 대단히 난 인물로 여기고 자랑스러워한다. 물론 자신이 잘 났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사실 탁월한 능력이기는 하다. 문제는 남들이다. 그녀들 주변에 있는 남들은 마음 상처가 하루도 잘 날이 없다. 그 잘 남을 그들은 충고라고 주장하며 남 지적질로 증명하기 때문이다. 멀쩡한 남들은 죄다 상처받고 점점 더 아프게 곪아가지만 정작 상처를 주는 사람들은 하등 상관이 없다. 충고를 했을 뿐이니까.



"아프냐? 나도 아프다!"

이 대사는 다친 여자 주인공에게 남자 주인공이 하는 말이다. 다친 그녀도 아니고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도 아닌데 그 아픔이 느껴져 눈물이 난다. 그런데 말이란 게 거의 그렇지만 이 말도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너만 아픈 거 아니니 그리 호들갑 떨지 말라는 타박이 될 수도 있겠고 또 나도 아프니 함께 견뎌 보자는 격려도 될 수 있을 것 같다. 때에 따라서는 내가 더 아프니 너는 좀 조용히 하라는 경고가 되기도 할 것이다. 다친 여자 주인공이 아픈 걸 보고 더 아프게 바라보는 남자 주인공은 아마도 사랑에 흠뻑 빠져있는 듯하다. 대신 아플 수만 있다면 좋겠다는 심정이 전해진다. 그 아픔을 가슴 찢어지게 느끼는 듯한 눈빛을 시종일관 보내니까 말이다. 인간이 위대한 이유다. 내 아픔이 아닌데도 내 아픔처럼 느껴지는 <공감 능력>은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감정의 공유다. 목소리나 표정 등 다른 사람의 감정을 판단할 줄 알아야 가능한 능력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인지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발달한다.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능력은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은 수준으로 가지게 되는 것은 아닌데 바로 발달 과정에서 습득이 되기 때문이다.


"좀 제대로 못 해!"

코피를 흘리는 그에게 그녀는 역시나 선제공격으로 기선 제압을 한다. 팀플레이라 누구 하나가 실수하면 지는 게임이다. 하필 그녀가 항상 우선으로 따돌리는 조금 미숙한 그가 한 팀이 되었다. 처음부터 너 똑바로 해야 한다, 너 잘못 하면 우린 끝장이다, 너만 잘 하면 된다, 너 정신 차려라 독설을 날린다.  주의를 받아도 그때뿐이다. 무엇이 문젠지 모르는 그녀에게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는 충고는 들리지 않는다. 한숨을 푹푹 쉬며 끊임없이 잘 남을 드러내는 그녀와 몇 번을 거듭해도 매번 걸리는 그. 주눅이 들었던 그가 그만 제 발에 자기가 넘어지면서 코피를 흘린다. 누가 뭐라기도 전에 그녀가 소리를 버럭 지른다. 새빨간 코피를 철철 흘리는 그에게 으이구 내가 못 살아 화를 내는 그녀. 분위기는 순식간에 쏴해지고 모두들 입을 닫았다. 결국 눈치를 보던 그가 아프다며 빠졌고 그녀는 열정적으로 기를 쓰며 이기려고 애썼다. 그녀에게 지적질을 당하고 싶지 않은 다른 이들은 열심히 집중하는 척을 한다. 그리고 그다음 날 그녀 어머니는 비슷한 수준끼리 묶어야 하지 않겠냐며 학습권을 주장한다. 장황한 설교와 기나긴 잘 남을 드러내며.



잘 난 모녀를 보며 공감이 꼭 대단한 능력을 말하는 게 아니구나 생각했다. 상처를 함께 아파할 필요도 없다. 그저 상황 파악이 될 정도의 능력만 있다면 그 상황에서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ㄹ 구분하게 될 터이다. 코피를 흘려서 아프냐? 너 때문에 맘대로 안 되는 내가 더 아프다! 드라마 대사를 소리 지르며 화내는 그녀가 하는 걸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말이나 글을 이해하는 데는 상황 파악이 그래서 아주 중요하다. 드라마처럼 앞뒤 사정과 상황, 표정, 눈빛이 보이지 않는 전달을 받을 땐 절대 혼자 다 이해했다 믿으면 안 된다. 항상 잘 난 그녀와 그녀에게 뭔가 들을 때마다 쪼르르 달려오는 어머니. 그 모녀가 나는 진짜 많이 아파 보인다. 그리고 바라보는 나도 진짜 많이 아프다.


터프팅 작업. 실 한가닥 한가닥이 만들어낸 그림이다. 고흐의 그림을 유독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아픈 마음이 아름다운 그림에서 느껴지기 때문이 아닐까.

세상은 이기적인 사람들이 아니라 공감하는 사람들이 이끌어 간다.

작가의 이전글 ' 그 사람 '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