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말씀 묵상
민수기 29장 1-11절[새 번역]
29:1 "일곱째 달, 그 달 초하루에는 거룩한 모임을 열고, 생업을 돕는 일은 아무것도 하지 말아라. 그 날은 나팔을 부는 날이다.
29:2 너희는 나 주를 향기로 기쁘게 하는 번제로, 수송아지 한 마리와 숫양 한 마리와 일 년 된 어린 숫양 일곱 마리를 흠 없는 것들로 바쳐라.
29:3 이와 함께 너희는 기름에 반죽한 고운 밀가루를 곡식제물로 바치되, 수소 한 마리에는 십분의 삼 에바를 바치고, 숫양 한 마리에는 십분의 이 에바를 바치고,
29:4 어린 숫양 일곱 마리의 경우에는, 어린 숫양 한 마리마다 십분의 일 에바씩을 바쳐라.
29:5 또 숫염소 한 마리를 속죄 제물로 바쳐, 너희의 죄를 속하여라.
29:6 이러한 제사는, 나 주에게 불살라 바치는 나를 기쁘게 하는 향기 제사로서, 새 달에 바치는 번제와 거기에 딸린 곡식제물과, 날마다 바치는 번제와 거기에 딸린 곡식제물과, 거기에 딸린 부어 드리는 제물 외에 따로 바치는 것이다."
29:7 "같은 달, 곧 일곱째 달 열흘날에도 너희는 거룩한 모임을 열고 고행하여라. 너희는 아무 일도 해서는 안 된다.
29:8 너희는 나 주를 향기로 기쁘게 하는 번제로, 수송아지 한 마리와 숫양 한 마리와 일 년 된 어린 숫양 일곱 마리를 골라서 바쳐라.
29:9 이와 함께 너희는 기름에 반죽한 고운 밀가루를 곡식제물로 바치되, 수소 한 마리에는 십분의 삼 에바를 바치고, 숫양 한 마리에는 십분의 이 에바를 바치고,
29:10 어린 숫양 일곱 마리의 경우에는, 어린 숫양 한 마리마다 십분의 일 에바씩을 바쳐라.
29:11 또 숫염소 한 마리를 속죄제물로 바치는데, 이것은, 죄를 속하는 속죄제물과 날마다 바치는 번제와 거기에 딸린 곡식제물과 부어 드리는 제물 외에 따로 바치는 것이다."
현대인의 나날은 파편들로 가득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수많은 관심과 열정이 조각들입니다. 삶은 늘 소란스럽고, 우리의 관심은 쉴 새 없이 흩어집니다. 무엇이 궁극적인가를 물을 여유조차 빼앗긴 채 살아가고는 합니다.
사람들은 절대적 헌신의 대상을 쫓아 삽니다. 그것은 혼란스러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저항이기도 합니다. 나를 살아 있다고 느끼게 하는 것들과 나를 만족시켜 주는 것들 찾아 사는 것이지요. 그러다 문득, 내가 의미를 부여해 온 돌덩이 하나가 내 앞에 서서 속삭입니다. “나는 네 주인이다.” 돌덩어리는 금세 버려집니다. 그 돌덩이의 다른 이름이 공허와 허무이기 때문입니다.
공허하고 허무할 때, 비집고 들려오는 내면에서 목소리가 들립니다. 내가 지금 잘살고 있는 건가. 나 자신이 내게 답해 주어야 할 물음인데도, 좀체 입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내 영혼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고요한 절규이기 때문입니다. 최선을 다해 사는 것 같으나, 머릿속에 그렸던 삶의 주제가 여전히 안개로 덮여 있고, 무엇이 내가 원하는 것인지 내 마음인지 알려고 할수록 미궁에 빠져드는 기분이기에 그렇습니다.
“네 잘못이 아니야.”이란 말은 마법같이 위로를 주기도 합니다. 공허해지고 허무해지는 건, 정말 우리 잘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 공허와 허무는 필연적으로 찾아옵니다. 공전과 자전이 끝없이 맞물려 돌아가는 이 세계 속 무한성과 영원성에 인간이 짓눌린 채 불안 속에서 살기에 그렇지요. 더 가지려 할수록, 더 알려고 할수록, 우리는 점점 더 공허와 허무 속으로 빠져듭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공허와 허무에 맞서서 나팔을 불었습니다(1절). 나팔절은 그들에게 하나님을 기억하고, 자신을 돌아보며, 회개와 속죄의 준비를 시작하는 날이었습니다. 제사의식은 정성스럽게 키웠던 가축을 죽이고, 복잡한 율례를 따라야 하기 때문에, 소모적이고 정적입니다. 그들을 멈추게 했고, 침묵 속에 잠기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이스라엘 민족을 공허와 허무 속에서 살렸습니다.
매년 반복해서 부는 나팔은 기억의 소리였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과거 광야의 길을 떠올리고,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떠올리며, 삶의 중심을 다시 맞추었습니다. 그날의 나팔 소리에는 부산하게 흩어져 있는 파편의 조각들을 치우는 힘이 있었고, 침잠해 들어가 마음을 새롭게 하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너희는 잠깐 손을 멈추고, 내가 하나님인 줄 알아라(시편 46편 10절). 일하던 손을 놓아야 하나님의 손이 엉킨 매듭을 푸십니다. 멈춘다는 것은 단순한 쉼이 아닙니다. 멈춤은 패배가 아니고, 침묵은 무능력이 아닙니다. 멈추고 침묵해야 보이는 길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멈추고 침묵하는 행위로 길을 찾았습니다. 그 길은 세계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가라고 말씀하시는 길이었습니다.
인간은 침묵하고 멈출 때 궁극적인 관심과 이어질 수 있습니다. 멈추고 침묵할 때 안갯속에 가려졌던 게 드러나고, 나의 마음에 빛이 비칩니다. 비로소 살아 있는 게 무엇인지 그제야 알게 되는 것이지요.
멈추고 침묵할 때, 세계에 드러나는 신비와 마주하게 됩니다. 세계는 스스로 돌아갑니다. 사람들이 애써서 일해야 운행되는 게 아닙니다. 세계는 허덕이듯이 뭔가를 갈구하며 쫓아가지 않습니다. 마치 침묵하고 멈추어 있는 듯한 독립적 존재입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살아 숨 쉬며 생명의 터전으로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멈춤과 침묵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세계의 살아있음은 우리를 충만하게 만듭니다.
멈추고 침묵하면 비로소 하나님 앞에 멈추어 서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멈춘 자는 살아있게 하려는 세계의 신비를 느끼는 자기도 합니다. 침묵과 멈춤은 세계와 하나가 되어 이웃의 고통에도 멈춰 서게 됩니다. 삶 속에서 침묵하고 멈추는 영성이 삶의 공허와 허무를 걷어낼 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도 멈춤이 사랑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오, 주님. 주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멈추어 섭니다.
멈추고 침묵하는 제 삶이 주의 거룩한 자리가 되게 하소서.
나의 멈춤이 이웃의 고통 앞에서도 멈춰 서는 사랑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