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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이 불어오는 곳 Sep 29. 2020

나는 육아휴직을 독일에서 보냈다 1

아이들에게 들려 주고픈 아빠의 이야기

Chapter1.  나의 직장생활

  97년 말 우리나라는 IMF라는 전대미문의 혹독한 경제 위기를 맞이 했다. 나는 98년 봄에 대학원을 졸업 예정이었는데 갑작스런 상황에 회사들은 인원감축을 실시하고 신입사원 뽑는 것은 취소하기도 했다. 당시 통계상 20%만 취업이 되었다 했는데 가까이 지낸 5명 중에 나만 취업이 된 것을 보면 그 통계가 맞았나 싶다. 감사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게 나는 회사에 취직하게 되었다. 취업 후 알고 보니 나를 뽑으면서 기존에 있었던 다른 직원들을 구조정리 했단다. 나는 입사하면서부터 주변에서 괜한 눈총을 받으며 일을 시작했다. 취업했던 회사는 원래 원하던 직종의 회사는 아니였지만, 당시에는 이것 저것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일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해 오는 나의 천직이 되었다. 그렇게 처음 입사한 회사를 5년간 다니고, 나는 퇴사를 했다. 계속되는 야근과 밤샘 작업에 과연 이 회사에 희망이 있는가 싶어 용기를 냈다. 친한 동료 직원은 내게 “쓰레기차 피하다가 똥차에 치인다. 그냥 같이 다니자”며 나의 퇴사를 만류했다.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있었지만, 용기를 내어 퇴사를 진행 했고 2개월간 자격증 공부를 하다가 다른 회사에 취직이 되었다. 같은 직종 회사였지만 전체적인 여건은 이전 회사보다 나았다. 그러나 두 번째 회사에서도 5년 가까이 지냈지만 해당 직종의 태생적 한계 때문에 발생하는 야근과 밤샘을 안 할 수는 없었다. 그 사이 결혼 하고 아이도 낳았는데 나는 가족을 위해 시간을 낸다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는 것을 느꼈다. 당시에는 제발 가족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있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랬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인터넷에 올라온 다른 회사의 모집공고를 보고 지원을 했다. 입사 면접은 2일에 걸쳐 예정되어 있었는데 나는 해외 출장 때문에 그 중 첫날만 참석이 가능했다. 그래도 그냥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면접 첫날에 참석했는데 면접위원이 오늘 하루에 실무자면접과 임원면접 모두 진행코자 한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날 하루에 면접을 모두 마치고 해외 출장을 갔다. 그리고는 합격통지서를 받았다. 내가 지금의 회사에 이직코자 했던 것은 가족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을 더 많이 확보하고 싶은 작은 소망 때문 이었다. 지금의 회사에서는 야근과 밤샘은 안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전 회사들보다는 시간의 여유가 있다고 보였는데 막상 들어가 보니 술문화와 일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결국 이전 회사보다 더 오랫동안 일을 하게 되었다. 그래도 일을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했기 때문에 상사들에게 인정받으며 10여년 넘게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현장에서 발생한 회사일로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1년 이상 계속 된 그 일로 인해 나는 말 그대로 지옥의 맛을 보게 되었다.


 아내는 제약회사에 다녔고 독일에 본사를 둔 한국 지사에 다녔다. 그러다 독일 본사에 자리가 났고, 아내는‘한 번 지원이나 해 보자’는 마음으로 지원했는데, 선뜻 합격이 되었다. 그렇게 해서 계획하지 않은 독일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아내가 독일 취업을 준비하는 동안 나는 갑자기 터진 회사일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16년 말에 아내는 막내딸만 놔둔 체 두 아들을 데리고 독일로 출국했다. 정신없던 그 시기에 그래도 감사한 것은 애들 셋을 데리고 독일로 나가기 전에 아이들 건강검진을 먼저 받았는데 막내 딸의 왼쪽 귀에 이상이 있는 것을 발견했던 것이다. 당시 만4세였던 딸아이는 진성중이염 때문에 왼쪽 귀의 청력이 없는 상태였다. 어린아이라서 자신의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 못했고 나와 아내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수술해야 하는 딸아이는 놔두고, 아내는 아들 둘만 데리고 출국하게 되었다. 그 때는 나 스스로도 어렵고 힘든 시기에 독일로 가족을 보내는 것이 더해져서 견디기 힘들었지만, 지금 와서 보면 그 때 독일로 나가지 않았으면 건강검진을 안 받았을 것이고 막내의 청력은 성인이 되어서야 이상이 있음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어렸을 때 수술을 받으며 완치에 가깝게 회복되지만 20세가 넘어서 수술을 하면 청력 회복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 어렸을 때는 스스로 인지하기가 어려워 성인이 되어서야 자신의 청력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한다. 하여튼 아내가 독일로 취업을 하게 된 것은 우리 가족에겐 힘든 여정이자 복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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