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렇게 말했다. 싱가폴은 너무 인공적인 관광지가 많다고. 틀린 말은 아니다. 전 국토가 서울의 1.2배 밖에 안되니 이 땅은 집약적으로 개발될 수밖에 없었다. 맛있는 과자만 들어있는 과자선물세트처럼 컴팩트한 관광지가 오밀조밀 많다. 하지만 꼭 맞는 말도 아니다. 싱가폴은 전세계 도심지 중에서도 녹지가 잘 구성된 곳으로 손에 꼽힌다. 바로 여기저기 있는 크고 작은 공원과 산책로 덕분이다. 이 중에 나무위를 걷는 아름다운 산책로가 있다. 바로 사우든 리지스(Southen Ridge)에서 마운틴 페이버 전망대(Mountain Faber Park)로 이어지는 산책로다.
사우든 리지스는 근처의 크고 작은 공원이 일렬로 연결된 지역을 말한다. 마운틴 페이버 전망대까지는 3km 걸어서 40분~1시간 정도 걸린다. 싱가폴에는 낮은 언덕이 많고, 이 언덕에 야자수와 사시사철 활엽수가 잘 심겨져있다. 이 곳은 전반적으로 지대가 높아 도시의 아름다운 전경과 우거진 숲사이를 걷는 것이 동시에 가능하다. 마지막에 센토사와 바다를 함께 하는 전망대까지 연결된다. 게다가 무료. 안 갈 수가 없다. 하지만 대다수의 단기 관광객은 이 코스를 잘 가지 않는다. 그 이유는 많이 걷는게 싫어서일 것 같다.
싱가폴에서 산책을 한다는 건 끈적함과 땀을 각오한다는 의미이다. 한낮은 32~35도, 습도는 왠만하면 75%이상이다. 해질녘이나 밤처럼 서늘해도 26도 밑으로는 잘 안떨어진다. 나랑 가족들은 모두 각자 물을 등에 짊어졌다. 더위를 피하기 위해 아침 8시 반정도에 출발했다. 딸은 걷는 건 질색이라며 입이 툭튀어나왔다. 그 입을 도로 툭쳐서 넣어주고 싶은 심정이 굴뚝같지만 참았다. 우린 Opp SP Jain/Alexandra Rd란 정류소에서 버스에서 내렸다. 싱가포르는 버스 시스템이 잘되어있고 지하철과 환승도 잘된다. 하차 한후 걷다 보면 Alexandra Arch Pedestrian Walk 다리부터 여정이 시작된다. 이 때 구글 맵으로 목적지를 Mountain Faber park로 걷기로 설정한 후에 가면 가면서 덜 불안하다. 물론 가면서 이정표는 잘 나와있다.
한눈에 다리에 올라가면 한동안 땅에 발을 붙이지 못했다. 왜냐면 계속 숲속에서 50m 높이의 철골구조 다리가 계속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곳을 다른말로 Forest Work라 부른다. 다리의 밑바닥은 우리나라 배수구처럼 되어있어서 밑이 보여 아찔하지만 금방 적응된다. 아름다운 나무들을 아래로 내려다보며 걸어가니 눈이 상쾌해진다. 다리는 지루하지 않게 지그재그로 위아래로 방향이 달라졌다. 숲속을 떠서 걸어가니 큰 나무를 옆에서 보고 멀리 도심도 바라보며 사진도 찍었다. 처음엔 투덜투덜 하던 아이들도 점점 걷는것에 익숙해졌는지 잠자코 주변을 보며 걸었다.
한 1km 걷다보면 철제 숲속 다리가 끝나고 Telok Blangah 공원이 이어진다. 이 즈음부터는 철골구조다리가 끝나고 찻길과 만나게 된다. 여기서 Terrace 가든쪽으로 올라가면 아름다운 계단으로 올라가면 꽃과 계단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싱가폴 전망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다시 계단을 올라갔다 내려오기엔 좀 계단이 가파르고 아이들의 눈치가 보여서 안될 것 같아 그냥 직진했다. 왼쪽은 찻길 오른쪽은 숲인 길인데 차가 그렇게 많이 다니지 않는다. 시간이지나면서 왼쪽 마져 우거진 숲이 된다. 옆은 초록, 바닥은 회색, 하늘은 파랑 3가지 색이 영롱하게 빛나니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땀방울도 함께 빛나며 떨어진다.
손풍기를 부쳐가며 Telok Blangah Green Carpark를 지나면 거기서 Handerson Wave 쪽으로 우회전해서 꺾어지는 길이 있다. 그 길을 따라가면 좀더 좁은 숲길이 시작된다. 이정표가 나오면 ‘Handerson Wave’쪽으로만 계속 가면 된다.
좁은 숲길에서 원숭이 가족을 만났다. 이 원숭이들은 야생원숭이들이기 때문에 보더라도 정면으로 눈을 마주치거나 놀리거나 음식을 주지 않는게 좋다. 특히 새끼 원숭이나 무리중 큰 원숭이를 조심하자. 우린 귀엽네 한번 하고 곁눈질로 못본척 하면서 천천히 가던길을 갔다. 원숭이 또한 자기들에게 먹을걸 안줄걸 알고 뒤에 오는 다른 관광객에게 눈길을 돌렸다.
숲길이 끝나면 이제 옛날 학교 교실에 깔려있는 것 같은 길다란 나무판조각으로 이루진 길이 시작된다. 곧 Handerson Wave가 앞에 있단 의미이다. 드디어 전망이 확트이며 물결형태의 현대적인 다리가 나온다. 이 다리는 싱가폴에서 가장 높은 보행자용 다리인데 해발 77.8m높이라고 한다. 멀리 싱가폴 동남쪽 시가지가 보이고 반대편엔 아름다운 센토사쪽 바다가 보인다. 다리 밑에가 뻥 뚤려있어서 더 멋지다. 잠깐 음료수 한잔 한 후 아이들을 달래가며 Mt.Faber Park 쪽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이때 케이블카 타는 곳으로 가지 않도록 주의한다. Mount Faber Park로 가는 길은 숲 사이를 계단을 따라 올라가는 길이다. 아이들이 힘들다고 징징거렸지만 얼마 안남았다고 하면서 달랬다. 둘째는 그 예기는 이제 안믿는다고 울상이었다. 못들은척하고 길을 재촉했다. 드디어 공원 정상 도착. 여기를 흔히 Hilltop Spot이라고 칭한다. 정말 상쾌한 전망이다. 시원한 바람과 탁 트인 시야.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었다. 저멀리 말레이시아쪽 바다에 떠있는 배 옆에 케펠베이 건물이 열대 우림 사이로 쾌청하게 보였다. 싱가폴 360도 전망이 아름답다. 그리고 유명한 싱가폴 3대 멀라이언상 중에 가장 작은 새끼 멀라이언상을 여기서 만날 수 있다. 잠시 앉아 나무 밑에서 다리를 쉬게 했다.
이제 하산할 일이 남았다. Mount Faver 케이블카 정거장으로 걸어 내려갔다. 여기서 결정을 해야 했다. 에너지가 조금밖에 남지 않고, 나랑 같이 간 일행의 분위기가 흉흉하다면 여기서 Grab을 불러야한다. 가까운 Vivo city로 승용차로 편안히 직행할 수 도 있다. 의외로 여기에서 Grab이 잘 잡힌다. 두 번째 하산 방법은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가는 방법이다. 하지만 돈이 좀 아깝다는 단점. 그리고 아직 튼튼한 다리가 있다면 여기서 Marang trail이라는 산길을 따라 1.5km 걸어 내려가서 HarbourFront Station(Vivo City)로 가는 방법이다. 그래도 내리막길이라 아주 부담스럽진 않다. 구글에서 목적지를 찍고 걸아가야 한다.
우리가 선택한 길은 결국 첫 번째 Grab이었다. 산길따라 주욱 내려갈까 말하려했지만 이미 내 아내는 그랩이 싼값에 잡혔다가 좋아했다. 시원한 에어컨 속 그랩택시안에서 나도 함께 미소를 지었다.
값비싼 사용료 한푼 들지 않는 자연과 인공의 조화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던 코스였다. 마천루 빌딩만 보다가 정글속에서 자연을 느끼고 나무위를 걸으며 멋진 전망까지. 의외의 숨겨진 싱가폴의 매력이다. 하지만 어느정도 땀흘림은 각오하자. 싱가폴 야외 여행과 땀은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