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 는 없다> 장석주 시인
사람들이 위대하다고 말하는 작품을 보면 이 시가 자주 떠오른다. '왜 이 작품이 그렇게 유명할까?' '내가 보기엔 아닌데, 이게 작품이 사람들을 울게 만든 작품 1위라고? 정말?' 하는 의구심이 드는 유명작품을 때때로 마주한다. 그럴때 위 시를 다시 되내인다. 이 작품이 탄생하기까지 많은 이야기와 작가의 노력이 있었겠지. 이 작품에도 작가가 갈구했던 게 있겠지. 그게 그 시대와 맞았겠지. 그 시대가 이미 지나갔어도, 그 당시를 이해한다면 그 감흥을 나도 느낄 수 있겠지 하면서.
명작을 알기 위해서는 근, 현대 미술 작품에 대한 배경지식이 이래서 필요한것 같다. 그 작품 너머의 작가가 살았던 삶과 그당시 시대상, 사조를 같이 안다. 그래서 그 작품이 더이상 생경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면 더욱 기쁘다.젝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 작품을 보면서 '이건 나도 하겠다'라고 함부로 말하지 않게 된다. 도널드 저드의 <홈파인 상자>를 보며 더 이상 당황하지 않게 될 것 같다.
이 책은 근현대 미술사를 중 고등학생이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쓰여있다. 처음엔 그래서 자격지심이 생겨서 읽기를 주저했다. 내 나이가 몇인데 애들 읽는 책을 읽어야 하나? 하지만 지난 내 미술 독서리스트를 돌아봤다.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도 읽었지만 뿌연 안개속을 거닐다 온 느낌이 많았다. 전문용어와 추상적 용어의 나열속에서 힘겨워했던 내 자신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 책은 친절했다. 쉬운 용어와 친절한 이야기 설명에 좀더 근현대 미술의 각각 작품, 작가의 특징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옛날 용어이긴 하지만 마치 성문종합영어 공부하다가 성문 기초영문법을 다시보고 뼈대를 세우는 느낌이랄까?
누군가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모든 학문은 = (등호)와 포함의 관계라고. 무엇이 무엇과 같고, 무엇이 무엇에 포함되는가가를 배우는게 학문이라고. 처음엔 이말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서양미술 근현대사를 읽으며 그 말이 좀더 와닿는다. 근현대 명화를 초현실주의, 야수파, 인상주의, 대지미술 등의 사조로 포함시키면 그 명화는 다르게 읽힌다. 로버트 스미스슨의 <나선형 방파제>란 작품도 그냥 얼핏 보면 자연을 가지고 만든 작품이군. 하고 지나갈 수 있다. 하지만 대지미술 속의 <나선형 방파제>는 느낌이 다르게 다가온다. 대지미술작품은 자연물과 함께 변형과 소멸을 거친다. 작품이 곧 자연의 일부인셈이다. 이 대지미술 범주에 <나선형 방파제>를 포함시켜 생각해본다. 나선형 방파제는 시간이 지나며 밀물 썰물에 의해 일그러질 지도 모른다. 파도에 의해 휩쓸려갈 방파제를 떠올린다. 나선형은 길을 따라가다보면 결국 중심으로 모인다. 나선형 안에 있으면 중심으로 회귀되지만, 나선형 밖은 말그대로 온 사방으로 물이 떠날 수 있다. 바닷물의 자유로움을 오히려 역설적으로 표현하는 듯 하다. 이 책의 각 미술 사조는 작품을 좀더 깊게 보고, 또다른 생각을 낳게 했다.
책은 빌 비올라의 비디오 아티스트의 소개로 끝난다. 현대미술이라면 현재 우리곁에 있는 미술이다. 마지막 부분에 좀더 현대미술의 여러 장면을 설명했으면 좋았을 거란 생각도 했다. 한편 시간이 갈수록 장르, 범주 하나로 작품을 규정하기 어려운게 현대미술이란 점도 더 생각하게 됐다.
누군가 말했다. 현대미술은 의미를 전달하면 그것으로 미술이라고. 사물,환경을 재현하는 것에서 의미를 전달하는 것으로 미술의 근현대의 변화를 잘 보여주는 책이다. 1권도 시간될 때 챙겨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