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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연 Dec 25. 2021

못 배웠다

어떻게 더불어 살 것인지에 대해,  나는 배운 것이 별로 없다

이따금 회의가 끝나고 머리가 아프면 회사 휴게실에 놓인 안마의자 위에서 휴식을 취한다. 안마의자가 놓인 방은 어두운 커튼을 쳐놓고 공기 청정기를 틀어놔서 쾌적하게 피로를 풀기에 제격이다. 어느 날 깊은 잠에 들었다 깨어 부스스 한 머리를 하고 화장실에 들르니, 마침 청소 아주머니도 자다 깬 얼굴로 복도 화장실 맨 마지막 칸에서 구부정히 기어 나온다. 그녀는 그 마지막 칸 변기 옆, 비밀스럽게 숨겨진 창고에서 막 쉬다 나온 참이다. 나는 창고 안을 슬쩍 들여다보았다. 사람 한 명이 간신히 들어갈 만한 크기에, 각종 청소 도구들과 노란색 수건, 두루마리 휴지들이 잔뜩 쌓여 있다. 아주머니는 본인이 민망했는지 창고가 민망했는지 나를 보며 쑥스럽게 웃었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그저 같이 웃었다. 


몸이 아팠던 날 점심에, 팥죽을 사들고 회사 건물로 들어가려는데, 보안 요원이 내 앞을 막았다. 외부 음식은 반입할 수 없단다. 몸이 아픈데 밥까지 먹지 못한다니 서러웠지만 애꿎은 보안 요원에게 항의할 이유는 없다. 꽤 값 나가는 팥죽을 들고 버려야 하나 어째야 하나 생각하며 터덜터덜 화장실에 걸어 들어가니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있었다. 나는 혹시 결례가 되지는 않을까 한참 고민하다가, 아주머니에게 말을 걸었다.  “아주머니 이거 새 건데, 가지고 들어갈 수 없어서 제가 먹지 못하게 됐어요. 점심 안 드셨으면 이 죽 드시겠어요?” 혹시 내가 자기를 낮추어 보는 행동으로 여기면 어쩔까 걱정했는데, 아주머니의 표정에 화색이 돌았다. 본인도 밥을 먹지 못했고, 감사하게 받겠다는 것이다. 마음이 한결 가벼웠지만 잠시나마 묘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어느 날 이런 생각들을 곰곰 되씹다가 동료 언니에게 말했다. 언니 나는 회사 청소해주시는 아주머니들한테 인사를 잘하는데, 앞으로도 인사를 계속하는 게 맞을까? 아주머니들이 말이지, 내가 본인들을 의식한다고, 가식적으로 예의를 갖춘다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그러자 언니가 대답했다. 뭔 소리야. 다 됐고. 맨날 니 똥 닦은 휴지 치워주는 분들이니까 무조건 만날 때마다 꼬박꼬박 인사해. 나는 그 순간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 잘못이란 아마도 이런 걸까. 돈을 만들어내는 일과 가치를 만들어내는 일을 혼동하는 것. 물건은 반드시 돈을 주고 사야 한다고 믿는 것. 모르는 사람에게는 걸인을 빼고는 무언가를 공짜로 줘본 적이 없는 것. 회사 안에서의 계급 놀이와 패싸움은 익숙한데, 회사 바깥의 사람들은 어떤 ‘부류’에  속한 사람들인지 잘 모르는 것. 익숙한 프레임과 법칙, 카테고리에 기대지 않고는 무언가를 해석하는 데 다소 어려움을 겪는 것. 이 나이가 되도록 청소 아주머니 한 분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정확한 태도를 배우지 못한 나는, 무슨 대단히 중요한 경험을 쌓으면서 살고 있는 건지 의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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