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뻔한 이들과 함께 사는 법
“너는 너른 들판이니까 내가 너에게서 마음껏 뛰놀 수 있도 록 해줘”라고 했던 옛 친구의 말이 기억난다. 글로만 보면 낭만적인데, 실제 대화의 맥락은 그렇지 않았다. 그 친구는 내가 자기보다 ‘더 강하니까’ 어떤 상황에서든 자기의 실수와 잘못을 다 받아달라는 취지로 그렇게 말했다. 그 말을 처음 듣는 자리에서는 이 뻔뻔한 요청이 너무 어이없어 헛웃음만 나왔다. 그리고 화가 났다. 동갑내기 친구 이면서 자신에게 유리한 대로 씌우는 ‘강자’와 ‘약자’ 프레임 아닌가.
그 친구를 생각하자면, 수억 대 자산과 권력을 쥐고서 결정적 순간에 항상 ‘나도 너와 똑같은 인간’임을 호소하던 어떤 사람도 한 쌍으로 떠오른다. 그의 면전에서 대놓고 악에 받쳐 분노를 터뜨렸던 기억이 난다. 자신에게 유리한 대로 씌우는 ‘평등’ 프레임의 뻔뻔함을 저격해서.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그토록 나를 화나게 했던 이 두 사람이, 사회생활을 하는 줄곧 내게 ‘그릇’의 크기를 얼마나 넓혀야 하는지에 대한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타인에게 이성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안전 지대, 너른 들판이 되고 싶다. 그리고 어떤 순간에는 내가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의 말과 행동에 올바른 책임을 지고 싶다. 60은 계산하되 40은 동심을 유지하는 그런 균형 잡힌 삶을 살고 싶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그저 자신의 결점을 감추기 위해 던져지는 어설픈 도덕적 훈계의 떡밥을 즉물적으로 물어버리지 않도록 평소에 훈련을 좀 해둘 필요가 있겠다. ‘약자 보호’나 ‘평등’ 프레임은 어떻게든 눈치채 피해갔지만, 결국 내 스스로 던진 ‘넓은 그릇’의 고매한 떡밥을 물어 현혹되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