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서 방울토마토를 키우던 일을 추억하며-
한 학생이 방울토마토 화분에 물을 주고 있다. 물 주기에만 집중한다. 뭔가에 열중하는 모습은 참 아름답다. 휴대폰에서 사진 검색을 하다가 이 사진이 눈에 띄었다. 지난 1학기 때 내가 학교에서 찍은 사진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든다. 어느 날, 쉬는 시간이었다. 한 학생이
"선생님, 방울토마토가 목이 마른 것 같아요.”
하더니 물뿌리개에 물을 담아온다. 화분 밖으로 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조심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올해 오월이 막 시작되던 때, 교실에 방울토마토 모종을 사들였다. 작년에는 교실에서 공기정화식물을 키웠다. 홍콩야자, 커피나무, 테이블야자. 잎과 줄기가 잘 자라지 않았다. 특별한 변화가 없었다. 꽃도 안 피고 열매도 없고 그저 푸른 잎만 보여줬다. 하여 올해에는 꽃 피고 열매 맺는 방울토마토를 심고 가꾸었다. 방울토마토는 햇빛이 잘 드는 창가에 두고 물만 잘 주면 잘 자랐다. 시시때때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침, 우리 반 아이들은 교실에 오면 방울토마토를 먼저 살펴보곤 했다. 어떤 아이는 책가방도 내려놓지 않고 곧바로 화분이 있는 창가로 가기도 했다.
"선생님, 방토(방울토마토의 줄임말)가 빨개졌어요!”
"선생님, 방울이(아이들이 방울토마토에 붙인 별칭)가 또 꽃을 피웠어요. 어제는 네 송이었는데, 오늘은 여섯 송이가 되었어요.”
"오호, 귀여워!”
방울토마토를 보며 귀엽다는 말을 연발하는 아이들이 더 귀엽다. 방울토마토를 키우기로 한 게 잘한 것 같아서 나 또한 기뻤다. 아이들은 방울토마토를 그리고 시도 썼다. 사랑이 방울방울, 기쁨이 주렁주렁!
신기한 게, 거의 비슷한 모종을 같은 날에 같은 화분에 같은 양의 흙에 심었는데도 자라는 모습은 각각 달랐다. 모두 같은 조건인 것 같은데 뭐가 달라서 그런 건지 당최 모르겠다. 잘 자라지 못하고 비실비실 말라죽은 모종을 두 포기 뽑아냈다. 학생이 직접 뽑아 버리게 했다. 그리고 내 화분에서 잘 자란 모종을 뽑아서 주었다. 학생은 자신의 화분에 새 모종을 심는다. 그렇게라도 하니까 어두웠던 얼굴 표정이 밝아진다. 아이들은 아이들이다. 순수하다. 또 하나 의아한 게, 아이들은 방울토마토를 따 먹을 생각을 안 한다. 먹을거리가 풍족한 시대라서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너무 예뻐서 먹을 생각을 못하는 것 같다. 방울토마토는 꽃보다 더 예쁘고, 아이들은 방울토마토보다 더 아름답다.
방울토마토 모종마다 꽃이 피는 시기가 달랐다. 똑같이 심었는데도 열매 맺는 시기도 같지 않다. 같은 환경에 심었는데도 열매의 크기나 개수도 차이가 난다. 하물며 사람은 어떻겠는가. 그 진실을 알면서도 교사로서 실천에 미흡했다. 그동안 학생을 가르치면서 아이들의 ‘다름'에 맞추지 못했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과제를 해결하라고 닦달했다. 주어진 시간 안에 하지 못했다고 재촉할 때 아이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2학기가 되면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
여름방학이 되면서 방울토마토 화분을 가정으로 보냈다. 부모님이나 다른 식구에게 방울토마토를 맡기지 말고 스스로 물 주고 정성껏 돌봐주라고 했다. 특히 방울토마토에게 좋은 말 예쁜 말을 들려주라고 했다. ‘양파 실험'과 ‘쌀밥 실험' 이야기를 해주었다. 양파 두 개를 두 컵에 따로 꽂아두고 한쪽은 ‘미워!' ‘못 생겼어!' 등의 나쁜 말을 들려주고, 다른 한쪽은 ‘사랑해!' ‘고마워!' 등의 예쁜 말을 들려주었더니 다르게 변하더라는 그 실험 말이다. 나쁜 말을 들은 양파는 쉬이 썩는다. 반면에 예쁜 말을 들은 양파는 뿌리도 잘 내리고 잎도 푸르게 자랐다고 한다. 나쁜 말을 들은 쌀밥도 얼마 안 가서 검은곰팡이가 생긴다. 예쁜 말을 들은 쌀밥은 한참 후에야 곰팡이가 피는데 그것도 검지 않고 누렇게만 되더라는 실험의 예를 설명해 주었다.
요즘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정이 많이 늘었다. 동물의 종류도 다양하다. 강아지나 고양이 햄스터 열대어 말고도 여럿 있다. 어떤 학생은 장수풍뎅이나 사슴벌레를 키운다. 학생들에게 경험담을 들어보니, 예상한 대로였다. 강아지나 고양이는 놀 때는 좋지만, 기르는 과정에서 부모님의 도움이 상당히 필요하다고 한다. 먹이고 씻기는 일 등은 아이들이 하기가 어려워서 초등학생 자녀에게는 잘 사주지 않는다고 한다. 특히 동물이 죽었을 때 아이들이 느끼는 심적 고통은 컸다. 그래서 비교적 키우기 쉬운 작은 곤충을 키운다고 한다. 사슴벌레를 집에서 키우던 학생이 있었다. 어느 날인가는 사슴벌레를 학교에 가지고 와서 친구들에게 자랑하였다. 사슴벌레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하던 그 학생은 전문가다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정서적인 품성을 길러 주는 교육을 정서교육이라고 한다. 정서교육은 자연과 사회에서 아름다운 것을 느끼고 이해하는 품성을 갖게 한다. 예술적 감정과 취미를 가지도록 이끌어 부드럽고 아름다운 성품을 길러 주기도 한다. 아이들의 정서교육을 위해서 생명을 키우는 것은 좋은 일이다. 푸르른 지구에서 인간과 동물 그리고 식물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그날을 꿈꾼다.
나 또한 아침에 학교에 출근할 때마다 교실에 있는 방울토마토가 얼마나 자랐는지 궁금했다. 보고 싶어서 설렜다. 물만 먹으면서도 어쩌면 그렇게 예쁘게 잘 자라는지 감탄이 절로 나왔다. 날이 갈수록 줄기는 굵어지고 초록잎은 더 진해지고 열매는 빨갛게 익어갔다. 교실 화분이 아니라 노지에서 자란다면 하늘이 알아서 물을 주겠지만 작은 화분 속에서 얼마 안 되는 흙 속에서 잘 자라는 방울토마토가 고맙고 안쓰럽기도 했다. 몇 모금 물만 주어도 그리 잘 자라니, 그러고 보면 식물만큼 소박하고 순한 게 없는 것 같다.
먹고사는 인간 생활에서 반드시 쓰레기가 발생한다. 특히 여름철 음식쓰레기는 골칫거리다. 집안에 음식물 쓰레기가 조금만 있어도 작은 날벌레들이 찾아온다. 13층 아파트까지 그 작은 몸으로 어떻게 날아왔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조금만 음식물 쓰레기가 나와도 바로바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서 배출하곤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엔가 조카와 전화 수다를 떨다가 ‘음식물처리기' 얘기를 들었다. 음식물처리기 사용 후기를 들으며 꼭 구매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음식물처리기는 여러 가지가 있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 주방 싱크대에 부착하여 물만 빼주는 간단한 처리기. 처리기에 넣어서 음식물을 건조한 후 분쇄해 주는 방식도 있다. 미생물 분해 원리를 이용하여 음식물쓰레기를 처리하는 기계까지 있다. 내가 구입한 것은 세 번째 방식이다. 음식물처리기에 음식물쓰레기를 넣으면 미생물이 알아서 분해하여 흙처럼 만들어주는 방식이다. 방울토마토와 함께 교실에 배달된 거름흙도 딱 이 색깔 이 냄새였다. 방울토마토를 키우던 거름흙 또한 몇 백 년 전, 몇 천 년 전에 지구의 어느 곳에선가 살던 생명이 죽어서 분해되어 흙으로 만들어진 것이겠지. 음식물처리기를 사용하고부터 쓰레기 배출을 위해 13층부터 지상까지 오르락내리락하는 수고를 덜었다.
방울토마토뿐만 아니라 땅에서 나는 수많은 채소며 과일이 다 그렇다. 감자 고구마 당근 무와 같은 뿌리채소도 그 뿌리는 흙 속에 있다. 배추 열무 시금치 상추와 같은 잎채소도 그 뿌리는 흙 속에 있다. 토마토 사과 배 딸기 복숭아 포도와 같은 열매의 뿌리도 그렇다. 이 많은 것들을 사람이 먹는다. 사람이 먹고살다가 살다가는 죽어서 다시 흙에 묻힌다. 흙으로 돌아가면 다시 식물이 흙 속의 영양분을 빨아들여 뿌리를 살찌우고 잎을 무성하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한다. 그걸 사람이 먹고살다가 죽으면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결국 사람은 흙을 먹고 살다가 흙이 된다. 흙이 되어 다른 생명을 또 키운다. 죽음이 끝은 아니다. 생명의 형태가 다른 것뿐이다. 생명, 그 위대함이여!
(*지난 1학기에 초등 2학년 교실에서 방울토마토를 키웠습니다. 여름방학을 시작하면서 방울토마토를 가정으로 보냈는데, 잘 크고 있을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