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숙 방통위 위원장 청문회를 보고
(사진출처 : '정의' Pixabay )
지난 7월 31일 이진숙이 방송통신위원회 수장으로 임명되었다. 방통위원장은 장관급이다. 그전에 인사청문회를 중심으로 한 그에 대한 여러 논란은 요즘 폭염만큼이나 뜨거웠다. 사흘간 이어진 청문회를 지켜본 대다수 국민은 이 후보자의 부조리에 혀를 내둘렀다. 국무총리급도 아닌 사람을 사흘간이나 청문회를 한 것부터 이례적이었다. 법인카드 사적 사용 의혹은 해소되지 않았다. 5·18 민주화 운동 폄훼 논란이 일었다. 일제 시절의 위안부 강제 동원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엔 '논쟁적 사안'이고 '개별적 사안'이라고 말하며 명확한 소신을 밝히지 않았다. 이 후보자는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에 대한 질문에도 오염수가 아니라 '처리수'로 정정하라며 반박했다. 처리수라는 용어는 일본 정부의 주장이다. 우리나라 공무원이 되겠다는 사람이 일본 정부가 주장하는 용어를 쓰는 것은 큰 오류다. 최민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이 해양수산부 공식 문건을 제시했다. 그제야 오염수라는 말에 수긍했다. 청문회 시청 중에 뜬금없는 말도 들렸다. '재밌지?'라는 이 후보자의 말, 무슨 의미였는지 궁금하다.
이 모든 논란에 대하여 나까지 기사 몇 줄 보탤 생각은 없다. 다만, TV화면에 비친 그의 언행에 대한 내 생각과 그의 중학교 시절 생활기록부 내용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몇 조각 있다. 청문회에서 질의를 하는 국회의원은 국민이 선출한 국민의 대표자다. 후보자는 국회의원 개인이 묻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묻는다는 생각을 한다면 그런 무례한 태도는 보이지 말아야 한다. 위원장이라는 자리가 그토록 절실하다면 꼭 그 자리에 앉고 싶다면 심사숙고해서 발언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청문회에서 보여준 이 후보자의 태도는 무례했다. 태도가 법적으로야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국민 정서에 맞는 태도를 보였다면 그나마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는 얘기다. 나아가서 이 글은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기준이 아닌 나의 주관적 인상이나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비평으로 친다면 '인상비평' 정도가 되겠다.
청문회에서 조국혁신당 이해민 의원이 밝힌 이 위원장의 생기부 내용이다. "타학생의 모범이 되나 준법성이 결여되어 있으며 수차례 시정하였으나 계속 지도 요망됨. 자신의 나태와 무관심으로 여러 번 지도를 했으나 새로운 정신으로 수업에 임하지 못하였음. 계속적인 지도 요망됨." 성인이 되어서 발생한 사안도 아니고 50년 전 어린 학생 시절의 생활기록부까지 청문회에 소환하는 것이 민감한 개인정보 공개에 해당하지 않겠느냐는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이해민 의원실 관계자는 보도 뒤 교육언론[창]에 “인사청문회에서 학생부는 후보자의 학창 시절 학교폭력 등 문제가 없었는지 등을 공식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이기 때문에 통상적으로 요구하는 자료”라면서 “이번의 경우에도 상임위 의결을 통해 후보자의 동의를 받아 공식적으로 제출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후보자가 동의했다니 더 할 말은 아니지만, 그것을 지켜보며 느낀 불편함은 숨길 수가 없다. 아마도 갖가지 불법 의혹을 안고 있는 이 후보자에 대한 기본 소양 결여를 입증하기 위한 의도였을 것으로 판단한다. 이 위원장이 중학시절부터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고, 자신의 준법성을 향상하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는 밝혀진 바 없다. 청문회에서 드러난 법인카드 사용 내지는 여러 불법에 대한 의혹을 국회의원들이 폭로하는 것을 봐서는 준법성이 크게 향상되었다고 보이지 않을 뿐이다.
이 위원장이 중학교를 다니던 때는 1970년대였을 것이다. 그 시기에 나도 중학교를 다녔다. 당시의 중학교 모습을 떠올려 보면, 여러 모로 매우 엄격했다. 수업 시간에 친구와 잡담을 하거나 책상 위에 엎드려 있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학교 규칙을 위반하는 학생은 교무실 앞 복도에 책상을 놓고 정해진 기간 동안, 다른 사람의 따가운 눈길을 받으며 자율학습을 해야 했다. 매월 시험이 있었고 시험을 볼 때마다 교실 담벼락에 시험 성적 등위를 현수막에 게시하기도 했다. 성적이 안 좋으면 칠판을 붙잡고 서서 엉덩이를 맞았다. 운동장 조회 시간에 잡담을 하거나 태도가 불량하면 조회가 끝나고 운동장에 남겨져서 엎드려뻗쳐를 하기도 했다. 너무나 배고파서 점심시간 되기 전에 도시락을 열어 밥 한 술 떴다가 수치스러운 벌을 받기도 했다. '범행'을 알아차린 선생님은 도시락을 머리 위에 이고 운동장을 한 바퀴 돌게 했다. 학생의 인권이 철저히 무시되던 시절이었다. 준법을 하지 않으래야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런 시절에 이진숙 학생은 엄격한 규율 규칙에 대한 반발심이나 반항심 아니면 준법에 대한 저항 의식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백번 양보해서 그렇다손 치더라도 교사가 저항 의식과 준법성 결여를 분별하지 못하고 생활기록부에 학생에 대한 평어를 그렇게 '가혹하게' 기재했다고는 여겨지지 않는다. 한 여자 중학생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의문이 든다.
내가 초등학교에 근무하면서 하는 일이 가르치고 평가하고 기록하는 일이다. 그래서 이 위원장의 학교생활기록부 내용에 관심이 갔다. 교사마다 다소 차이점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학교생활기록부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 작성에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편이다. 객관적인 자료보다는 주관적인 인식에 기대기 때문이다.
지난 1학기에도 22명의 학교생활기록부를 작성했다. 출결상황, 창의적 체험활동, 교과학습발달상황,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 등을 기록했다. 앞의 세 가지는 대체로 객관적인 자료를 근거로 작성하게 되니 그나마 수월하다.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도 평상시의 행동 누가 기록을 근거로 하지만 그 누가 기록 자체도 내 눈에 비친 내 감각에 지각된 것에 의존하므로 객관적이기보다는 주관에 가깝다. 신경이 많이 쓰이는 이유다. 초등학교 담임교사로 지내다 보니, 학교 생활 대부분의 시간을 학생과 함께한다. 일거수일투족 학생의 표정이나 행동 등을 관찰하게 된다. 누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어려워하고, 그 아이 성격은 어떻고 어떤 음식을 좋아하고 등등. 급식 시간에 우현(가명)이가 수박을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나는 의아해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짜장면을 우현이가 싫어하는 이유도 알았다. 1학년 때 짜장면을 먹고 장염에 걸려 크게 고생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 후로 짜장면을 싫어하게 되었다고 한다. 단순한 편식의 문제가 아니었다.
건동(가명)이는 화가 나면 입을 씰룩거리고 고개를 숙였다가 앞머리를 대각선으로 치켜들면서 분을 삭인다. 고개를 숙였다가 고개를 들 때, 앞머리가 찰랑거리는 정도에 따라 화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 머리카락이 크게 흔들리면 화가 많이 난 것이다. 간섭하지 말고 그대로 두면 화를 풀고 금세 웃음을 짓는다. 훈시(가명)가 말없이 눈을 질끈 감았다 뜨는 것을 반복하면 당황하는 중이다. 윤소(가명)는 어려운 과제를 만나면 움직이지 않고 눈물만 글썽인다. 질문도 하지 않는다. 살며시 다가가서 설명해 주면 대번 알아차리고 과제를 해결한다. 이렇게 학생에 관한 정보가 쌓이면 쌓일수록 학생에 대한 이해는 깊어진다. 백 일이면 곰이 사람이 된다고 했다는데 3월에 학생을 만나 여름 방학을 맞이하기까지 딱 백 일이 지났다. 1학기 수업일수가 100일이었다. 그 사이 나와 학생 간에 래포가 형성되었을 것이다. 학생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교사에게는 큰 보람이다.
여러분은 아는가. '행동발달 특성 및 종합의견' 서술의 비밀을. 사실, 비밀이랄 것은 아니지만 지키고 싶은 지침은 있다. 가능하면 발전 지향적으로 서술하기가 그것이다. 내가 본 것이 다일 수 없으므로, 학생에 대한 오해일 수 있으므로, 착시 현상일 수 있으므로, 학생에 대한 부정 평가를 거의 쓰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학생은 언제나 성장하는 중이니까. 예를 들어, 교실에서 자주 뛰어다니고 그러다가 다른 아이와 부딪쳐서 다툼이 일어나는 일이 잦은 학생이 있다. 해마다 한 학급에 두서넛은 꼭 있다. 그럴 때는 "신체활동이 매우 활발하여 다소 위험한 상황이 일어나니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고 생활하면 좋겠음." 친구에게 욕설을 하거나 놀려서 싸움이 일어나는 일이 잦은 학생에게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할 줄 알고, 친구의 소중함을 깨달아 사이좋게 지내려고 노력하는 중임." 등으로 기술한다. 숫기가 없어 발표를 잘하지 않는 학생에게는 "경청의 중요성을 알고 친구나 교사의 말에 집중하여 듣는 태도가 좋아지고 있으므로 향후 말하기 실력이 크게 향상될 것으로 기대됨." 지각을 자주 하거나 숙제를 잘 해오지 않는 학생에게는 "시간 약속을 잘 지키고 주어진 과제해결을 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므로 가정과 학교에서 격려와 보살핌이 필요함."
이렇듯 생활기록부에 쓰는 학생에 대한 교사의 의견은 긍정적이다. 왜냐하면 학생은 자라는 중이니까. 그런데도 학생이 준법성이 결여되어 있다거나 수차례 지도했음에도 나아지지 않았다고 기술되어 있다면 심각한 상황이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문득, 나의 중학교 학생부 기록이 궁금하다. 이참에 고향에 한 번 다녀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