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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지영 Nov 10. 2024

어떻게 살 것인가

  늦은 퇴근 후, 느긋하게 소파에 앉았다. 오늘 저녁은 무슨 반찬을 준비할까 궁리하고 있는데, 초인종이 울린다. 올 사람이 없는데 누굴까, 생각하며 현관으로 나간다. 누구세요? 아, 저, 위층인데요. 현관문에 달린 쪼끄만 유리 구멍으로 보니, 하얀 머리카락이 보인다. 아, 위층에 저런 분이 살고 있구나, 생각하며 문을 열었다. 저, 현관문에 건전지를 끼우는데요. 그, 좀 도와주실래요? 아, 그럼요. 여성 노인이 먼저 올라가고 나는 뒤를 따랐다. 현관문 ‘디지털 도어 록’에는 손가락만 한 건전지 8개가 들어간다. 양극과 음극만 끼우면 되는데, 어르신이 눈이 어두워 그게 잘 안 보였나 보다. 자세히 살펴보니, 잘 끼우셨다. 잘 끼우셨네요. 그대로 덮개만 씌우시면 되겠어요. 고마워요. 애기 엄마! 딸이 가까이에 살고 있는데, 전화하면 또 여기까지 온다고 할까 봐 그냥 뒀어요. 번거롭게 해서 미안해요. 고마워요. 애기 엄마! 뭘요. 오랜만에 듣는 ‘애기 엄마’라는 말에 기분이 좋다. 아기를 키우는 젊은 여자를 부르는 말이 아니던가. 덮개를 끼우고 나서 그분은 자기 얘기를 한다. 영감이 요양원에 가고 나 혼자 살아요. 아파서 집에 누워만 있다가 내가 간병하기가 힘들다고 딸들이 지 아부지를 요양원에 보냈어요. 미안하지만 요양원에 보내놓으니 몸은 편해요. 근데 맴이 편치는 않아요. 아, 그러셨군요. 여성 노인은 처음 보는 나에게 집안 사정을 들려주었다. 몇 마디 말로도 그간의 일을 짐작할 수 있었다.          

  집에 들어와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동안 있었던 의아한 소리의 원인을 알 것만 같다. 밤늦은 시간에 이상한 소리가 들린 적이 있다. 지금은 들리지 않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소리의 정체가 궁금했다. 새끼를 잃은 동물의 울음소리와도 같았다. 굶주린 맹수의 울부짖음도 연상되었다. 먹잇감을 앞에 둔 맹수의 포효 같기도 했다. 일상에서는 듣기 힘든 낯선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멀리서 들리는 듯했다. 그런데 그 소리가 이렇게 가까이에서 난 소리였나. 혹시 그게 투병하는 남성 노인의 고통 소리였던가. 거기까지 생각하니 아픈 몸을 살고 있을 노인이 상상된다. 집 떠나 요양원에서 병과 사투를 벌이는 사람을 생각한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면, 환자복을 입고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이 나온다. 침대 하나에 야윈 몸을 눕힌다. 시간 맞춰 간호사가 약을 준다. 약을 먹고도 고통이 가라앉지 않으면 간호사가 와서 진통제 주사를 맞힌다. 까무룩 잠이 든다. 그렇게 하루가 간다. 때로 주사를 맞고도 진통이 되지 않으면 용량을 늘린다. 죽은 듯이 잠이 든다. 요양병원에서 병을 낫고 오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일은 드물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지난겨울에 우리 집안 어른 한 분이 돌아가셨다. 큰 병으로 대학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다가 더 이상 치료가 의미 없다고 하여 호스피스 요양병원에 가셨다가 몇 달 만에 세상을 떠나셨다. 사람들은 호스피스 요양병원이 죽으러 가는 길목이라고 하였다. 호스피스 요양병원에 가려는 사람이 많아서 대기하다가 자리가 비어야 갈 수 있다는 말을 한참 후에야 들었다. 그런 얘기를 들은 기억이 나서 윗집 어르신의 투병이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얼마 전, 우연히 넷플릭스에서 영화 <아무르>를 보았다. 2012년에 개봉했던 영화다. 제목처럼 사랑 영화만은 아니었다. 부부는 행복하고 평화로운 노후를 보내고 있었다. 제자의 연주회에 참석하여 인생의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다. 집안에는 책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부부가 나누는 대화에도 교양이 흘러넘친다. 음악가 출신의 노부부 조르주와 안느. 부부는 둘이서 다정하게 살았다. 남편이 요리를 하고 식탁을 차리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어느 날 아내 안느가 갑자기 마비 증세를 일으키면서 일상이 흐트러진다. 안느가 반신불수가 된다. 남편 조르주는 아내를 헌신적으로 돌본다. 불행히도 아내의 병세는 악화된다. 결혼한 딸 부부가 찾아와서 요양원을 권하지만 노부부는 완강히 반대한다. 방문 간호사 내지는 간병인의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아내를 환자취급만 하고 정성껏 돌보지 않는 것에 남편은 불만이 생긴다. 못된 어느 간병인 여자가 저주를 퍼붓는다. 간병에 지친 늙은 남편 조르주는 대항할 힘도 없다. 고스란히 폭언을 들을 수밖에 없다.    

 

  급기야 아내는 한 걸음도 내딛을 수 없다. 병상에서만 생활한다. 기저귀를 차고 병상에 누워만 있다. 혼자서는 식사를 할 수도 없다. 남편이 빨대가 달린 물병을 입에 대주는 지경까지 이른다. 아내는 간병하는 남편이 가엾다. 아내는 마치 죽음을 결심한 듯하다. 안느는 물 한 모금도 넘기기가 싫어진다. 속이 상한 남편은 입을 벌려 아내에게 물을 먹인다. 입 속에 물을 머금었던 아내는 남편의 얼굴에 물을 뿜어낸다. 부부는 깊은 슬픔에 빠진다. 병이 깊어져 대화도 불가능하다. 먹지도 못한다. 아니 안 먹는 것 같기도 하다. 하루하루가 고통이다. 남편은 아내의 죽음을 예견한 듯도 하다. 갖가지 꽃을 사 와서는 꽃줄기를 댕강댕강 자르고 꽃송이를 준비한다. 남편이 아내의 얼굴에 두꺼운 쿠션을 대고 눌러버린다. 이불 밑에서 버둥대던 아내의 다리가 멎는다. 그렇게 두 사람의 이 세상에서의 인연은 끝난다. 아내의 머리맡에 여러 꽃송이가 놓여있다. 아내의 삶을 마감시킨 남편을 누가 탓할 수 있으랴. 

     

  작년 이맘때인가. 도로에서 끔찍한 장면을 보았다. 그 일이 잊히지 않는다. 횡단보도를 앞에 두고 차들이 서행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길고양이 한 마리가 차도로 뛰어들었다. 서행하던 차바퀴에 끼고 말았다. 고양이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고양이의 두 뒷다리가 버둥대다가 바르르 떨다가 멈추었다. 신호가 바뀌고 차는 지나갔다. 차주는 사고를 모르고 가버린 것이다. 고양이의 사체가 드러났다. 순간에 일어난 사고를 보던 행인들은 어떡해 어떡해를 연발했다. 근처 가게에서 할아버지 한 분이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가져와 사고 현장을 수습했다. 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고양이는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텔레비전 국제 뉴스를 볼 때마다 섬찟하다. 지구 어디에선가 전쟁이 끊이지 않는다.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수명이 다해 죽는다거나 병을 앓다가 죽는 거야 어쩔 수 없다 치는데, 사람이 사람을 저렇게 무참하게 죽인다는 게 슬프다. 동물 세계 어디를 봐도 동종 동물을 저렇게 참혹하게 죽이는 경우는 없다.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다른 동물을 잡아먹는 게 다다. 배가 부른데도 자기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더 잡아먹지는 않는다. 고양이가 고양이를 잡아먹지도 않는다. 사람이 사람의 목숨을 해칠 때마다 인간의 삶이 참 비루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 그리고 전쟁. 그곳에서 죽어가는 사람들. 우리네 삶이 거센 바람 앞에 촛불처럼 위태롭다. 우울하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영장이라는 말로 뻐기면서 살 일이 아니지 않은가. 고양이도 인간도 평화롭게 살 날이 올 것 같지는 않다.      


  얼마 전,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는 전쟁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노벨상 수상에 대한 잔치 분위기를 마다하였다. 작가의 깊고 넓은 ‘마음 그릇’에 감탄한다. 한강 작가는 소설 <소년이 온다>에 5․18 민주화운동의 참상을 적었다. 사람의 목숨을 함부로 여기는 권력의 횡포가 등장한다. 부당한 권력에 맞서 저항하는 용기 있는 사람도 나온다. 이순신 장군이 왜군에 맞서 싸우기 위해 출정하는 병사들에게 한 말이 있다. 목숨이 위태로운 전장에서 두렵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런 병사들에게 장군은 힘주어 말한다.

  “두려움을 용기로 바꿔라!”

  죽음이 두려운가. 두렵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죽음을 모른다. 죽어보지 않아서 모른다. 죽으면 생각할 수가 없어서 또 모른다. 그러고 보니 죽음을 몰라서 두려운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죽음 이후에 남겨진 사람으로서 살아보니 슬픔은 안다. 내 죽음이 두렵다기보다는 내 죽음 이후에 남겨진 사람이 겪어야 할 슬픔이 두렵다. 엄혹한 시절이다.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2024. 여름, 마로니에 공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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