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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지영 Nov 10. 2024

기분이 태도가 되고 습관이 될까 걱정입니다

학교 승강기에서 벌어진 일

  좋은 기분이 긍정적 태도가 되고 좋은 습관으로 이어져 '좋은 사람'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우리네 삶은 이렇게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개인의 신체적 정신적 조건이나 인간관계 또는 자연적 조건에 따라서도 좌지우지되는 게 인간의 기분이지 않는가. 학교에서 초등학생과 함께 생활하는 교사로 지내면서 내 기분과 감정에 따라 일하기는 어렵다. 때로 불쾌한 기분이 들어도 이를 드러내지 않고 절제하여 늘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특히 학생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부정적이지는 않은지, 권위적이지는 않은지 늘 점검하고 고치려고 한다. 얼마 전 학교 승강기에서 일어난 일에서도 그러했다. 교사는 자신뿐만 아니라 학생의 기분과 태도까지 관심이 있다. 교사에게 지적받는 학생의 불쾌한 기분이 불손한 태도가 되고 나쁜 습관으로 이어져 품위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지 못할까 걱정이 되었다. 


  출장을 가기 위해 3층에서 승강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영 내려오지 않는다. 셋이서 기다리다가 B선생님은 그냥 계단으로 내려간다. 역시 젊음은 좋다. 누군가가 5층에서 타는데 시간이 걸리는 모양이다. 짧은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영문을 모르며 기다리는 시간은 더디 흐른다. 마침내 눈앞에서 승강기 문이 열렸다. 검은색 옷을 입은 남자아이들 대여섯이 승강기 벽에 딱 붙어서 키득키득 웃는다. 문이 닫히고 내려가는 동안에도 등 뒤에서 시시덕거린다. 재미있는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다 같이 1층으로 내려갔다. 동행한 A선생님이 아이들을 불러 세웠다. 승강기를 왜 탔냐고 물었다. 한 학생은 허리가 아파서 탔단다. 그럼 나머지는? 부축하느라고 탔단다. 그리고 나머지는 따라 탔다고 한다. 따라 탔다고 하는 학생은 조금은 민망한 표정을 짓는다. 어느 학교나 몸이 불편하거나 무거운 짐을 든 사람만 승강기를 타라는 지침이 있는 것으로 안다. 


   나와 동행한 A선생님은 아이들과 얘기하는 과정에서 마음이 상했다. 내가 옆에서 듣기에도 빈정거리는 말투가 거슬렸다. 친구 어깨에 한 손을 얹고 기대서서 아픔을 재현하는 모습이 자연스럽지도 않았다. 그러고 있는데 승강기는 올라갔다가 또 다른 여학생 일곱여덟을 싣고 왔다. 아이들이 내 눈앞에 섰다. "누가 아픈 거야?" 한 명이 손을 살짝 든다. 배가 아프다고 한다. "그래, 빨리 나아라. 근데 안 아픈 사람들은 계단을 사용해라."라고 짧게 말했다. 몰래몰래 승강기를 타는 아이들이 있을 때마다 나는 길게 말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나도 종종 승강기를 타기 때문이다. 여학생들은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남학생 중 한 명은 선생님도 탔으면서 왜 그러냐고 A선생님께 따져 물었다. 그러면서 내 옆에 있던 한 남학생은 나에게 "선생님이세요? 외부인이세요?"라고 말했다. 학교에는 학부모를 비롯한 외부인 출입이 많아서 누가 선생님인지 외부인인지 학생들은 잘 모를 수 있다. 더구나 건물 층을 달리하는 경우는 다른 학년 선생님과 마주할 일이 없으므로 선생님인지 아닌지 알기도 어렵고 별 관심도 없다. 나는 남학생들을 지도하는 A선생님 곁에 서 있기가 뻘쭘해서 먼저 주차장으로 갔다. 


  다음 날, 우리 반 아이들이 하교하고 나는 교실 뒷정리를 하고 있었다. 열린 교실 앞문으로 검은 옷을 입은 학생 두 명이 서 있다. 고개를 안 쪽으로 들이밀고는, 다짜고짜 묻는다. "혹시 어제 엘리베이터 타신 선생님인가요?" 한다. 순간 무표정한 아니 도전적인 학생의 말투에 위협을 느꼈다. "어, 그래. 어제 엘리베이터 탔었지. 근데 왜?" 들어 보니, A선생님도 탔으면서 왜 우리들을 야단치는지 따져보고 사과를 받고 싶어서 온 모양이었다. 그러면서 A선생님은 몇 반이냐고 물었다. 나는 학생을 우리 교실로 들였다. 학생을 이해시키기 위해 몇 마디 말했다. 아픈 사람이 승강기를 타는 건 당연하다. 그러라고 승강기가 있는 거다. 다만, 그러지 말라는 선생님에게 불손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고쳐야 하지 않느냐, 그리고 아프지 않으면 계단을 사용하는 게 성장기의 아이들에게는 더 낫다, 등의 말을 했다. 그래도 너희들을 지도해 준 A선생님은 너희들에게 애정과 열정이 있어서다, 등의 말도 했다. 그러던 중, 복도 수돗가에서 대걸레를 빨고 있던 A선생님이 그걸 보고는 우리 교실로 들어왔다. 


  A선생님은 또다시 그 학생을 이해시키느라 많은 말을 했다. 얼마 전, A선생님은 허리를 다쳐서 병가까지 내고 학교에 출근도 하지 못했다. 나이가 들면 허리도 다리도 아프다는 고백까지 학생에게 해야 했다. 듣고 있으니 서글펐다. 학생은 또 선생님이 '싸가지없다'는 말을 했는데, 그걸 사과하라는 요구를 했다. A선생님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A선생님은 늘 품격 있는 부드러운 말로 훈육하는 사람으로 교내에 알려져 있다. 학생은 선생님이 자기에게 '불순하다'라고 말한 것을 사과하라고 했다. A선생님은 '불순'이 아니고 '불손한 태도'를 지적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 학생이 자신의 감정을 용기 있게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교사가 학생을 잘못 지도한 것인지 잠시 헷갈렸다. 이 상황을 처음부터 끝까지 알고 있는 나는 A선생님의 열정 어린 훈육에 찬사를 보낸다. 그에 비하면 나는 문제 상황을 회피했다. 부끄럽다. 학생과 교사가 행복하게 공존할 수는 없는 걸까. 문제의 본질은 승강기를 탔느냐 안 탔느냐가 아니다. 본질은 '태도'에 있다. 일어난 일이나 상황에 대하여 교사를 대하는 마음가짐과 드러나는 몸가짐이 핵심이다. 교사에게 훈육을 받는 불쾌한 기분이 불손한 태도가 되고, 불손한 태도가 누적되어 나쁜 습관이 될까 걱정이 된다. 


  하루에 몇 번씩 계단을 오르내려야 한다. 교무실 도서관 급식실 과학실 운동장 그리고 4층에 있는 실내체육관 등을 가려면 계단을 사용한다. 아직까지는 무릎이 쓸 만하기는 한데, 그래도 나이를 드니 걱정은 된다. 오래전 무릎이 아파 정형외과에 갔을 때, 지금은 심하게 퇴행이 진행되지 않았지만 승강기가 있으면 승강기를 타는 게 좋습니다,라는 말을 들었다. 더구나 요즘,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는 노후된 승강기 교체 공사를 한다. 하여 외부로 드나들기가 힘겹다. 한 달간 진행되는 승강기 교체공사가 빨리 끝나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이달 말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우리 집이 13층인데, 10층 정도까지 올라오면 다리가 터질 것 같고 숨이 차서 기어가고 싶은 심정까지 든다. 이런 사정도 학생들에게 말했어야 하나. 알고 보니, 헬스장에는 '계단 오르기' 운동기구가 있는 모양이다. 한 달간 이어지는 계단 오르내리기가 큰 운동이 되었는가 보다. 내 장딴지와 허벅지가 딴딴해졌다. 승강기 공사가 완료되고서도 아파트 7층 정도까지 계단 오르기를 할까 생각 중이다. 


한 여성이 계단을 올라가며 운동을 하고 있다. (사진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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