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578돌 한글날 경축식에서 갖게 된 자부심과 아쉬움
2024년 10월 9일은 578돌 한글날이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경축식이 열렸다. 나는 현장에는 못 가고 집에서 텔레비전으로 보았다. 약 45분간 진행되는 경축식을 꼼꼼히 본 것은 오랜만이다. 그 덕분으로 한글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느껴 뿌듯했다. 반면에 우리말 사용에 있어서 고쳐야 할 점이 눈에 띄었다. 특히 경축식의 끝부분 축하공연, 텔레비전 화면에 나오는 노랫말 자막에 큰 오류가 있었다. 시청하는 내내 마음이 불편하였다. 이 점 때문에 이 기사문을 쓰게 되었다. 경축식은 국무총리와 내빈이 입장하면서 시작되었다.
한글날 경축식을 시청하면서 한글의 우수성과 드높아진 위상을 깨달았다. '여는 이야기'에서 독일 출신 방송인 다니엘 린데만이 한글에 대한 특별한 이야기를 하였다. 독일에서 태권도 도복의 한글을 대하면서 강한 인상을 받은 모양이다. 그는 한글의 우수성에 대하여 말하였다. 한글 자음은 발음기관이나 입술 모양을 닮았다. 'ㄱ'은 발음기관을 본떴고, 'ㅁ'은 입술모양을 본떠 만든 것이 그 예이다. 이처럼 한글은 과학적이고 물리적이라고 칭송하였다. 그는 한글을 배우면서 쉽게 배우고 쓸 수 있다는 점에 감동했다고 한다. 한글을 배우면서 한국의 문화와 역사에 관심이 생겼다고도 하였다.
그런데 이렇게 우수한 한글을 가진 한국인들이 외래어를 지나치게 쓰는 것이 의아했다. 그러면서 식장 뒷면 영상에 옷가게가 나왔다. '터틀넥, 베스트, 맨투맨, 슬랙스, 티셔츠, 풀오버' 이어서 빵집 화면이 나왔다. 여러 빵이름이 나왔다. '크러핀, 앙버터, 아망드, 크로와상, 빨미까레'.
또한 한글을 배우려는 사람이 세계 여러 나라에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2024년 6월 기준으로 세종학당재단에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전 세계에 세종학당이 88개국 256곳이라고 한다. 또한 2023년 12월 기준으로 전 세계 세종학당 오프라인 수강생 수가 총 12만 7894명이나 된다고 한다. 교육부가 전하는 전 세계 한국어 교육 현황을 보면, 한국어 채택교가 47개국 2154개교,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채택한 국가가 24개국, 한국어 대입시험 과목 채택국가는 10개국이라고 하니, 가히 우리 한국어의 위상이 대단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2023년 '듀오링고(외국어 학습 사이트)'에서 발표한 '세계인들이 많이 학습하는 언어' 10개를 많이 배우는 순서대로 나열하면, 영어-스페인어-프랑스어-독일어-일본어-한국어-이탈리아어-힌디어-중국어-포르투갈어이다. 한국어가 6위이다. 이렇게 세계인이 우리 한국어를 배우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한국의 문화 경제 사회 등 여러 발전이 영향을 끼쳤겠지만 뭐니 뭐니 해도 한국의 음악, 드라마, 영화 등이 아닐까 추측한다.
이렇듯 한국어의 위상이 날로 높아져 가는 가운데에도 막상 우리의 한국어 사용을 보면 고쳐야 할 점이 눈에 띈다. 외래어의 남용은 말할 것도 없고, 늘어만 가는 신조어와 줄임말 등에 대하여 깊이 고뇌할 때가 되었다. 의미 전달보다는 자극적인 표현을 써서 한글을 오용하는 행태도 점검해야 한다. 요즘 정치권에서는 '꼴통'이라는 말을 쓴 고위 관료가 뭇매를 맞는가 하면, 국감장에서는 '병신'이라는 말까지 써서 눈살을 찌푸리는 경우도 있었다. 비속어와 차별적인 언사도 반성해야 할 대목이다. 말의 쓰임이 사람의 인격을 대변한다.
한글날 경축식을 시청하면서 아쉬운 점도 있었다. 세 가지를 들겠다.
첫째, 한글 자음의 이름을 바로 알고 써야겠다. 경축식에서 '서도밴드'라는 사람들이 두 곡을 들려주었다. '한글 뒤풀이'와 '희망의 아리랑'이다. '한글 뒤풀이'는 예로부터 한글을 배우며 불렀던 민요라고 한다. 문제는 첫 곡 '한글 뒤풀이'를 부르는 동안 텔레비전 화면에 보이는 자막이었다. 내 눈이 의심스러워서 유튜브에 올라온 자막을 확인해 보았더니 다음과 같은 영상이 올라와 있다.
"기억 니은 디읃 리을(기억 니은 디읃 리을) 기억 자로 입을 짓고 한글 노래를 불러볼까..."
여러 번이나 반복되는 노랫말에서 이건 분명한 오류였음을 알았다. 아니 실수라고 믿고 싶었다. 다행인 것은 무대 뒷면 영상에는 제대로 나온 것이다.
"기역 니은 디귿 리을..."경축식장에는 우리나라 사람뿐만이 아니라 외국인도 많았다. 모두 한글에 관심이 있고, 한글과 관계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겠는가. 그 사람들이야 텔레비전 화면을 안 봐서 다행일지 몰라도 한글에 관심 있는 다른 외국인이 텔레비전을 시청했다면 얼마나 혼동이 되었을까 걱정이 된다. 그게 외국인뿐이겠는가. 한국인을 비롯한 시청하는 사람 모두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을 것이다. 10일 아침에 KBS 다시보기를 찾아보니, 자막이 수정되어 올라와 있다. 다행이다.
둘째, 적절한 '몸짓 언어'를 사용하자. 몸짓 언어란, 음성 언어의 보조수단으로 몸짓이나 표정으로 의사를 전달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이번 경축식의 시상식에서는 몸짓 언어가 부족했다. 흔히 우리나라 사람을 대면한 외국인은 우리 한국인의 표정이 매우 경직되어 있다고 말한다. 지하철이나 승강기 등에서 낯선 이와는 눈도 마주치려 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이번 경축식에서도 그랬다. 국민의례가 끝나고 '한글 발전 유공자 포상' 시간이 되었다. 개인 8명과 1개 단체에 시상했다. 스탠퍼드대학교 부교수 다프나 주르에게 훈장이 수여되었다.
"귀하는 한글 연구 및 보급을 통하여 한글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가 크므로 대한민국 헌법에 따라 다음 훈장을 수여합니다."
수상자는 다프나 주르 외에 외국인 4명, 한국인 3명 그리고 칠레 센트럴대학교에 단체표창이 주어졌다. 상이란 받는 이도 기쁘고 주는 이도 즐거운 일이다. 그런데 경축식 시상에서는 상을 받는 이도 주는 이도 기쁘지 않은 모양이었다. 즐겁지 않은 모양이었다. 표정이 너무 굳어 있었다. 너무 엄숙했다. 엷은 웃음이라도 주고받았으면 좋으련만, 기다려도 작은 웃음을 보이는 사람이 없었다. 낯선 나라에 와서 상을 받는 외국인은 특히 긴장했을 터이다. 그 자리에서 국무총리가 시상을 하면서 소리 없는 작은 웃음이라도 웃어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다. 맨 마지막 수상자인 아인샴스대학교 객원교수인 오세종씨만이 밝은 웃음을 보여주었다.
셋째, 우리의 언어 사용이 외국인의 한국어 학습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주제 영상 시간이 되었다. 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글 관련 소감이 소개되었다.
"한글을 정말 재미있게 배웠던 거 같아요. 획이랑 동그라미 두 가지만 가지고 한국어의 모든 말소리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게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핀란드인 유학생 실비아)
"최근에 음악이나 드라마를 통해서 한국어를 접하고 배우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진짜 많아진 것 같아요."(중국인 유학생 진우동)
한글의 세계화에 대한 이야기여서 흐뭇한 것도 잠시, 공통적으로 들어간 게 '~ 것 같아요'이다. '~것 같아요'는 자신감 없는 말로 들린다. 말하는 이가 자기 말에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말로 들리기도 한다. 외국인이 어디서 배웠겠는가. 바로 우리 한국인에게서 잘못된 한국어 사용을 배운 것이 분명하다.
혹시나 외국인이 한국어에서 생각을 말하는 경우에는 '~것 같아요'로 끝맺으라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을까 봐 우려된다. 우리가 우리말을 잘 써야 외국인이 한국어를 제대로 배울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데 "재미있는 것 같아요." "맛있는 것 같아요"등의 말을 하기도 한다. 재미있으면 재미있는 것이지, 재미있는 것 같다는 말은 잘못된 표현이다. "재미있어요.' "맛있어요"로 고쳐서 말하자. 자신의 생각을 말할 때, '~것 같아요'의 말투가 적절한지 따져봐야 한다.
경축식에서 개화기의 국어학자 주시경 선생을 언급했다. 한글을 연구하고 후진 양성에 힘썼던 학자이자 교육자였고, 한글의 대중화와 근대화에 앞장섰던 분이다. 그가 말했다.
"말이 오르면 나라도 오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도 내린다."한 나라의 흥망성쇠가 '말'에 달려있다는 의미이다. 말이 곧 정신이요 넋이고 얼이기 때문이다. 국가 차원으로 보면, 말의 품격이 나라의 품격 즉 국격을 나타낼 것이다. 아름다운 우리 문자 한글, 한글을 올바르게 쓰고 소중하게 여긴다면 '잃어버린' 우리의 품격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나라가 아무리 위태로워도 말과 글이 살아 있으면 잃어버린 나라도 잃어버린 정신도 되찾을 수 있다. 일제강점기 그 혹독한 시대에 우리의 선조들은 목숨 바쳐 우리 글과 우리말을 지켰다. 한국의 위대한 문화 발전, 그것은 우리의 한국어 사용 품격에 달렸다.
***위의 글은 올해 '한글날 경축식'을 TV로 보고 썼던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