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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나 Dec 12. 2023

머무는 사랑, 떠나는 사랑

현실 연애에서 두 사람 중 조금이라도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이 약자라서 언제나 더 많이 마음 아프다고들 한다. 사랑의 약자 편에 있는 사람은 절대 쿨 cool할 수 없고,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 바라고 원하는 게 많아진다. 타자에 대한 욕망이 커질수록 실망도 커진다. 때로는 자기 마음을 잘 몰라주는 타자에 대해 미운 맘도 품어보고, 속상해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사랑하는 마음이 더 크기 때문에 아프다. 어떻게 해도 채워지지 않는 사랑을 갈구하고 실망하다가 외로워지고 화나는 소유적 사랑은 상대방을 숨 막히게 한다.  붙잡고 싶은 사랑은 오히려 도망가고, 사랑 본래의 생기는 사라진다.     


사랑을 시작할 때면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 알고 싶은 게 많아진다. 그가 혼자 있는 동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취향이 무언지, 어떤 의도를 가지고 그 말과 행동을 하는지 모든 게 알고 싶어 진다. 자기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면서 상대방에 대해 완전히 알고 싶은 마음은 욕심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눈에 콩깍지가 씐다는 말이 있다. 그를 잘 모르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라 신비로운 존재 내지는 지나치게 대상을 이상화하여 사랑한다는 의미다. 사랑의 열정에 사로잡히면 사실을 왜곡해서 보거나, 자기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을 정확히 설명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눈에 쓰인 콩깍지가 벗겨지면 신비로운 환상은 해체되고 깜짝 놀랄 만한 현실만 남는다.      


사랑이 삶을 뒤흔들어 놓고, 깊은 내면세계를 뚫고서 한 줄기 빛을 비출 때, 이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또 다른 자기 모습이 발견되기도 한다. 마치 봉인되어 있던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듯 비밀스럽게 감추어져 있던 특성들이 드러나 새로운 차원의 경험 세계로 이끈다. 사랑은 한 사람을 변화시킬 만큼 엄청난 에너지를 불러일으킨다. 만약 낭만적 관계가 계속 유지되기를 바란다면 사람도 사랑도 언제든 변할 수 있다는 열린 마음과 약간의 긴장감이 필요하다. 오래된 연애가 식상한 이유는 서로 뻔히 잘 안다는 착각 속에서 더 이상 긴장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지루할 정도로 권태로운 오랜 관계를 쉽게 끊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렇게라도 두 사람이 연결되어 있다는 안도감이 헤어져 홀로 견뎌내야 할 외로움보다 낫기 때문일 것이다. 


북클럽에서 읽은 두 권의 그림책에서 오래가는 사랑의 비법을 발견했다. 정진호 작가의 <여우 요괴>는 구미호 전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작가만의 독특한 시선이 담긴 글과 그림으로  각색되어 전혀 다른 사랑 이야기가 펼쳐진다. 간 1,000개를 먹으면 무슨 소원이든 이루게 된다는 여우 요괴는 999개의 간을 해치우고 이제 1개의 간만 더 먹으면 목표 달성이 코앞이다. 요괴는 마지막으로 간 크다고 소문난 김생원의 간을 빼먹으러 찾아온다. 지금까지 어떤 생명체도 요괴 앞에서는 벌벌 떨며 까무러치고 도망가기 바빴는데 김생원의 반응은 묘하다. 요괴의  눈을 피하기는커녕 빤히 눈맞춤 하고, 요괴와 두 번이나 밀당을 하더니 대뜸 청혼을 한다. 요괴의 입장에서는 얼이 빠지고 기가 막힐 노릇이다. 요괴는 김생원의 각시가 되어, 하루만 더 하루만 더 하며 김생원을 살려 두었더니 어느덧 함께 산지 50년이 흐른다. 


여우 요괴 각시 되니 김생원 죽이기가 왠지 망설여졌지. 정진호, <여우 요괴>.


그렇게 한 해는 다섯 해가 되고, 다섯 해는 쉰 해가 되었구나. 정진호. <여우 요괴>.


김생원은 처음부터 요괴에게 자기 생명을 구걸하지 않고 그가 원하는 간을 주고자 하였다. 간을 준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자신을 송두리째 내어주는 것이다. 자기 욕구를 뒤로 한 채 타자의 마음에 우선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김생원은 살면서 단 한 번도 요괴의 힘을 이용하여 무언가를 얻어내려 하지 않는다. 요괴 각시와 함께 봄이면 꽃놀이, 가을이면 단풍놀이를 하고, 여름이면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겨울이면 눈길을 함께 거닌다. 나를 위해 타자의 희생을 강요하지 않을 때 타자의 마음은 자발적으로 열린다. 요괴의 삶에 생기를 불어넣는 김생원의 사랑법이 통해서일까? 요괴 각시는 김생원이 죽는 날 함께 생을 마감한다. 타자의 자유를 구속하지 않으면서 타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김생원의 사랑법은 요괴 각시로 하여금 죽을 때까지 아니 죽어서도 그의 곁에 머물고 싶게 한 것이다. 




떠나는 사랑의 모델을 보여주고 있는 독일 작가 니콜라우스 하이델바흐의  <난 커서 바다표범이 될 거야>는 전래동화 <선녀와 나무꾼>의 이야기를 떠오르게 하는 스코틀랜드 '셀키 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셀키는 평소 물속에서 바다표범의 모습으로 다니다가 바다 위로 올라올 때는 가죽을 벗고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으로 변신한다. 이때 누군가가 셀키의 가죽옷을 몰래 빼앗으면 바다로 돌아가지 못하고, 그 옷을 가진 자와 결혼하게 된다. 그림책을 펴면 두 페이지 가득 물고기와 자유롭게 수영하는 소년이 등장하고, 이야기는 소년의 관점에서 전개된다. 


“난 수영이라면 언제나 잘했어. 배운 적도 없는데 …”. 니콜라우스 하이델바흐. <난 커서 바다표범이 될 거야>.


아빠는 배를 타고 고기를 잡으러 가고, 소년은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엄마는 소년에게 밤마다 깊은 바닷속  신비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느 날 밤 소년은 우연히 아빠가 비밀스럽게 반짝이는 무언가를 숨기는 모습을 본다. 소년은 궁금한 마음에 아빠가 숨겨놓은 것을 찾는데, 놀랍게도 그것은 바다표범 가죽이었다. 소년은 아빠가 셀키가 아닐까 하는 의심을 엄마에게 털어놓는다. 다음 날 아침, 엄마가 보이지 않는다. 다음 날, 그다음 날도, 봄에서 여름으로 계절이 바뀌어도 엄마는 집에 없다. 아빠와 소년은 엄마의 부재를 묵묵히 받아들이고 삶을 이어간다.     

 

아빠와 엄마는 어떻게 결혼하게 되었을까? 만약 아빠가 셀키인 엄마의 가죽을 훔쳐 몰래 숨겨서 어쩔 수 없이 함께 살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면, 엄마의 의사나 자유에 반하는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동거다. 대등한 감정의 교호가 없는 불완전한 출발만으로도 충분히 비극적 미래가 예견된다.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사라진 사건을 부자의 관점에서 본다면 크나큰 '상실'이지만, 엄마의 입장에서만 본다면 드디어 맞이한 '해방'이다. 마침내 원치 않던 구속과 통제로부터 벗어나 자기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간 것이다. 


엄마는 왜 ‘하루만 더’ 집에 있을까 말까 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떠났던 것일까? 엄마는 그동안 셀키가 아닌 인간으로 살면서 행복하지 않았던 것일까? 엄마는 원형적 정체성인 셀키로 살지 못하도록 자신을 인간세계에 억류한 남자와는 단 하루도 더 함께 있고 싶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면 가죽옷을 찾게 되면 바다로 돌아가는 것이 셀키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던 것일까?   

  

"난 크면 뱃사람이 될 거야. 아니면 바다표범이 되거나." 니콜라우스 하이델바흐. <난 커서 바다표범이 될 거야>.




외부의 어떠한 강요 없이 자발적으로 서로 사랑해야만 오래오래 함께 할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는 자유를 구속하고서도 사랑받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내가 원하는 걸 타자에게 빼앗아서라도 가지려는 마음은 사랑이 아니다. 내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변하더라도 타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귀 기울이고, 그것을 들어주기 위해 애쓰는 마음이 사랑이다. 서로의 사랑이 통할 때 함께 하는 하루하루가 어느새 평생이 되고, 어쩌면 영원까지 이어질지도 모른다.   


사랑은 남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 속에 살아 있는 것을 주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명을 줌으로써 타인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에리히 프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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