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에세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비 Jun 17. 2023

부품이 교체되기까지

- 회계법인의 기억

나도 모르게 눈을 찡그렸다. 모니터에 띄워진 숫자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노트북 시계는 벌써 새벽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머리가 지끈거려 양손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손끝을 세워 머리 위쪽을 톡톡 두드리다가 손가락에 머리카락이 엉켰다. 살살 풀어내려고 노력했는데 또 머리카락이 뽑혔다. 의자 옆 쓰레기통에 버리다가, 이미 그 안에 들어가 있는 내 머리카락 몇 가닥을 발견했다. 씻을 때도 그렇고 점점 숱이 줄어드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다시 고개를 들다가 근처 파티션 안에 앉아있는 동료의 모습에 눈길이 머물렀다. 동료의 책상 위에는 테이크아웃용 커피컵이 세 개 놓여 있었다. 그는 모니터를 노려보다 고개를 흔들며 한숨을 쉬었다. 책상 구석에 있던 박카스를 집어 뚜껑을 열었다. 따악ㅡ 꿀꺽꿀꺽. 나는 멍하니 그가 박카스를 마시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는 문득 시선을 느꼈는지, 나를 보고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 박카스 하나 더 있는데, 쌤도 하나 줄까?”




풋내기 회계사의 첫 출근


2009년 처음 회계 법인에 입사할 때만 해도, 나는 그야말로 부푼 꿈에 들떠 있었다. 자격증 시험에 붙었고, 업계에서 손꼽히는 회사에 합격 통지를 받았다. 쇳덩어리도 씹어 먹을 수 있을 만큼 패기가 넘쳤다. 첫 출근 날. 파란 가을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은 회사 건물을 올려다보며 참으로 웅장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여덟 개나 되는 엘리베이터 중 어느 것을 타야 할지 잠시 혼란스러웠지만, 나는 이내 정신을 가다듬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그 앞에서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이제 나도 엄연한 회계사다!


1, 2, 3, …..17. 땡. 환하게 웃고 있는 내 사진이 박힌 사원증을 유리 출입문 세콤에 갖다 대었다. 띠로링. 문이 열렸다. 인기척은 났지만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직원들의 자리는 모두 파티션으로 나뉘어 있었고, 앉아있으면 그 사람이 자리에 있는지 없는지 보이지 않았다. 앉아도 되나 싶어 다가가보면 파티션 바깥 면에 누군가의 이름이 붙어 있었다. 나는 한참을 헤매다 겨우 빈자리에 앉았다. 부서원들은 띄엄띄엄 와서 나에게 환영한다고 인사를 했다. 누군가는 아직 ‘시즌’ 전이라 사무실에 사람이 많지 않다고도 덧붙였다.


‘시즌’이 도대체 어떤 건지 그때는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입사하고 1주일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부서원들 이름만 외우는데도, 극심하게 피곤할 때마다 생기는 입술 물집이 올라왔다. 새로운 사람들 옆에서, 평소 입지 않던 투피스 정장을 걸쳤고, 운동화만 신던 발에 5cm 짜리 구두를 끼워 넣었기 때문이었다. 딱히 중요하지 않은 프로젝트에 발을 슬쩍 담갔고, 서로를 칭하는 ‘쌤’이라는 호칭에 익숙해질 때 즈음 12월 초가 되었다. 차가워지는 바람만큼 ‘시즌’이 다가올수록 사람들의 눈빛이 점점 비장해졌다.




시즌이란 무엇인가


나는 의욕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파트너까지 올라가 보겠다는 마음이었다. 파트너는 회계법인의 지분을 나눠 갖는 직위로, 사기업의 이사급을 말한다. 지금이야 그 자리까지 가려면 얼마나 많이 술을 마셔주고 접대 골프를 쳐야 하는지 알지만, 그때는 몰랐다. 그저 일을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보여줘야겠다고 다짐했다. 마침 1월 초에 예정된 프로젝트 참가자를 모집하기에 손을 들고 자원했다. 쌤들은 나의 의욕을 칭찬하면서도, ‘시즌’이 얼마나 길어질지 모르니 적당히 몸을 사려야 한다고 충고했다.


내가 속한 부서는 법인이 1년 치 장부를 마감하고 재무제표를 만들면, 그 재무제표를 제대로 만들었는지 점검하는 ‘감사’ 업무를 했다. 부서원들이 바쁜 정도는 상당 부분 부서의 대장인 파트너들에게 달렸다. 만약 파트너가 영업을 잘 해서 국민은행이나 LG전자같이 엄청나게 큰 법인 감사를 따오면, 감사 보수 또한 어마어마하다. 그만큼 작은 기업 여러 개를 감사해서 자잘하게 돈을 벌 필요가 없는 거다. 우리 부서 클라이언트 목록에는 중소형 법인만 가득했고, 부서원 모두 1월부터 3월까지 미친 듯이 바빴다.


작은 법인일수록 감사 목적으로 그 법인에 방문하는 기간을 2박 3일, 길어야 3박 4일로 잡는다. 내가 입사한 해에 유난히 신입을 덜 뽑았던 회사 방침과 나의 열정이 맞물려 스케줄표가 꽉꽉 찼다. 내 이름을 따라가면 1월 초부터 오색찬란 무지갯빛으로 열 개가 넘는 감사 계획이 잡혀 있었다. 월·화·수요일 영등포 출장, 목·금요일과 그다음 주 화요일까지 청담 출장, 바로 수·목·금요일 인천 출장…… 감사보고서 발행 마감 날짜는 법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대략 3월 23일 정도까지는 모든 일이 끝나야 한다. 기말 감사 출장을 시작해서 모든 감사보고서가 발행되기까지의 기간을 ‘시즌’이라고 부른다.



© Scott Graham, 출처 Unsplash



시즌의 시작, 야근의 시작


첫 번째 감사 출장에서 나는 몹시 당황했다. 같이 갔던 프로젝트 팀원들은 나를 제외하고 네 명이었다. 모두 감사 받는 법인 회의실에 도착하자마자 일사불란하게 노트북을 켜고 인터넷을 연결했다. 프로젝트 팀장은 메일로 업무분장표를 보냈다면서 자신에게 메일로 요청 자료 목록을 보내라고 말했다. 나는 와이파이를 어떻게 잡는지도 몰랐고, 무엇을 요청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회의실은 타닥타닥 자판 두드리는 소리만 들릴 뿐, 아무도 그 뒤로 말을 하지 않았다.


이십 분 정도 눈치를 보다가, 나와 입사 사번이 가장 가까운 팀원에게 말을 걸었다. 


“쌤, 바쁘신데 죄송하지만 제가 뭘 요청해야 하는지 몰라서요.” 


그 팀원은 경쾌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쌤, 여기가 처음이죠? 막내는 현금, 선급금, 유형자산, 비용 같은 계정하니까… 시스템에 전기 조서 까보면 뭐 요청했는지 쓰여 있을 거예요. 그거 보고 자료 받고, 궁금한 건 회계팀 분들한테 인터뷰 요청해서 물어보면 돼요.”


작년 전임자의 검토 파일을 열어보고 따라 하라는 말이었다. 감사하다고 웃어 보였지만, 마음속에서 불안이 들끓었다. 엑셀을 열어 작년 숫자가 들어갔던 자리에 올해 숫자를 바꿔 넣으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당시 나는 명세와 원장의 차이점이 뭔지, 차변 대변과 전기말 당기말 와꾸를 맞추는 게 뭔지도 몰랐다. 놀이동산을 갔는데 바이킹과 청룡열차의 차이점이 뭔지, 자유이용권과 빅5를 샀을 때 각각 놀이기구 몇 개를 탈 수 있는지 모르는 정도의, 기본적인 지식도 없었다는 뜻이다.


2박 3일 일정은 빠듯했고, 다들 자기 일을 처리하기에도 너무 바빴다. 다른 팀원들이 맹렬하게 법인 회계팀과 인터뷰할 때, 나는 쪼그라들다 못해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싶었다. 정확히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발만 동동 구르다 출장이 끝났다. 사람들은 출장지보다는 사무실에서 상대적으로 여유로웠고, 적어도 저녁이라도 같이 먹으면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조금 물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1월 초부터 끝나지 않는 야근이 시작되었다.




헤어 나올 수 없는 시즌의 강렬함


개별 계정 검토를 마치고, 팀장에게 검토를 잘했는지 확인받고, 현금흐름표를 그리고, 감사보고서를 만들어야 하나의 법인에 대한 감사 업무가 끝난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출장지에서 감사보고서까지 쓰지 못했다. 일이 쌓일수록, 이전에 나갔던 프로젝트 팀장들한테 전화가 자주 왔다. 때문에 다른 법인 출장지에 나가서도 그 법인 감사만 할 수 없었다. 팀 구성이 매번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 팀장이 내가 다른 법인 일을 하는지 모르도록 눈치를 잘 살펴야 했다. 바로 옆에서 들여다보지 않으면 화면이 까맣게 보이는 노트북 보안 필름은 필수였다. 한 번에 여덟 개 법인 감사 업무를 동시에 했던 적도 있었다.


1월 중순 즈음 되니 서울 각지로 출장 나갔던 사람들은 저녁마다 사무실로 전부 복귀했다. 맨 정신으로 복귀할 수 있으면 다행이었다. 2박 3일 중 하루는 감사 받는 법인 회계팀과 회식을 했다. 어떻게라도 사무실 가서 야근하겠다고, 술 마시기 전에 컨디션을, 술 마시고 난 다음에 여명808을 들이켰다. 지방으로 출장 가는 주에는 숙소로 잡은 모텔에서 야근했다. 모텔 조명은 너무 어두웠고, 눈꺼풀이 자주 무거워졌다. 꾸벅꾸벅 졸다가 엑셀 파일에 입력된 ‘ㅏㅏㅏㅏㅏㅏㅏ’를 백스페이스로 지웠다. 노트북 밝기를 최대로 올리면 눈이 쨍하게 아파지며 잠이 살짝 깼다.


시즌 동안 부모님은 내 얼굴을 아침에만 잠깐 볼 수 있었다. 보통 7시에 나가서 새벽 1시 넘어 들어왔기 때문이다. 아기가 있는 사람들은 어쩌다 날 밝을 때 집에 가면, 아기가 자기 얼굴이 낯설어 울어버린다고 했다. 연애 중인 사람들은 상대방이 자기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했다. 왜 화장실에서조차 자기에게 카톡 할 시간이 없냐고 불만을 쏟아냈다고 들었다. 시즌에는 항상 처리하지 못한 일들로 짓눌려서 다른 생각 할 여유가 한순간도 없을 뿐이었다.


주말, 설 명절도 없이 매일 사무실을 찾다가 엑셀과도 친해졌다. 단축키를 모르면 검토 파일을 빠르게 만들 수가 없고, 그러면 일이 더 쌓이고, 새벽에 더 늦게 집에 갈 수밖에 없었다. 틈날 때마다 사람들에게 단축키를 물어보고 메모해두었다. 하도 많이 쓰다 보니 메모는 곧 필요 없어졌다. 회계법인을 그만 둔지 10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도 내 손가락은 엑셀 단축키를 기억한다.



© Thought Catalog, 출처 Unsplash



비(非)시즌의 달콤함에도 기침은 계속 나고


신입 때부터 3월 말 결산 법인도 맡았던 나는, 시즌이 5월 초에 끝났다. 연초부터 4월 말까지는 서너 시간 눈을 붙이며 살았고, 여름에 두 달, 가을에 한 달 가량 또 바빴다. 시즌 동안 식비와 교통비 중 대부분은 감사 보수로 청구할 수 있어, 월 생활비가 20만 원도 안 드는 때도 있었다. 시즌의 매운맛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은 비(非)시즌에 있었다. 비시즌에는 하루에 한 시간 정도 자리를 비워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사람들은 시즌 때 쓰지 못한 월급과 시즌 끝나고 받은 성과급을 모아 열흘 씩 해외로 여름휴가를 떠났다.


불타오르던 열정은 시즌을 한 번 겪고 눈 녹듯 사라졌다. 얼마나 술을 마셔야 하는지 알게 된 다음부터, 파트너가 되겠다는 포부도 곱게 접어 쓰레기통에 버렸다. 비시즌의 달콤함에 중독되지 않았다면, 회계 법인에서 3년 반을 버티지 못했을 거다. 머리카락이 계속 빠졌고, 이마 앞쪽이 띵하게 늘 아팠고, 다리가 잘 부었고, 배에 가스가 수시로 찼지만 그래도 이직하겠다고 결심하지는 못했다. 다들 직업병처럼 달고 사는 종류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다 입사 4년 차 여름, 기침이 나기 시작했다. 몇 주간 콜록거리다 병가를 냈다. 회계법인 입사 전까지는 감기약을 거의 먹어본 적이 없었다. 비타민C와 식염수 가글 만으로도 사나흘이면 금방 상태가 좋아졌다. 조금 더 심한 감기는 도라지청과 레몬즙을 마셔 치료하며 잘 막아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동네 병원 약으로는 전혀 차도가 없었다. 대학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다. 기관지염이었다. 봉지 가득 들어있는 약 뭉치를 삼키고, 틈날 때마다 눈을 붙였다. 한 달 내내 쉬고 나서야 서서히 기침이 잦아들었다. 병가를 내지 않았다면 멈추지 않았을 기침이었다.


병가를 내보지 않았다면, 내 몸이 얼마나 망가진 상태였는지 깨닫지 못했을 거다. 한 달 동안 마음 놓고 잠을 자고 나니, 머리 통증도 사라지고 붓기도 많이 좋아졌다. 몇 년 동안 피곤에 찌들어 있었는데, 덜 피곤해진 상태는 심지어 어색했다. 이렇게 계속 과로에 무감각해지면 제 명에 죽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언젠가 결혼도 하고 싶었는데, 회계법인을 계속 다니면 만나던 애인도 헤어질 판이었다. 언젠가 아이도 낳고 싶었는데, 시즌 때 과로하면 아이를 안전하게 낳을 수 없을 것 같았다.




하나의 부품은 다른 부품으로 교체된다


마침 우연히 이직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회사 입사 면접은 1월 중순이었다. 이직이 확정되기 전에는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을 명분이 없었다. 면접을 보러 가던 날도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 어찌어찌 핑계를 대어 잠시 짬을 냈다. 신입 때 몇 달 입고 한 번도 꺼내지 않았던 투피스 정장을 꺼냈다. 스웨터 안에 블라우스를 받쳐 입었고, 가방에 재킷을 넣었다. 면접 장소로 이동하던 택시 안에서 스웨터를 벗고 재킷을 걸쳤다.


다행히 면접 운이 좋았다. 새로운 회사 입사일은 시즌의 중간, 2월 28일이었다. 최대한 내가 맡은 일을 책임지겠다는 마음으로 퇴사일을 2월 27일로 정했다. 마지막 날 새벽 1시까지 야근하고, 이직을 하고도 일주일 동안 퇴근 후에 회계 법인으로 가서 일을 도왔다.


그날은 퇴사하고 일주일째 되는 날이었다. 나는 세콤에 갖다 댈 출입증이 없으니 유리문 앞에서 누군가 지나가길 기다리고 있었다. 문득 피곤이 확 몰려와서 자리에 주저앉았다. 엘리베이터가 띵, 울리고 예전에 프로젝트를 같이 했던 사람이 내렸다. 그는 의아한 듯이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쌤, 왜 문 앞에 앉아있어요?” 

”아니, 저 시즌 중간에 나오느라 일을 다 못한 게 있어서…” 


그는 피곤으로 범벅이 된 얼굴에 약간의 안타까움을 머금으며 나에게 말했다. 


”쌤, 언제 나가도 그날이 끝이야. 쌤 없어도 다 잘 굴러가는 거 알잖아. 이제 그만 와.”


나 하나 없어도 아무 문제 없이 굴러간다는 걸 알고 있었다. 프로젝트 팀원들은 퇴사 이후에도 같이 일하겠다고 찾아오는 나를 그다지 기꺼워하지 않았다. 사내 메일로 파일을 주고받을 수도 없고, 올 때마다 문을 열어줘야 한다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눈치였다. 돌이켜보면 내가 근무했던 3년 반 동안 다섯 명 넘게 부서를 떠났다. 해당 팀원들이 야근을 두세 시간 정도 더 하긴 했지만, 그 사람들 없이도 감사보고서는 제때 잘 발행되었다.


과연 내가 바랐던 건 프로젝트의 성공이었을까. 잠시나마 몸담았던 회계 법인에서 내가 중요한 사람이라는 걸 확인받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지만 나에게 남은 건, 내가 그저 쉴 틈 없이 굴러가는 기계의 일부였다는 씁쓸하고도 지독한 진실뿐이었다. 하나 빠져도 언제든 다른 걸로 교체할 수 있는 부품. 입가에 자조 섞인 미소가 돌았다. 나는 이미 닫혀버린 유리문 앞에 앉아 프로젝트 팀장에게 카톡을 보냈다. 오늘부터 가지 못하게 되었다고. 그동안 감사했다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