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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디리 Oct 23. 2024

유리멘탈의 개복치 탈출기 1-1

발생 시점

나는 1989년생, 이 글을 쓰는 지금 만 35세이다. 2019년 1월에 첫 심리상담을 받았고 2022년 2월까지 3년간 3명의 상담선생님께 도움을 받았다. 2021년 1월에는 첫 정신과 진료 후 우울증, 불안증 진단을 받았다. 정신과 진료는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다. 뭐 대단히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냥 약간은 심약한 마음을 갖고 태어난 것 같다 (겉과는 정반대로).


시리즈 제목을 “유리멘탈의 개복치 탈출기”라 지었는데, 미리 말하자면 지금도 슈퍼개복치 상태이다. 심리상담도 받을 만큼 받아봤고, 약도 먹을 만큼 먹어봤는데 이 개복치빌리티가 좀처럼 나아지지 않길래 새로운 접근을 해보기로 했다. 외부의 도움이 아닌 내부에서 답을 찾는 방식으로. 그래서 내가 내 인생을 돌아보고, 문제의 근원을 스스로 파악해 보고, 여러 서적에서 제시하는 해결 방법들을 직접 테스트해 보는 과정을 기록하고자 한다. 그럼 시작해 보겠다.


2019년에 나는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교사에 대한 원대한 꿈도 없었고 고시 공부도 체질에 맞지 않았는데, 두 번째 시험을 100일 앞두고 엄마가 갑자기 뇌종양이라는 게 아닌가? 다행히 물혹과 같은 양성 종양이었지만, 방울토마토만 한 크기의 혹이 엄마 머리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망치로 뒤통수를 가격 당한 느낌이었다. 당시엔 악성, 양성에 대한 지식도 없었어서 그냥 큰일이 난 줄 알았다. 그때부터 안 그래도 안되던 공부가 더 안 됐다. 공부해야 하는데, 임용고시 합격해서 엄마 덜 고생하게 해줘야 하는데,라는 강박에 사로잡혀 병적으로 집중이 되지 않았다. 엄마는 멀쩡한데 어이없게도 내가 아프기 시작했다. 머리에 열이 차서 빠지질 않았다. 한의원에서 체열 사진을 찍어보니 머리통이 새빨간 풍선처럼 찍혔다. 정체 모를 신경통에도 시달렸다. 불에 달군 거대한 침으로 심장과 흉통을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꼈는데, 처음엔 대상포진인 줄 알았더랬다. 여러분, 수포가 올라오지 않으면 대상포진이 아닙니다. 신경통이에요. 비슷한 증상을 겪고 계신데 좋은 병원을 찾지 못하고 계신다면 제게 연락 주시라. 그나마 살아갈 수 있게 도와주신 의사선생님들을 소개해 드리리.


시험은 대차게 말아먹었다. 놀라운 것은, 임용고시를 완전히 포기하고 마음을 접었더니 위의 모든 증상들이 한순간에 사라졌다는 것이다. 스트레스의 위력이란… 그런데 내 시험 합격만 바라보던 엄마가 갑자기 하시던 일을 그만두고 떡볶이 장사를 하겠다고 했다. 마침 아무것도 할 게 없어진 나는 얼떨결에 엄마를 돕기 시작했다. 인터넷 쇼핑을 할 줄 몰라 자꾸 어디서 뭘 비싸게 사오는 엄마를 보고 차마 돕지 않을 수 없었다. 엄마는 요리를 기가 막히게 할 줄 알지만, 그 외의 것들엔 서툰 사람이었다. 원가 계산도 하지 않길래 기가 막혀서 내가 엑셀로 정리를 하고, 입에 짝 달라붙는 소스를 만들었을 때 이건 좀 되겠다 싶어서 인스타 계정을 만들어 모든 과정을 기록하고 홍보했다. 엄마 친구분의 도움으로 시장 한가운데에서 가판대를 차려 장사했다. 성악을 전공한 엄마가 아주 곱상한 목소리로 들리지도 않게 “시식하고 가세요”라고 모객 하는 걸 보고 어이가 없어진 나는 지나가는 학생들을 붙잡아 게임을 시키고 시식을 나눠줬다. 앞치마를 둘러매고 주변 모든 상가 가게에 방문하며 시식을 돌렸다. 나는 마치 시장에서 태어난 사람 같았다. 오픈 2주 만에 지역 맘카페에 소문이 나서 꽤나 장사가 잘됐는데, 쌀떡을 만들어주시던 방앗간 사장님이 느닷없이 여름휴가를 한 달간 가게 됐다는 것이 아닌가? 비슷한 퀄리티의 쌀떡을 찾기 위해 그 지역 방앗간 스무 곳을 돌았다. 포기해야 하나 싶을 즈음 기가 막힌 가래떡을 만드는 방앗간을 찾았다. 사장님과 딜을 하려고 하는데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곧 그만둘 것 같으니 그냥 오라는 것이다. 너무 황당했다. 한창 먹방이 유행하던 시기라 영상 찍어줄 유튜버도 수소문해서 찾아둔 터였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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