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생 시점
서둘러 집에 가서 엄마에게 물었다. 아니, 그만 둘 생각을 하고 있었으면 나한테 말을 했어야지. 내가 그렇게 새 거래처 찾느라 돌아다니고 있는데, 기껏 찾았더니 그제서야 그만두겠다고 말을 하는 게 무슨 경우냐고. 이유를 물었더니 이제 곧 여름이라 시장이 완전히 죽는다, 그런데 지금도 생각보다 매출이 안 나온다 (매출 나쁘지 않았다), 이대로 버티기는 힘들 것 같다 등… 종합해 보니 엄마는 오픈과 동시에 대박이 날 줄 알았던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장사가 잘 되지 않은 날은 나보다 훨씬 더 불안해하던 엄마였다. 나는 엄마가 그 정도는 내다보고 시작한 줄 알았다. 나보다 살아온 날들이 훨씬 많고, 내가 어릴 때 꽤 괜찮은 식당을 운영한 경험도 있으니 적어도 반년 정도는 버틸 생각을 하고 시작했을 거라 짐작했었다. 그런데 웬걸, 내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갔고 그 순간 나는 엄마에 대한 모든 신뢰를 잃었다. 이렇게 근시안적인 사람에게 내 20대를 송두리째 휘둘렸다는 사실에 몸이 떨리도록 분노했다.
이 떡볶이 사건을 이렇게 길게 풀어놓는 이유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심리상담을 받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처음 상담센터를 찾게 된 계기는 분명 공부에 집중이 되지 않아서였다. 그런데 어느새 내 상담 주제는 ‘엄마’가 되어있었다. 나는 내 20대 전체를 엄마에게 휘둘리며 보냈다. 내가 가장 빛나고 에너지가 넘치던 그 시기를 엄마에게 “거봐, 나 이거 못해, 못한다고”라고 입증하며 흘려보냈다. 엄마는 내가 자신처럼 힘들게 살지 않길 원하는 마음에 안정적인 직장을 가져야 한다며 끊임없이 나를 다그쳤다. 20년 넘게 키워도 제 자식은 잘 모르는 건지, 어쩜 하나같이 내가 못하는 것들만 찾아와서 억지로 해보라고 들이미는지 원. 있는 힘껏 저항하고 버텨봐도 항상 나보다 한 끗 더 끈질겼던 불굴의 엄마에게 두 손 두 발 다 들며 패배하곤 했다. 그 결과는 원하지도 않던 공기업 준비, 임용고시 준비, 살 빼야 취직하니까 개인 PT (무릎 연골 수술로 이어졌다), 한 달간 알약과 프로틴 쉐이크만 먹는 다이어트 (체력 반토막과 엄청난 요요로 이어졌다) etc… 뭐 나도 대학 졸업 후 몇 년간 “재밌어 보이는데 돈은 안 되는” 일들만 골라서 실험해 봤기에 엄마의 조바심도 이해는 갔고, 나보다 인생 경험이 많은 사람이니 그녀의 판단에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 싶어서 결국 항상 손을 들어줬었다. 그런데 엄마의 판단은 그냥 “남들 다 좋다고 하는 거 한 번 해보고, 아니면 말고”였다. 그녀의 그런 태도와 가치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요즘은 내게 일론 머스크가 맞고 살 뺐다는 위고비 주사를 맞으라고 난리다 (이제는 그녀에게 휘둘리지 않는다. 이렇게 되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내 외모에 그럭저럭 만족하고 있다).
엄마는 떡볶이 매대 정리를 나에게 일임하고 원래 하던 일을 하러 홀연히 사라졌다. 나는 2-3주간 분노에 떨며 당근마켓에 부자재를 팔았다 (엄마는 그런 걸 할 줄 모르니까). 장사를 하겠다고 시장 근처로 이사까지 간 터였다. 엄마의 “나 그만둘래” 선언 후 나도 내 살 길을 찾아야겠다 싶어서 외국계 회사 산휴대체 계약직을 얻어둔 상태였다. 출퇴근하기에 너무 먼 거리였어서 집주인분께 사정을 말씀드리고 입주한 지 6개월 만에 이사를 나왔다. 엄마와 같이 살려고 쓰리룸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원룸으로 이사했다. 문제는 엄마의 직업이었다. 그녀가 원치 않을 것 같아서 밝힐 수는 없지만, 엄마는 불규칙적으로 주에 이틀 정도는 내 방에 와서 머물러야 했다. 미칠 것 같았다. 쉬러 온다는 카톡을 받으면 그 즉시 심박수가 60 bpm에서 170 bpm으로 뛰었고, 심할 경우 팔 안쪽과 같은 얇은 피부의 실핏줄이 다 터져 시뻘겋게 부어올랐다. 내가 생각해도 신기할 정도의 신체 반응이었다. 당시 심리상담을 해주시던 교수님께서도 이렇게 바로바로 신체적 반응이 나타나는 건 처음 본다며 신기해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