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의 하늘은 까만 밤이 와도 숨어있는 별을 찾기 힘들다. 수년 전, 아니 수십 년 전에는 고개를 쳐들지 않아도 응당 그곳을 비추었기에,작은 우주 속 진주를 갈망하지 않았다.다른 이유라면 하늘의 낮과 밤이 본연의 색을 띠고 있을 때, 나는 천진난만한 꼬마애였다.꼬마는 자연이 주는 울림을 감각하기엔무지했고, 깜깜했고, 풍족했다.
풍족에서 오는 만족감은 숱한 슬픔을 누릴 새도 없었다. 그것은 기댈 수 있는 부모로부터, 어울리고 부딪혀쌓아 온 우정으로부터, 시간 맞춰 차려지는 밥상으로부터, 새벽에 들려오는 자장가로부터,아침이 새면시작되는 매미소리로부터불어왔다.
열아홉, 10과는 멀고 20과는 가까운 불완전한 경계에서꼬마는 세상이 주는 외로움, 혹은 고단함을 풍족과 치환했다. 어떤 시간은 마음에 가난이라는 시련을 두고 가는데,'집'과 '학교'라는 안전한 울타리에서 벗어나 세상 밖으로 던져졌을 때, 비로소 감춰졌던 가난 속 두려움을 마주했다.
성인이 채 되지 않은 나이에 사회의 일원이 되었다.더는 친구들과 떠들 수 없고, 선생님 몰래졸 수도 없었다. 회사라는 조직 내 규율을 따르는 사내 풍경은 생경했다.물론 그런 것쯤이야 얼마든지적응할 수 있었다. 다만 어른은 응당 어질고, 덕이 높고, 지혜로울 것이라는 세뇌된 기억이 편견이 되어버린 순간은크게 절망해야 했다. 사회에서 만난 어른은 깨진 거울의 부서진 유리조각처럼 파란 심장을 갈기갈기 찢기고 조각냈다. 마음의 가난은 내밀한 웃음이 가식으로 기울었을 때 드러났다. 하나,그들의 이면은 나를 더 살게 했다.그럴수록 '버텨야 한다.''살아남아야 한다.'를 가슴 한구석에 꾹꾹 눌러 새겼다.마치 마지막 전투를 준비하는 장군의 마음처럼.
선선한 저녁작게 들려오던 풀벌레 소리를기억한다. 마치 서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터트려버린울음처럼. 왜 그리도 슬피 우는가.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곤충을 위로하는 공상에 빠졌었다. 마치 사회부적응자(=나)가 살기 위해 울부짖는 목소리 같아서 홀로 울고 있는 풀벌레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나와 풀벌레는 다르지 않다. 어딘가 모르게 쓸쓸한 모양새가 닮아있다. 실제로 쓸쓸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그렇게 믿기로 한다. 아 어쩌면 풀벌레도 사회생활이 뭣 같아서 이슬 한잔 걸치고 울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면 내 현실도 그저 작은 이벤트 같다. 누구에게나 직장은 생경한 타국의어느 마을 같을 테니까. 그 마을에는 온통 외국인들이 살고 있고, 그래서 우리는 통하지 않고, 그들이 보는 나는한낱 타국에서 온 소녀일 뿐, 우리는 지금 소통이 불가능한 파티를 하는 중인 거다! 때로는 현실을 공상으로 채워야만 견딜 수 있는 날이 있다. 즐거운 공상은 나와 당신을 웃게 해주는 드라마가 될지도 모르니, 우리는 흘러가는 시간에 맞춰 부지런히 삭막한 현실과 맞서 싸워나가면 된다.
지겹게 반복되는 일상 속 일 년에 한 번 사막의 오아시스를 찾는다. 휴가를 떠나기 한 달 전부터 준비한 플랜을 기록하고, 짐을 싸고, 새벽같이 시끄러운 도시를 떠난다. 여행은 별이 잘 보이는 충북에 어느 마을로 정한다. 지저귀는 새소리와, 출렁이는 물소리, 숲과 가까운 자연에는 별이 가득하다. 대자연은 언제나 나를 설레게 한다. 발이 닿는 곳에 빛과, 푸르름과, 무성한 잎이 있다면 그것이 나의 행복이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연이 주는 자유로움에 있다. 나무는 나를꾸짖지 않는다. 실수로 넘어져도 너그럽게 안아준다. 바람은 있는 그대로를 바라봐 준다. 나이가 어리다고, 세상 물정을 모른다고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하늘은 말이 없다. 함부로 평가하고, 누군가를 험담하지 않는다. 그저 가만히 들어주고 위로해줄 뿐.
아름다움은 존재 자체만으로 쓰린 곳을 보듬어준다. 온통 잿빛이던 마음이 무수히 떠있는 별을 보고 눈물을 흘리니 말이다. 다 큰 꼬마는 찢기고난도질된 심장이 쑤실 때마다 짙은 밤하늘을 들여다본다.까만어둠 사이로유약한 작은 별 하나가 빛나고 있을 테니.'나는 여기에 잘 있어요.'라고 속삭이듯없는 힘을 쥐어짜 내며 온 몸으로 자신을 태우고 있을 테니.
'항상 이곳에서 당신을 응원할게요. 부디 가진 빛을 잃지 말아요.'
나와 당신이 즐거운 공상을 하며 함께 밤하늘을 올려다볼 날을 기대한다. 그날은 우리가 슬프고 아픈 날을 견디는 것이 아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아름다운 날을 함께 누릴 것이라고 믿는다. 가장 가까운 어둠이 소우주를 잠식하는 순간에도 별은 늘 그곳에 있었다. 까만 밤 가장 밝은 별을 만난다면 그제야 나는 덕분에 자유로워졌다고 말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