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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사리 Jul 06. 2022

깊은 밤을 날아서

 유독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 있다. 창 밖에는 달빛이 쏟아지고, 손 아래 닿는 이불의 감촉은 부드러운데, 홀로 견디는 깊은 밤은 하루 중 가장 긴 시간이 되어버린 날. 오늘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충분히 만족스러운 루를 보냈. 철없을 적 다투고 절연한 친구는 잘 지내고 있을까. 아까 말실수한 거 같은데. 왜 더 나아지지 못하는 걸까. 스스로를 점검하 시간에 쌓인 빨래 더미처럼 자책을 쌓아두다가 감고 있던 두 눈에서 눈물이 다.


 힘들다. 힘들 수도 있지. 그런 날도 있는 거. 혼잣말을 곱씹다가 알게 된 건, 지금 내 마음은 어떤 위로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무사히 하루를 보내는 일도, 어울리던 사람들과 관계를 이어가는 일도, 아무렇지 않게 웃음을 내보이는 일 버거웠다. 감정에도 과부하가 올 수 있다는 사실을 그렇게 깨달았다.


 잠에 들기 전 문득 이런 생각을 한다. 이렇게 혼자 도망치다가 외톨이가 되어버리면 어떡하지. 스스로를 창 없는 방안에 가둬버리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떠나버리면 어떡하지. 나는 언제나 도망자였다. 슬픈 마음이 들기 전에 웃어 보이고, 아픈 마음은 구태여 외면해버리는 도망자. 누군가 '잡히면 죽는다.'라고 외치면서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몇 번이고 같은 선택을 하고 마는 도망자.


 우울을 삭제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울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라는데, 정작 우울에서 멀어지는 방법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가장 허름한 곳에 감정을 쌓아두고 제일 빠른 속도로 달아나야 하나. 모래가 잔뜩 쌓인 놀이터에 깊은 구덩이를 파서 메마른 감정만 묻어놔야 하나. 등가교환을 하기에도 우울의 값은 너무나 커서 비슷한 값의 쾌락을 필요로 했다.


'나만 불행한 것 같아요.', '나약한 나 자신이 싫습니다.', '삶을 포기하고 싶어요.' 다니던 정신과 선생님과 나눴던 이야기다. '뭐가 가장 힘들어요?' 무엇이 자신을 이토록 괴롭게 만드는 것인지, 스트레스가 폭발하기 직전에 선생님은 심리상담을 권유했다.


 "무엇보다 끊어낼 수 있는 의지가 중요합니다. 잘못 묶인 매듭이 풀리지 않으면 자를 줄도 알아야죠."


 문제가 생기면 답을 구하느라 다른 일은 손에 잡히지 않았다. 꼭 풀어야 하는 문제가 아닌대도 말이다. 정작 자신을 돌봐야 하는 시간임에도 얽히고설킨 내면을 자책하기에 바빴다. 땅 꺼미가 지면 더욱 선명하게 떠올랐고, 엉켜버린 문제에 갇히기를 반복했다.


 불면이 깊어지는 밤, 무거워진 눈을 감고 숲을 떠올렸다. 광활하고 드넓은 푸른 숲을.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파란색으로 채웠다가, 따사로운 오후의 빛을 지나 보랏빛이 가득한 어두운 색으로 칠한다. 타닥. 타닥. 타오르는 장작불 위로는 아픈 마음을 내려놓는다. 모든 슬픔이 재가 되어 사라지기를 바라며. 그리고 숲 한가운데에서 나는 엉켜있는 밧줄을 잘랐다. 날이 없는 무딘 가위로 천천히.


 아픔이 휘몰아치는 밤, 당신과 함께 광활한 숲을 거닐고 싶다. 차가운 두 손을 맞잡고, 비슷한 미소를 지으, 가장 씩씩한 발걸음으로. 무딘 가위로 잘라낸 밧줄이 어색할지라도 서로를 칭찬하고 안아주면서. 슬픔을 전부 태워낼 수는 없지만, 있는 힘껏 떨쳐내고 아픔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길 바란다. 이곳에 있는 우리는 모두 소중하기에, 나의 작은 위로가 깊은 밤을 날아서 당신에게 닿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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