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적 조회수 6천★ 그러니까 그 문을 열지 마시오
나는 직장생활 4년 차인데 아직 명품이 없다. 마음먹으면 플렉스도 할 수 있었지만 안 했다. 오늘은 그 이유에 대해 써보려 한다. 이 글을 빌미로 명품 소비를 최대한 미룰 수 있겠지? 어쨌든.
'돈이 없어서'라고 하면 너무 원초적인 답이고. 플렉스조차 안 하는 이유라고 하면 부연설명이 될까. 어쨌든 정답은 '한 번 눈이 높아지면 낮추기가 어려워서'이다. 좋은 걸 한 번 경험하고 나면, 나도 모르게 거기에 기준이 맞춰진다. 이러려고 돈 버는 거지 하면서 플렉스가 한 때 유행하기도 했지만, 플렉스로 잠깐 느낀 쾌감 뒤에 따라오는 자괴감은 아무도 경고하지 않는다.
이제 눈에 안 들어온다. 명품백을 사지 않기로 한 이유는 사실 이런 경험에서 비롯된 깨달음이기도 하다. 내가 숙소에 대한 기준을 이미 높게 잡아버려서, 이제는 40만 원 넘는 숙소만 가려고 한다. 최근에 다녀온 일본여행에서도 1박에 70만 원짜리 숙소를 흔쾌히 결제할 수 있었던 이유다. 이렇게 좋은 숙소의 맛을 알아버렸으니, 이제는 저렴한 숙소는 더 안 가려고 하겠지.
한 번 눈이 높아지면 낮추기가 너..무 어려워
그래도 다행이다. 최근에 내가 얻은 이 깨달음 덕분에, 숙소 플렉스에도 제동이 걸린 것이다. 아무리 기분을 내겠다더라도 함부로 너무 좋은 숙소에 가지는 않기로 했다. 100만 원짜리 숙소가 있다는 걸 알지만, 거기 가보고 싶단 호기심을 이제 최대한 미루는 거다. 인생은 너무 긴데.. 너무 빨리 좋은 걸 느껴버리면 안 된다. 이제부터라도 숙소에 쓰는 돈을 천천히 늘려가야지.
그래서 옷을 살 때도, 이사를 할 때도 이런 기준을 안고 간다면 불행하지 않게 오래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예전엔 지그재그에서 옷을 많이 샀는데, 소득 수준이 올라가면서 COS 옷을 좋아하게 됐지만 여기서 더 비싼 걸 사고 싶을 때는 조심해야겠다. 예전엔 6평짜리 집에서 자취했지만, 지금은 18평 집에서 자취하고 있고 다음 집은 이거보다 넓어야겠지만 너무 욕심부리지 말자.
얼마 전 유튜브를 보다가 이진우 기자가 한 말이 인상 깊었다. '필요한 돈은 벌고 나면 그때그때 행복하지만, 나의 만족도의 수준을 소박하게 트레이닝하는 게 재테크의 엔진을 돌리는 것만큼 매우 중요하다' 욕구의 조절을 통해서 작은 돈으로도 행복의 효율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좋은 걸 천천히 경험해야 하는 이유와도 같다. 앞으로 살 날이 너무 많은데, 너무 빨리 좋은 걸 경험해 버리면 허무함이 더 일찍 찾아올 것이다. 특이한 케이스를 제외하면, 보통의 사람들의 일생에서는 소득 수준이 천천히 상승하는 것처럼 소비 수준도 천천히 상승시키는 게 여러모로 이득일 것 같다. 그러니까 내 욕구를 꾸준히 조절하고, 천천히 상승시키자.
웬만하면.. 안 살 거면 구경도 안 한다. 보면 사고 싶어질 수밖에 없다. 자꾸 그 예쁜 물건이 잔상에 남을 수밖에 없다. 인간은 자기가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의 지배를 받으니까. 좋은 걸 봐봤자 그걸 살 수 없는 나의 현실에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굳이 그런 박탈감을 사서 고생하느니 안 보는 게 낫지.
그리고 아직 40만 원짜리 숙소에 가본 적이 없다면, 어쩌면 행운이다. '안 본 눈 삽니다'를 여기서도 외치게 될 줄 몰랐다. 나의 소득 수준에 맞게 천천히 늘려가자. 그렇게 해서 행복은 오래 하고, 불행은 하지 말자. 가격표 안 보고 뭐든 다 살 수 있는 재산 수준이 아니라면, 오래 지속적으로 행복하기 위해서 이건 일찍 깨달을수록 유리한 깨달음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