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저는 아무 것도 안 하면 불안하거든요. 현대사회 질병 증상 중 하나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아무 것도 안 하면 뒤처지는 것 같고 시간이 너무 아깝습니다. 안 그래도 평일에는 직장생활 하느라 시간과 에너지 다 써야 해서 억울해 죽겠는데, 시간이 생기면 뭐라도 해야죠. 그런 마음으로 살기 때문에 '아무 것도 안 하는 것'은 제게 누워서 떡먹기가 아닙니다. (사실 누워서 떡 먹는 것도 어렵다죠. 이만큼이나 세상에 쉬운 게 없습니다.) 아무튼 제게는 아무 것도 안 하는 것 마저 어려운 세상입니다. 아무 것도 안 할 용기, 그러니까 기꺼이 불안할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러니 이번 연휴 때 제가 아무 것도 안 한 것은, 게을렀다기보다 용기를 낸 것으로 정리하겠습니다. 연휴가 굉장히 길었고 (2주 간격으로 6일씩 쉼), 이때다 싶어 해야 할 것들이 많았었는데 아무 것도 안 했습니다. 먹고 자고 넷플릭스랑 유튜브만 주구장창 보면서 쉬기만 했습니다. 머릿 속으로는 "아 그래도 이거는 해야 하는데..." 라는 불안의 생각이 빼꼼 빼꼼 거렸지만, 무사히(?) 잠재워버렸습니다. 미뤄뒀던 걸 연휴 때 모두 처리하겠다는 마음으로 연휴를 간절히 기다렸던 마음은 온데간데 없고, 어쩌자고 이렇게 게을렀던 건지 이런 용기를 낸 건지.
지겹도록 쉬고 나니까 다시 무언가를 하고 싶어졌어요. 결국 내가 노렸던 건 이 마음이었습니다. 잠시 느슨해진 마음에 불을 지피려고, 완전히 느슨해져버리는 방법을 썼어요. 그렇게 컨디션을 다시 완전히 회복하는 것.
저는 때때로 이 방법이 효과가 있음을 경험했습니다. 어정쩡한 마음으로 하는 모든 것들은 해봤자 결과도 어정쩡 했던 적이 많았고, 차라리 재충전 시간을 제대로 가진 다음 완전한 컨디션으로 집중하는 것이 훨씬 좋은 결과물을 가져다 주는 경험들을요.
예를 들어, 브런치에 올리는 글들도 무작정 양으로 승부하기 보다, 컨디션이 좋을 때만 가끔 쓰고 있는데 그러다보니 타율이 좋은 편인 것 같습니다. 올리는 글 대부분이 브런치 메인이나 다음(Daum)에 노출되거나, 최소한 조회수가 1천이 넘는 아웃풋을 내고 있습니다.
또는, 출근길에 10 페이지라도 읽자는 마음으로 억지로 책을 읽느니, 그런 날들에는 그냥 눈을 감고 아무 것도 하지 않습니다. 그럼 오히려 출근해서 일을 시작할 때 집중력이 좋습니다. 다시 컨디션이 회복되는 날엔, 그간 책을 읽지 않은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을 만큼 훨씬 더 좋은 몰입감과 흡수력으로 책을 읽어냅니다.
물론 완전한 컨디션도 별 수 없는 아웃풋을 낼 때도 있지만, 그래도 좋은 컨디션으로 하는 모든 것들은 아웃풋과 별개로 제 만족감은 매우 높습니다. 스스로 뿌듯하고, 추후 지속적으로 행복감을 얻을 원천이 되고, 다음에는 또 어떻게 해봐야 하나 기분 좋은 고민도 하게 됩니다.
결국 저에게 오늘 무언가를 열심히 하게 하는 힘은,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시간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저는 불안을 같이 안고 가야 하더라도,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꾸준히 갖습니다.
쉬어야 하는 주기와 기간은 개인마다 다를 수 있겠으나, 저같은 경우 2~3개월마다 쉼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는 편입니다. 한 번 쉴 때마다 최소 1주에서 1개월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흘러가는대로 쉽니다. 이 주기로, 이 기간 동안 충분히 쉬어주면 다시 에너지를 얻어 무언가를 열심히 다시 하더라고요. 제 기준으로는 남들보다 조금 자주 지치는 편인 것 같은데, 그래서 조금은 느리지만. 그래도 본인만의 템포를 지켜가며 꾸준히 무언가를 지속할 수 있어서 저는 만족합니다.
그래서 누군가 "아무 것도 하기 싫다"는 마음으로 이 글을 읽으셨다면, 아무 것도 안 하기를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