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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이 Feb 24. 2022

면책결정 후 다시 변호사를 찾아오는 채무자분들께

개인회생, 개인파산 후 재신청

1. 사무실 벽면을 채우고 있는 기록들


  아침에 출근해서 고요한 사무실에서 신문을 읽거나 일을 합니다. 그 시간대에는 사람이 없어서 제 사무실 문을 열어두고 있는데 가끔 전자기기의 삐삐 하는 소리나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오고는 합니다. 신문을 읽다가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 금리가 올라간다는 기사를 읽고 그 분들의 마음상태를 가늠해보려 의자에 기대고 천장을 올려다 보았습니다. 


  천장을 보던 눈을 조금 내리면 저희 법무법인에 들어오는 사건의 파일들이 있는 책장이 있습니다. 서류봉투 한개한개에 의뢰인 이름과 접수된 순서에 따라 빼곡하게 가득 메운 기록들입니다. 한 칸이 높이 33센티미터, 가로 80센티미터가 될까한 여러 같의 책장에는 그 서류 봉투들이 출퇴근 만원 지하철에 끼여 서있는 것처럼 차렷하고 서 있습니다. 그중에 한 기록을 꺼내서 서류를 넘겨보면 손으로 정성을 들여 쓴 진술서를 볼 수 있습니다. 


요즘같은 시대에 자필로 기재한 서면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신기한 사실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법원에서는 자필로 기재한 서면을 볼 때 정성이 더욱 들어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사실이기도 합니다. 어떻든 그렇게 손수 기재한 서면에는 그분의 인생사가 고스란이 담겨 있습니다.  채무독촉을 피해 숨었던 기억들,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부채가 발생하게 된 기억들을 더듬어 올라간 사연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내용중에 처음 개인회생, 개인파산을 신청했을때 너무 쉽게 생각하였거나 준비없이 신청을 하고 개인회생에서 개시신청기각결정, 개인파산에서 면책불허가 결정을 받고 그 이후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손수 써내려가는 진술서를 읽을때는 가슴 저 밑이 저려오기도 합니다. 

  

그 분이 다시 개인회생, 개인파산을 신청한 상태이라면 그 절절함은 배가 됩니다. 



2. 눈 앞의 희망


한가지. 요즘 상담을 하면서 느끼는 점입니다. 개인회생 또는 개인파산을 신청하시는 채무자 분들의 경우 면책을 받으면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을 하시는 경우를 종종 만나게 됩니다. 채무자 분이 세상에 짊어지고 있는 모든 짐을 벗어던지는 일종의 천상으로 가는 문처럼 설명을 하시기도 합니다. 


그런데 생각을 하셔야 할게 면책결정이란 채무자의 재무상태표상 자산과 부채를 "0"원으로 만드는 작업이라는 점입니다. 개인회생과 개인파산을 신청할때는 부채가 커다란 상태였다면 그 부채를 "0"원으로 만들었기에 전체적으로 "0"원인 상태가 된다는 것입니다. 


조금 바꿔서 표현하면 고등학생일 때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모든게 행복할 거라는 생각을 하잖아요. 또는 군대를 제대하면 세상 모든것을 다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편의점 알바를 하면서 매일 먹는 라면에 지긋지긋하다는 경험을 하게 되잖아요. 그런 현실을 마주하게 될 수 있습니다. 


저의 고등학교를 졸업한 경험을 말씀드려볼까 합니다. 요즘 친구들은 다른 노래를 부르겠지만,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카니발의 '그땐 그랬지.'라는 노래를 열심히, 열과 성을 다해서 부르고는 했습니다. 가사를 조금 옮겨보겠습니다. 


'시린 겨울 맘 졸이던 

합격자 발표날에 부둥켜 안고서

이제는 고생 끝. 행복이다.

내 세상이 왔다.


그땐 그랬지.


참 세상이란

만만치 않더군.

사는 건 하루하루가 전쟁이더군.'



3. 빈 '그릇'의 용도


채무자분들은 개인회생, 개인파산을 신청하기 전까지 몇 년 또는 십여년간 부채로 인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개인회생 등을 통해 3년 동안 강제적인 청빈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리고 면책결정이 되었을 때 마음속에 홀가분함과 별개로 경제적인 삶, 가족들의 삶은 혼란 그 자체일 수 있습니다. 어쩌면 떠나간 가족들에게 다시 연락을 하여 안부를 물어야 하는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 궁금해질겁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 건데? 너는 내가 무엇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을하는건데?'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아는것도 별로 없습니다. 다만 한가지 '그릇'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식당에 가서 순대국을 시키면 펄펄 끓는 그릇에 순대국을 채워서 가져다 줍니다. '사장님 물 한잔 주세요.'라고 하면 사장님은 물 컵(그릇)에 물을 담아서 내옵니다. 순대국을 앞에 두고 저는 숟가락의 오목한 빈 공간에 순대국을 담아 입으로 가져갑니다. 그리고 따뜻한 그릇의 빈공간에 채워진 순대국물을, 숟가락의 빈 공간으로 옮겨와서 그 온기를 제 몸에 전달합니다. 그러면서 제 몸에 하루를 살아가는 에너지를 채워 넣습니다. 


개인회생과 개인파산을 통해 면책결정을 받으신 분들은 이제 오롯이 어떤걸 가득 채울수 있는 빈 그릇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빈 그릇에 무엇을 채울지는 당신의 결정입니다. 그 안에 행복을 담아 푸석푸석한 하루를 햇볕이 조금씩 스며드는 하루로 바꾸어 나가는 것도 당신의 결정입니다. 다만, 이제 당신에게는 빈 공간을 활용할 수있는 '그릇'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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