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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이 Dec 14. 2021

희나리와 채무자

1. 채무자와 만남      

 개인회생의 채무자

   들뜬 마음으로 ‘개인파산·회생실무’ 책을 읽고 개인회생 기록을 꼼꼼히 살피고서 채무자에게 보정권고를 보냈습니다. 

  「면담기일 : 2018. 2. 00. 14:00

    면담장소 : 000법원 면담실

    제000단독 회생위원 000」     

   채무자는 67세이고 40대 중반까지 정규직으로 근무하다가 퇴직을 한 다음 비징규직을 전전하다가 지금은 택시 일을 한다고 했습니다. 자녀는 둘인데 성년이고 미혼이었습니다. 배우자는 가사 일을 전담하다가 채무자가 정규직을 퇴직하고 얼마 후 일자리를 구하였으나 변변치 않다는 서류를 확인했습니다.      

   부채가 5,000만 원이었습니다. 청산가치 파악을 하려 보니 재산이라고는 보증금 3,000만 원 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진술서에는 아프다고만 기재되어있었습니다. 궁금했습니다. 채무자에게 부채라는 짐의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     

   면담을 시작하고 어색한 조우가 이어졌습니다. 채무자는 얼굴에 종기가 있는 것처럼 두어 곳이 불룩 나와 있었고, 책상 위에 올려 놓은 왼쪽 손의 검지와 중지에 불룩, 불룩하고 물방울처럼 튀어나온 곳이 있었습니다. 제가 손을 응시하자 채무자는 책상 밑으로 손을 내리면서 눈을 감았습니다.      

   긴 침묵이 흐르고 채무자가 한 말은 ‘죄송합니다.’였습니다. 긴 침묵이 흐르고 회생위원이 한 말은 ‘선생님, 제가 선생님께 사과받으려고 오시라고 한게 아니잖아요. 설명이 되지 않는 부분을 설명해 달라는 거에요.’였습니다.      

   앳된 얼굴의 회생위원이 세상의 풍파를 모두 헤치고 이제 좀 쉬고 싶다는 지친 얼굴을 한 노장인 채무자에게 한 말이었습니다.      

   잠시의 침묵이 흐른 후 채무자의 얼굴에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우는 소리도 없이. 채무자와 회생위원은 침묵 속에서 두 평 남짓되는 면담실에 그렇게 조용히 앉아있었습니다.      

 

일반회생의 채무자

   개인회생에 비해 부채금액이 큰 편이었습니다. 몇 개의 사건을 처리해보니 채무자에 대한 느낌이 있었습니다. ‘채무자는 조사위원이 하는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일반회생 사건 중 내부조사위원에게 배당되는 사건은 채무자의 자력이 없어 조사위원 선임비용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다보니 신청대리인도 해당사건에 공을 들이지 않았고 채무자도 작성된 서류의 내용을 몰랐습니다.      

   이번에도 조사위원은 채무자에게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음, 채무자의 입장에서 보면 출석을 요구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할 거 같습니다.      

    「면담기일 : 2020. 2. 00. 14:00

      면담장소 : 000법원 조사위원실

      000법원 조사위원 000」     

   조사위원의 자료요청서는 8페이지 분량이었습니다. 거기에는 채무자, 회사, 배우자, 자녀 등에 관한 자료가 있었고, 자료요구를 하고 있는 저 자신도 과연 채무자가 이 자료를 제출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일어날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역시 30% 정도의 자료만 제출되었습니다. 조사위원은 그저 면담기일에 출석만 해달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채무자가 오면 사무실 옆자리에 앉으시라고 하고 조사보고서 엑셀 파일을 열어 두고 월별 수입과 지출, 추정자금 수지 산정을 위한 생계비 등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시트가 10개가 넘는 엑셀을 보면서 얘기하는 동안 채무자의 온몸에서 담배냄새가 풍겨나왔습니다. 조사위원이 엑셀의 칸을 가리키면서 ‘선생님! 이게 설명이 되지 않아요. 선생님이 제출한 자료와 주장하는 자료가 맞지를 않아요.’라고 말을 합니다. 채무자는 말없이 조사위원을 보면서 그저 눈만 꿈벅꿈벅 하고 있었더랬습니다.      

   주말에 엑셀을 정리하다가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채무자는 자신의 방식으로 관리를 하고 있는데 조사위원이 그 쪽 실무를 모르기 때문에 채무자가 최선을 다해서 하는 설명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월요일에 채무자에게 전화를 하여 이번주에 공장을 방문한다고 하고 경기도 어느메 쯤에 있는 철골제작 공장에 방문했습니다. 공장 마당에는 철제 빔이 여기저기 쌓여 있었고, 저쪽에 사무실이 있었는데 인도인, 베트남인, 카자흐스탄인처럼 보이는 분들이 인사를 하면서 작업화를 구겨 신고 어슬렁거리면서 걸어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사무실로 들어서니 네 분이 앉아있었는데 붕어빵처럼 얼굴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마도 신규채용이 힘들어서 가족일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조사위원은 짐짓 엄한 표정을 지으면서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를 건넸습니다.      

   ‘누구세요?’ 돌아온 대답이었습니다. 일단 짜증이 나기는 했는데 한편으로는 이게 현실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개인파산의 채무자

   농촌에 가면 밭에 일하러 나갈 때 쓰는 플라스틱에 앞 창이 둥근 모자가 있습니다. 햇빛을 가려주고 사용하기가 편리해서 어머니께서도 자주 사용을 하셨고 저도 집에 가서 일할 때는 자주 쓰고는 했었습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썬캡 챙모자’라고 합니다.      

   그 모자를 쓰고 채무자가 회의실에 앉아있었습니다. 반백의 얼굴에 자글자글한 주름이 가득한 옆모습이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파산관재인입니다.’

   ‘아. 네.’     

   앞에서 본 채무자의 눈은 움푹 들어가 있었고, 3분 정도의 대화가 흐른 후에 신세한탄이 시작되었습니다. 채무자가 주로 한말은 ‘그 징헌 놈들이 아니었으면 나도 파산신청 안했어!’였습니다.      

   ‘선생님, 그러니까 파산신청 하셨고 파산선고가 되어서 여기에 앉아계신거잖아요. 제출한 자료상 현재도 사업을 계속하고 있어요. 정기적인 수입이 있는걸로 보여요.’

   ‘나도 먹고 살아야할 거 아녀. 그 징헌놈들한테 한 푼도 못줘.’

   ‘이미 여러 푼 주셨어요. 특히나 이 채권자에게는 몰빵으로 주셨어요.’

   ‘그 놈은 괜찮어. 딴놈들은 징헌 놈들이여.’     


2. 관재인의 현장 방문

 자신감을 얻은 다음 날 보조인 분과 함께 청량리 경동시장에서 아침 8시에 만났습니다. 건어물 취급을 해서 새벽 장사를 한다고 하기에 영업을 그 시간쯤이면 마치겠다는 생각에 기습 방문을 하기로 했습니다. 영화처럼 비도 오고 바람도 불었는데 ‘그냥 춥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구불구불 시장 안쪽으로 안쪽으로 고추밭의 이랑을 헤메고 들어가듯 경동시장 저 안쪽으로 찾아서 들어갔습니다. 네이버 지도검색으로 찾아서 가는데도 잘 찾지를 못했는데 저만치에 ‘000상회’가 보였습니다.      

 그 플라스틱 모자를 쓴 채무자는 보이지 않고 허름하고 농촌에서나 쓸법한 모자를 쓰신 할아버지가 ‘000상회’에 앉아있었습니다. 전날 법인 사람들하고 얘기하면서 건어물 상회 현장방문을 간다고 하니 오징어가 먹고 싶다고 난리법석이었습니다. 법무법인 사람들이 현장방문이 중요한게 아니고 오징어를 조달해 오는게 중요하다는 유언의 압박이 생각이 났고 사업주를 확인할 생각으로 오징어 한 꾸러미를 달라고 했습니다.      

 ‘이거 물건이 아주 좋아. 요즘 물건값이 올라가고 있는데 오늘은 자네가 운이 좋구만. 10만원이여’

 ‘저 현금이 없어서요. 카드로 될까요?’

 ‘뭔소리여. 이런데서 카드는 안받아.’

 ‘그래요. 그럼 다른데로 가야하나.’

 ‘기다려봐’

 하더니 책상 저 밑에서 꾸물꾸물 카드리더기를 꺼내서 전원을 연결한 다음 한마디 합니다.

 ‘부가세는 별도여.’

 개업하고 가장 민감한 부분, 부가세는 별도인지 포함인지라는 걸 여기서도 듣게 됩니다. 


 확인한 영수증에는 채무자의 배우자가 사업주로 나타나 있었습니다.      


3. 미야자키 하야오

 만화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미야자키 하야오는 거대한 산맥입니다. 이분이 만든 영화중에 저는 ‘천공의 섬 라퓨타’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요즘은 자녀들과 함께 봐야 하기에 ‘이웃집 토토로’와 다른 감독이 만든 ‘겨울왕국’을 보는데 즐기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신문을 읽다가 미야자키 하야오에 관한 기사가 있었는데 거기에 이런 대화가 나옵니다.      

 ‘만화영화를 계속해서 만드는 이유가 있을까요?’

 ‘어린이들에게 「세상은 살만한 것이다」라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이 기사를 읽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만나는 채무자의 80%는 일부라도 거짓을 말하거나 사실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대부분은 자본주의 사회라는 거대한 순환에서 튕겨져 나왔습니다. 회생, 파산이라는 제도가 이 사람들과 조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관재인 앞에서 재산을 어떻게든 숨겨서 청산가치를 낮추려고 노력하는 채무자의 모습은 자본주의 시스템의 어린아이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채무자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당신은 아직 하지 않은 이야기의 일부입니다. 그리고 좋은 소식은 그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 여기 관재인과 면담을 하고 있는 채무자 당신이라는 것입니다.’      


4. 고민

 그 사람만의 잘못일까?      

 앞서 잘은 모르지만 자본주의 얘기를 했습니다. 개업을 하면서 돈에 대해서 약간은 민감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짐 로저스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은행이 터무니없이 높은 예금이자를 지급하는 경우는 예금부족에 시달릴 때 뿐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개인의 기본적인 필요를 해결하는 것, 즉 먹는 것, 자는 것 그리고 입는 것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신용을 과잉공급을 했던 것은 아닐까라는 ‘화차’와 ‘청춘파산’의 문제제기가 적절한 것은 아닐까?     

 더구나 그렇다면 복지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신용으로 해결되는 측면이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파산’의 저자, 전 아리수미디어 대표 이건범의 지적이 적절했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5. 희나리

 농촌에서 가을이 끝나갈 즈음이면 고추밭에 심어져 있는 고춧대를 뽑아서 밭 한구석에 모아둡니다. 그대로 불사르거나 하지 않고 뽑아진 고춧대를 쌓아 고추와 함께 말립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면 붉은색과 흰색이 섞여 있는 고추를 따는데 이걸 ‘희나리’라고 합니다. 희나리의 흰색은 가위로 잘라내고 붉은색 부분만 식용으로 사용합니다. 그러니까 희나리는 온전하지 않은 모습, 채무자의 모습 그리고 어쩌면 나 자신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제가 사법시험 준비를 늦게 시작하기도 했지만 수험기간이 긴 편이었습니다. 2차시험 합격자발표에 이름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앞으로 어찌할지 얘기를 나누기 위해 고향으로 갔습니다.      

 오후에 도착해서 어머니를 찾았는데 집에 안 계셔서 밭에 나가 보았습니다. 고추밭의 한 구석에 쌓아놓은 고춧대 옆에서 희나리를 따고 있었습니다. 희나리는 상품성이 없어서 장에 내다가 팔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그걸 그대로 태워버리기는 아까워서 모아두었다가 빻아서 김장할 때 쓰고는 했습니다.      

 엄마 옆에 앉아서 같이 희나리를 따다가 제가 한참 말이 없자 어머니가 저에게 한마디 건네셨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할거냐?’

 ‘한번 더 해보려구요.’     

 자글자글한 주름에 반백의 머리에 썬캡을 쓴 어머니의 눈이 저를 보더니 눈에 가득 눈물이 고여 있다는 게 보였습니다. 어머니는 특유의 거친 성격이 있으셨고 전라도 특유의 말도 자유자재로 하실 줄 알았습니다.      

 ‘이 염병할 놈아. 에미 잡아묵을라 그러냐.’     

 분에 못 이겨 고추밭을 데굴데굴 구르시는 어머니의 옆에서 흰색과 붉은색이 섞여 상품성이 없는 희나리가 거친 모자간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희나리는 우리 가족이 1년 동안 먹을 맛있는 김치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6. 채무자의 탄원서 

 채무자가 파산을 신청한 현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탈락된 또는 탈락될 예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분들도 김치가 주 식재료인 한국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희나리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썬캡을 쓰신 반백의 채무자와 다시 면담을 했습니다. 일부 환가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집에 가신 채무자가 탄원서를 냈습니다.      

‘모든 것이 파산상태인 채무자를 달달 털어서 완전히 거지로 만들겠다는 파산관재인 사무실의 의도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여기서 ‘달달’은 오타가 아니므로 그대로 적었습니다.)     

 실체관계는 별론으로 하고 채무자에게 재기의 기회를 제공하려던 관재인은 ‘이건 뭘까?’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어린이집에서 자녀들을 하원시키면서 첫째에게 저녁에 뭘 하고 싶은지 물어보았습니다. 팔짝팔짝 뛰면서 티비를 보고싶다고 하였습니다.      

 저녁을 먹고 보았던 영화가 '에반 올마이티'입니다. 뉴욕판 노아의 방주 얘기인데 정치인인 남편이 갑자가 홍수를 대비하기 위해 배를 만들어야 한다고 하던 일을 다 접고 배를 만들었습니다. 설득에 지친 배우자가 남편과 결별을 선언하고 자녀들을 데리고 떠나다가 한 식당에 들렀을 때 신의 역할을 했던 모건 프리먼이 배우자에게 했던 대사가 그 밤을 가득 채웠습니다.      

‘신에게 용기를 달라고 기도하면 용기를 줄까요? 용기를 낼 수 있는 기회를 줄까요? 신에게 사랑을 달라고 기도하면 사랑을 줄까요? 사랑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줄까요? 신에게 신뢰를 달라고 기도하면 신뢰를 줄까요? 신뢰할 수 있는 기회를 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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