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창창 Jan 26. 2022

오른쪽 음식


지인들과 매운 음식을 먹을 때 간혹 오른쪽 음식/ 왼쪽 음식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지인들은 오른쪽 음식이 무엇인지 안 말해도 알지만.... 다른 분들은 오른쪽 음식이 어떤 뜻인지 모르실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이번 기회에 정리를 해두려고 한다.



1. 본과 2학년일 때, 서울에 있는 의과대학이 모여서 하는 행사의 장을 맡은 적이 있다. 내가 잘나서 그 모임의 장이 된 것이 아니고, 학교별로 돌아가면서 주최를 하는데 마침 내가 그 학번이었다. 카톡방을 파고 각 학교의 중간지점인 이태원에서 만나기로 했다.


2. 처음 보는 애들이랑 이태원에서 만나니까 너무 어색해서 술을 좀 과하게 마셨다. 한 명이 만취가 되어서 집에 넣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택시를 잡았다. 나도 많이 취했으니까, 그 친구를 집에 넣어주고 나도 그 택시 타고 돌아가겠다고 했는데.... 안 된다고 안 된다고.... 회장이 1차만 하고 빠지는 게 어딨냐고 택시에서 끌어내려졌다.


3. 그래 놓고는, 끌어내린 친구들도 갑자기 힘들다며 그냥 다음 차 가지 말고 여기서 끝내자고 하는 것이 아닌가. 진짜 오늘 초면이었지만 정신 나간 놈들이구나 싶었다. 그래서 시간을 보니까 막차를 탈 수는 있는 시간이었다. 아직 학생이라서 택시를 타고 먼 거리를 이동하긴 부담스러운 시기였다. 그래서 4명이 택시 타고 이동하려고 한 건데... 혼자서 택시 타고 이동하기엔 부담스러워서 이태원 역까지 막차 타기 위해 뛰어가기로 했다.


4. 여기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5. 눈을 떠보니까 119 구급대원 아저씨께서 날 흔들어 깨우고 계셨다. 아무래도 막 뛰어가다가 넘어진 것 같았다.... 얼굴 쪽을 다쳐서 병원에 가야 하는데 어느 병원에 갈지를 물어보고 계셨다. 너무너무 부끄럽고 창피해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내가 그렇게 극혐하는 술 마시고 다친 사람이 내가 되어버렸구나.......

동시에 입안에서 찌릿하는 통증이 느껴졌다. 그리고 공기가 숭숭 시원하게 잘 통하는 것이 기분이 좋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자세히 보니 넘어지면서 앞니가 빠져버린 것.... 진짜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 학생! 학생! 내 말 들려? 앞니가 빠졌어 앞니가! 여기서 가장 가까운 대학병원 응급실로 가면 치과 응급이 없어서 치료를 못 받아! 알겠어? 그래서 치과 응급이 있는 곳으로 가려면 00대 병원으로 가야 돼. 거기로 가도 돼? 거기로 갈게!

-... 네?? 00대요?? 저 거긴 안 되는데요. (거긴... 제 모교인데요.... 응급실에... 제가 아는 분들 많은데요...)

- 아니 그런데 치과 응급치료받으려면 거기 가야 된다니까!

- 치료요? 저 원래 앞니가 없는 사람인데요?

- 아 그래? 학생 앞니는 원래 없는 거야? 이번에 빠진 게 아니야?

- 네, 저 앞니 원래 없어요. 그 00대 병원 말고 다른 곳으로...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나는 치료시기를 놓치고 앞니에 임플란트를 박게 되었지만 후회는 없다. 앞니에서 피가 철철 나는데 원래 없었다는 말을 믿어주신 119 아저씨께 감사의 인사를 남기고자 한다....


5-1. 병원 응급실에 누워서, 이걸 어쩐다... 앞으로 내 인생 어쩌지... 이걸 어떻게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하다가


와 영구 없다를 김 없이도 할 수 있다니! 띠리리딧띠디 영구읎~다! 하는 사진을 찍었다. 걱정하시는 부모님께 안심하라는 의미로 그 사진을 보내드렸고 이 사진 때문에 진짜 호적에서 파일 뻔했다. 이 사진은 아직도 내 핸드폰에 고이 저장되어있고, 힘들 때마다 한 번씩 보게 되는 소중한 사진이다.



5-2. 여담이지만 다음 날에 일행 중 한 명이 카톡방에 , 자기 가방이 없어졌다고 같이 찾아줄 수 있냐고 물어보는 카톡을 올렸다. 나는 앞니를 찾으러 갈 건데 같이 가자고 했다가 장난치지 말라고 빠꾸 먹었다. 진짠데.




6. 그래서 오른쪽 음식은 뭐냐.


넘어지면서 오른쪽 혓바닥 일부가 찢어졌다. 그걸 꿰맨 다음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이 일상생활에 잘 적응을 해나갔는데..... 신당역에 있는 매운 등갈비찜을 먹다가 이상함을 느꼈다.


"나... 오른쪽 얼굴에서 땀이 안 나는 것 같은데...?? 이상하다??"


어? 운동할 때는 이런 차이를 못 느꼈는데 왜 매운 음식을 먹을 때는 오른쪽 음식에서만 땀이 안 나지???


7. 그래서 여러 가지 책을 읽어봤는데, 확실하진 않지만 매운 음식을 먹을 때 얼굴에서 땀이 나는 기전은 조금 다르다고 한다. 매운 음식을 먹으면 침샘의 분비가 되고, 침샘이 얼굴의 땀샘을 자극한다나 뭐라나? 그다음에 얼굴에서 땀이 나온다고 하는데 이런 신경은 나의 전문분야가 아니라서 나도 잘은 모르겠다. 아무튼 오른쪽 혀가 찢어지면서 매운 음식을 먹었을 때, 오른쪽으로 침샘을 분비시키는 신경다발의 일부가 끊어졌고 그것이 약해져서 침이 덜 나오고 (침은 왼쪽에서 충분히 나오니까 적게 나오는 건 못 느낌), 침이 얼굴의 땀샘을 덜 자극해서 매운 음식을 먹을 때에는 오른쪽 얼굴에서 땀이 안 나오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8. 그런데 웃긴 건 진짜 더럽게 매운 음식을 먹으면 오른쪽 얼굴에서도 땀이 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매운 음식 표현의 정의는 왼쪽 음식 : 얼굴에 땀이 맺힐 정도로 매운 음식 / 오른쪽 음식 : 진짜 오지게 매워서 오른쪽 얼굴에서도 땀이 날 정도의 음식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10. 너무너무 신기한 발견에 박수를 치면서 까르르르 까르르르 웃으며, 같이 밥 먹던 여자 친구에게 이 신기한 상황을 말해줬다.

넌 이게 재밌니? 에휴... 술 마시고 몸에 문제 생긴 게 자랑이라고....


11. 알아봤는데 이걸로 군 면제는 안 되더라고요.







작가의 이전글 웃음의 역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