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창창 Jan 30. 2022

쌍노XX끼

당직동안 전화가 많이 온다. 환자상태의 변화에 대해서 전화를 받는데, 그 중에는 유선상으로 해결해도 되는 전화도 있고, 직접 가서 환자 상태를 파악해야하는 전화도 있다. 직접 가서 파악해야하는 것 중에 하나는, 환자의 의식수준에 변화가 있을 때다. 정말 문제가 생겼다면 초 응급상황이기도 하고, 어떻게 변화하는 지도 파악해야하기 때문에 이상한 낌새가 있으면 미리 가서 확인해보는 것이 좋다.




응급실에서 협진의뢰된 환자 면담을 하고 있을 때였다. 이 정도로 수술하기는 조금 아깝고, 일단 약물치료로 버텨보자는 말을 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 선생님, 여기 00인데요. 저 환자 한 분만 와서 봐주세요. 좀 이상해요. " 보통 간호사 선생님들도 우리가 당직동안 얼마나 바쁜지를 알기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직접 와달라는 말을 하진 않는다. 평소랑은 다른 전화가 와서 나도 모르게 목소리에 날이 섰다. " 어, 저 지금 바로는 못 갈 것 같은데, 누구요? ", " 00 할머니인데...... 아 뭔가 이상해서요... " , " 00할머니요? 완전 꼬장꼬장한 분 아니에요?"


다행히 내가 그 분의 주치의였기 때문에 환자를 파악하고 있었다. 간호사선생님은 내가 환자를 잘 알고 있단 것을 깨닫고, 자신이 느꼈던 위화감에 공감해줄 것이라고 기대를 했는지 목소리가 커졌다. " 엇, 쌤 00 할머니 아시는구나, 진짜 괄괄하시잖아요. 근데 할머니 나이트 출근해서 라운딩할 때 부터... 멘탈 좀 쳐지는 것 같아요... " "엥? 그 분이요?" "네, 불러도 대답도 안하고, pain에도 반응 좀 떨어지고... 아 뭔가 좀 이상한데... 봐줄 수 있어요? 걱정되는데..."  




할머니에 관련된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누고, 면담이 끝나자 병동으로 올라갔다. 사람은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 질문을 받으면 당황하고, 심하면 화까지 낸다. 나도 신경과 의사는 아니기 때문에,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가면서 걱정이 많아질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올라가다가 핫바먹던 신경과 동기를 마주쳐서 언질을 남겨뒀다. 어, 야 니 당직? 다행이다 ㅋㅋ 나 지금 한 분 멘탈이상하다 그래서 보러가는데, 정말 이상하면 연락할게. 도와주라 ㅠㅠ


 병동 쪽으로 들어가면서, 우선 할머니 팔뚝을 꼬집어보고 반응이 없다면 복장뼈를 세게 긁어보겠다고 다짐했다. 환자의 의식수준을 평가할 때, 고통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확인하고자 자주 사용하는 방법들이다. 일부 의학 서적에서는 유두를 세게 잡아 비트는 것을 권고하는데, 나는 그렇게까지 하진 않는다. 환자분께서 받아들이기에 거부감이 들 것이고, 친구들이랑 서로 복장뼈 긁어보기 해보니 이미 충분히 죽을만큼 아팠기 때문이다.


"할머니, 눈 좀 떠보세요, 할머니?" 역시나 할머니는 반응이 없었고 손톱을 세워서 팔뚝을 꼬집어봤다. "할머니 제 말 들리세요?" 온 힘을 다해 꼬집었는데도 할머니는 반응이 없었다. 나도 모르게 -어?- 소리를 냈는데 어느샌가 전화했던 간호사 선생님이 옆에 서 계시더니 - 이것 봐요, 제 말 맞죠? - 라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계셨다. 초조함을 느끼면서 계획했던 다음 단계인 복장뼈 긁기를 했다. 그래, 나도 당황해서 힘조절 못 한 건 인정한다.





아!!!!!!!! 야 이 쌍노XX끼야, 아까는 어떤 년이 와가지고는 이름이 뭐냐고, 뭐냐고 쳐 물어싸제끼고, 또 여기가 어디냐고 쳐 물어보고 염병을 떨더니 자는 사람 꼬집고있고, 화딱지가 나가지고 대답도 안했더니 이 년놈들이 어? 이제 좀 잠들라고 했더니 이 쌍노XX끼가 사람을 죽일라고 하네, 뭐 이딴 병원이 다  


아, 어. 할머니 아. 어. 죄송해요. 주무세요. 죄송해요.


주무세요? 멀쩡히 자던 사람을 아까부터 계속 깨우길래 겨우 잠들었더니 이젠 자던 사람 깨워가지고는 주무세요. 지금 뭐하자는 거요 이 쌍노XX끼야.




의사가 되서 환자분한테서 먹은 욕 중에, 반 이상을 그 날 먹었다. 논리적으로 너무나 완벽한 할머니의 말씀에 나랑 간호사선생님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귀에서 피가나는 줄 알았다. 그 날 이후로 멘탈에 관한 노티를 받으면 "더 센 pain에도 반응 없는지 봐주세요." 라고 되묻게 되었다. 간호사 선생님의 말을 안 믿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된 데에는 나름 이런 뒷 사정이 있는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직장을 옮기려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