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탈과 (생명과 직결된 분야에서 일하는 분과)를 선택하는 의사가 많아졌으면 하는 마음에 시작하는 시리즈
인턴대상 과 홍보맡았을 때 PPT, 컨펌안받고 그대로 발표해서 조금 혼 남
- 와 넌 진짜 인생 망한거야.
- 아니, 교수님. 1년차 환영하는 자리에서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덕담 좀 해주세요.
인턴 끝나고 레지던트 올라가기 전에 1박 2일로 외과 레지던트 연수를 들었다. 꽤 엄숙한 분위기로 진행되었지만 우리의 뒷풀이 욕심까지 막을 순 없었다. 첫 째 날 수업끝나고 형 누나들이랑 술 엄청 마셨고, 둘 째 날에는 교수님까지 초대해서 같이 마셨다. 그 자리에서 교수님께서 해주신 말씀. 거의 신생아를 안아주면서 "니 인생은 망했어"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다.
아니, 이제와서 말하는 거지만 너는 과를 잘 못 선택했다니깐... 우리 과는 진짜 망했어. 여러모로 망해야하는 과야.
아, 그런 얘기는 진짜 엄청 많이 들었어요. 그러면 교수님, 이런 얘기해주세요. "내가 외과의사를 하길 잘했다고 생각한 순간 TOP 10!" 얘기해주세요.
...... 10개 너무 많다.
그럼 TOP 5!
5개도 너무 많다. 후회한 거는 100개도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언제 후회하셨는데요?
난 딱 지금 너 처럼 입국식 때부터 교수님이랑 술마시는 순간 과를 잘못 골랐구나 생각했는데
장난치지 마시고요 , 그럼 TOP 3!
음... 3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아니, 몇 년전에 유럽 **에서 세계 간이식 학회가 열렸었거든. 너도 알지? 그 학회에서 엄청나게 많은 간이식 최신 지견들이 쏟아져나왔어. 정말 중요한 학회인데, 모른다고? 괜찮아. 이제 알아가면 돼. 내가 그 학회를 가려고 엄청 준비를 많이 했거든... 근데 결국 못 갔어... 당직을 서게 됐어. 이유? 이유도 할 말은 많지만 그건 중요한게 아니야.
아무튼 침대 눕기전에 우리 병원 이식 대기자명단을 훑었거든. 우리 병원에는 전국에서 우선순위 20등이 한 명이 있더라고. 20등이면 거의 이식을 못 한다고 보면 돼. 상태가 좋으면 위에서 다 채가고, 20등까지 내려오는 장기는 못 쓰는 장기거든. 보통 10순위 안에 2,3명은 있는데 20등 한 명이라니 ! 이게 무슨 꿀당직이냐 싶어서 두 발 뻗고 잠들었어. 새벽에 전화가 왔는데, 간이 하나 생겼는데 받을 의사가 있냐는거야. 당연히 20등까지 내려온 간이면 상태가 안 좋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끊으려다가 들어나 보려고 했는데. 엥?? 간 상태가 너무 좋은 거야. 왜냐. 전세계에 간이식하는 모든 의사들은 지금 유럽 **에 가있으니깐 이식 수술을 대한민국에서 하려고 해도 할 사람이 없었던거야.
헐 미친 대박
너무 고민이 되더라고 "지금 나밖에 없는데 이거 내가 할 수 있을까? 수술 한다고 치고, 내가 간이 들어갈 공간을 만들고 있다고 하면, 간을 절제하려고 누구를 보내고, 벤치는 누구랑하지?" 이런 고민
벤치가 뭐에요?
... 그래 모를 수 있어. 이제 알아가면 돼. 아무튼 이건 나 혼자 결정할 문제가 아닌 것 같아서 보호자분들이랑 면담을 했어. 그냥 다 오픈하고 솔직히 말했어. "나는 간이식을 내 손으로 집도해본 적은 없고, 지금 상황에서 수술을 한다면, 수술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들과 팀을 꾸려서 꾸역꾸역 수술을 하게 될 것이다."라는 내용.
사실 이런 말 듣고 수술해달라고 할 사람이 누가 있겠냐? 내가 그런 면담을 했던 이유는 ...... 사실 우선순위 20번째면 다음 기회는 없다고 보면 돼... 간 기다리시다가 돌아가실거야, 근데 내가 이런 기회가 있었다는 것을 내 선에서 거절해버리고 그 분을 돌아가시게 만들면 너무 찝찝할 것 같았거든. 그래서 그냥 "나는 말 했다~ 보호자 분들이 수술 안 하시겠다고 한 거에요~" - 라는 면피를 얻으려는 이기적인 행동이었어.
어, 교수님. 잠시만요. 우선순위 20번째인데도 그렇게 위독해요?
... 이식을 받는 우선순위를 정하는 기준도 천차만별이고 나라마다 달라. 상태가 위독하지 않더라도 기준이 충족되면 상위권인 경우가 있고, 상태가 정말 위독하지만 기준이 충족이 안 되서 하위권인 경우도 있어. 이건 니가 일하다가 진짜 억울하고 속터지는 일을 겪으면 알게 될 거다. (이거 레알임)
아무튼 그렇게 면담했더니, 가족회의를 여시겠다고 하시더라구. 그래서 알겠다고 하고 당직실에 올라와서 편하게 잠들려고 하는 찰나에 전화가 오는거야.
헐 대박, 수술받겠다고?
... 말은 놓지 말아다오...
죄송해요. 받겠다고요?
응, 수술해달라는거야. 아 그 때 진짜 가슴이 벌벌 떨리더라.
기뻐서요?
아니, 걍 보호자면담하지 말고 내 선에서 거절할 걸... 싶어서
아 뭐에욬ㅋㅋㅋㅋㅋ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수술했지. 진짜 내 인생에서 제일 지옥같은 36시간이었어. 아니지, 학회에서 돌아온 사람들한테 혼나고 눈치본 것 까지 합치면 지옥같은 한 달이 맞는 표현이겠다.
...
맞아, 지난 달에도 건강하게 외래 오셨어. 그 분을 볼 때마다 외과의사하길 잘한 것 같긴 해.
...
... 외과의사는 조금 다른게, 우리는 외래진료를 보면 힘이 나는 것 같아. 다른 과들은 외래진료올 때 아프기 시작하면서 오니까 다들 인생의 최악의 시기에 오시거든... 그런데 우리는 수술 잘해서 건강해진 모습을 외래에서 보면 그것 만큼 기쁜고 훈훈한 건 없거든. 뭐... 물론 재발하거나... 합병증이 생긴 경우도 종종 있지만...
...
아, 그래. 그리고 너도 외과의사로서 일을 하면서 분명히 매너리즘에 빠질거야. 반복적으로 일하고, 반복적으로 수술하고, 반복적으로 처방하고 그렇게 살게 될 거거든. 근데 인생에 몇 번은 "나 아니었으면 죽었다." 라는 말이 나올 만한 환자를 마주치게 될 거야. 우린 그런 분들을 마주했을 때, 제대로 해내려고 계속 공부하고 수술 연습하고 그러는 거라고 생각해. 사실 그런 경험을 한 번이라도 하는 건 외과의사한테는 축복이지. 그 한 두 번 경험가지고 평생을 살아가는거야.
교수님, 많이 취하셨는데요?
ㅎㅎ...
그럼 TOP 3 중에 나머지 2개도 비슷한 얘기에요 ? 대박, 저 이거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닐래요. 너무 멋져요. 연수강좌에서 들었던 내용보다 교수님 말씀이 훨씬 더 자극 되는 것 같아요. 다른 것도 얘기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