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 급식메뉴로바나나맛 우유가 나왔다. 졸지에 추억의 바나나맛 우유는수다의주인공이 되었다. 익숙한 모양, 익숙한 맛이지만 급식에 나오니 이럴게 반가울 수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같은 테이블에 앉은 선생님들은 저마다 바나나맛 우유에 얽힌 추억과 이야기를 하나씩 꺼낸다.
Episod 1. 목욕탕에서 마시는 그 치명적인맛
지금은 수도꼭지만 돌리면 뜨거운 물이 나오지만 90년대만 해도 가정집에 뜨신 물이 나오는 집은 드물었다. 일주일에 한 번 목욕탕에 가는 일이 중요한 일정 중 하나였다. 특히나 주말대중탕은 북새통. 남, 녀로 나뉘어 있긴 했지만 동네 친구들이며 아주머니들도 다 만날 수 있는 벌거벗은 만남의 장소. 혹시나 친한 친구라도 만날까 민망함에 숨고 싶었지만 엄마와 딸 넷은 우르르 다니는 통에 어디에도 숨을 수 있는 곳은 없었다. 주르륵 앉아서 순서대로 때를 밀고 탕을 들락거리면 동네 아줌마든 친구 언니든 누구든 한 명은 만나기 마련. 가릴 수도 없는 몸을 수그리고 엉거주춤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탕 속으로 줄행랑치곤 했다. 뜨거운 열기에 한, 두 시간 있다 나오면 단전으로부터 슬슬 갈증이 차오른다. 그때부터 동생들은 엄마한테 조르기시작한다. 큰딸이라 차마 바나나우유가 먹고 싶다는 말은 못 하고 동생의 조르기 작전이 성공하기만을 목 빼고 기다릴 뿐. 그러다가 한 번 얻어먹으면 그 맛이 아주 꿀맛. 시원하고 또 달달한 그 맛은 잊을 수가 없다. K교사는 목욕탕 가서도 절대 바나나우유를 사주지 않았던 매정한 엄마가 생각난다고 한다. 아마도 아이 넷을 다 사줄 수가 없어서 그러셨던 것 같다고 웃으며말한다. 어린 마음에 얼마나 마시고 싶었을까 공감하는 마음을 눈빛에 담아보낸다.
Episode 2. 퇴근길엔 위험해
K교사는바나나우유에 얽힌 흑역사가 떠오른다고 했다. 인심좋은 동료 하나 긴 퇴근길에 먹으라고 바나나 우유를 챙겨주었다고 한다. 고마운 마음에 우유를 받아들고 운전대를 잡았고 마침 출출한 터에 우유를 꿀꺽꿀꺽 맛있게 마셨다고. 그런데 마지막 한 입을 먹을 때쯤 배에서 이상신호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근데 8차선 도로,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꽉 막힌 고속도로에서 정말 어떡해야 할지 눈앞이 깜깜. 빛의 속도로 근처 대형마트를 기억해 내고는 패기 넘치게 손을 들어 양보신호를 보내며 2차선에서 8차선 끝까지 돌진. 전에 없던 공격적인 운전으로 기가 막히게 마트에 진입. 거의 차를 버리다시피 던져버리고 화장실로 줄행랑쳤던 기억이 떠오른다고. 그래서 그 이후론 절대 바나나 우유를 먹지 않는다는 웃픈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Episode 3. 바나나맛 우유가 문화유산이 된다고?!
사회가 전공인 j교사는 바나나맛 우유를 만든 회사 빙그레는 국가등록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한다고 말해주었다. 국가등록문화유산은 50년 이상된 근현대문화유산 중 보존, 활용 조치가 필요한 것을 국가유산청의 심의를 거쳐 등록이 가능하다고 하는데, 제품의 용기모양도 달항아리를 모티브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그 얘기를 듣고 보니 우리나라의 근현대를 같이 보낸 50년의 역사가 제법 길고 의미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문화를 만드는 것이 거창하고 큰 예술작품도 있지만 우리 가까이에서 친근하게 지냈던 과자, 우유도 문화유산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새롭다. 문득, 나와 동갑인 오징어 땅콩을 씹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70년대생이 주류인 급식실 테이블에 추억의 과자도 하나씩 소환된다. 과연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만한 문화유산이라 할 만하다.그날 바나나맛 우유는 추억의 맛이 되어 한 동안 수다삼매경에 빠져 급식실을 쉬이 떠나지 못했다는 후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