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랑 책, 놀자! (강화도 편)
안 되겠다.
우리 막내들을 너무 방치했어.
지금이라도 시작하자!
애셋을 키우는 동네 육아동지, 3명은 또다시 의기투합했다. 이들은 지금은 고1이 된 아들들이 초1 때부터 6년간 독서와 체험으로 마을공동체를 같이 했던 동네엄마들이다. 힘은 들지만 가족과 책을 읽고 친구들과 체험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다들 알고 있다. 하지만 큰 애들이 중고등학생이 되고 막내가 초등고학년이 되었지만 또다시 시작할 엄두를 못 냈다. 바쁘고 힘들다는 핑계로 미루고만 있었던 것. 혹시 언니 오빠가 읽는 걸 봤으니 아이 스스로 책을 읽지 않을까 하는 희미한 기대도 한몫... 하지만 절대 그런 일은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은 점점 더 휴대폰 속으로만 빠져들 뿐, 책은 보면 큰 일어나는 줄 알고 거들떠보지도 않게 되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지금이라도 해보자'하고 초5 막내들을 위한 독서품앗이를 다시 시작했다.
매일 조금씩
언니, 오빠가 읽었던 <한국사편지>를 다시 꺼내 들었다. 잠들기 전 15분씩 같이 읽고 인증샷도 찍었다. 책의 내용도 간단히 적어두기도 하면서. 구석기부터 신석기, 고조선 시대를 거쳐 삼국시대, 신라시대까지 천천히 읽다 보니 예전에 기억이 살아난다. 훨씬 더 재밌고 흥미롭다. 그런데 문제는 체력이다. 분명 잘 읽고 있었는데 어느새 잠들어 아침에 깬다. 그래도 매일 조금씩의 힘은 강했다. 엄마가 읽어주어야만 하고 게다가 진도가 아주 느리긴 하지만 아이는 다시 책과 친해지기 시작했으니
이번엔 강화도로
친구 셋이 돌아가며 매달 한 번씩 역사체험할 장소를 정한다. 이번엔 우리 차례, 막내는 고인돌이 있는 강화도를 픽했다. 큰 애들 때는 버스대절을 해서 친구, 가족 모두 약 40여 명이 같이 갔었다. 이번에는 막내 셋, 엄마 셋, 모두 6명, 단출하다. 코스는 예전 그대로, 제일 젊은 엄마가 운전마스터가 되어 자가용으로 편하게 머나먼 강화도에 도착했다.
강화역사박물관과 강화자연사박물관을 바로 옆에 붙어있어서 좋다. 역사박물관은 선사시대~삼국시대~고려~조선시대까지 강화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준다. 바로 옆의 자연사 박물관에서는 박제된 여러 곤충과 큰 고래의 뼈를 포함한 자연 속 생물들을 관찰할 수 있다.
고려의 기세는 고려 품새로
너른 들판에 박힌 커다란 고인들, 강화의 역사와 선사시대의 유적이 놓인 그곳에서 그녀들은 당당하게 태권도를 선보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발차기와 찌르기를 하며 씩씩하게 기합을 넣으며, 고인돌 안내판 글자는 한 자도 안 읽고 망아지들처럼 뛰어다니다 태권무로 강렬하게 마무리했다. 그래도 난 믿는다. 역사 지식은 잘 몰라도 외세와 맞서 싸운 고려인의 기세가 그녀들 몸 깊숙이 배어있다고
잘했어. 얘들아.
정말 멋있다~~
점심은 젓국갈비로
강화하면 젓국갈비, tv에 한번 소개되고 나서 한때는 유명했었다. 다시 방문하니 예전만큼의 인파는 없다. 대중의 열기는 식은 듯 하나, 맛은 여전하다. 담백하고 칼칼한 맛에 속이 뜨끈해진다. 소박한 반찬에 밥을 얹어먹으니 쏙쏙 잘도 들어간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동네를 어슬렁거린다. 마침 눈에 들어온 음식점 주변 명소를 둘러본다.
용흥궁~강화성공회성당
용흥궁은 1995년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고 조선시대 철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집이라고 한다.
성공회 강화성당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옥 성당으로, 동서양의 건축미가 어우러져 독특한 외관을 지닌 곳이다. 겉은 한옥인데 내부는 바실리카 양식을 따랐다고 한다. 돌계단을 올라 성당입구에 들어서면 용흥궁을 비롯한 동네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높은 건물이나 고층 아파트가 없는 야트막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에 마음도 편안해진다.
마니산도 한번 가볼까
'강화도 가볼 만 곳'을 검색하면 꼭 나오는 마니산은 여태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오늘 한번 가볼까'하고 김여사는 핸들을 꺾었다. 꼬불꼬불 아슬아슬 산길을 타고 산 중턱에 멈춰 선 순간,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했다. 장비를 갖춰 입은 등산인들이 숨을 헐떡이며 내려오고 있었다. 산입구에 조그마한 매표소가 보인다. 용기 내어 매표소 직원에게 물으니, 왕복 3시간은 족히 걸리는 코스라고, 게다가 산세가 험해서 슬리퍼나 고무신발 크*스로는 절대 못 올라간다며 해맑기만 한 엄마 셋에게 단호한 가르침을 주시듯 막아세웠다. 어쩔 수 없이 터벅터벅 산길을 내려온다.
태권소녀들에게 포획된 생물체 1호
산길옆에 자그마한 사찰엘 간다. 산도 산인데 이곳의 터죽대감은 따로 있었다. 듬직한 개 한 마리가 해맑은 소녀들을 맞이한다. 아니, 소녀들이 개를 따라다닌다. 처음에는 벤치옆에 조용히 누워 여유를 즐기던 개였는데 어디서 왔는지 모를 소녀들이 떼로 몰려와 그의 여유로움을 앗아가고 말았다. 개는 가만히 있다가 그녀들의 지나친 관심이 이내 귀찮아졌는지 급기야 여기저기 도망 다니기 시작한다. 몇 분이나 흘렀을까. 졸졸 따라붙는 아이들에 지쳤는지, 개는 그 자리에 다시 주저앉고 만다. 쓰다듬고 만지고 부르고 따라다니는 그녀들, 그런데 그녀들의 손엔 핸드폰이 없어졌다. 대신에 깔깔거리며 웃는 소리, 자박자박 자갈길을 걷는 소리만 소란스럽게 들릴 뿐.
태권소녀들에게 사로잡힌 생명체 2호
언니, 그 벤치옆 계단을 따라 내려와 봐. 여기 계곡이 있네.
애들이랑 같이 내려와요!
절주변을 산책하던 여인 2호가 호출한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곳을 찾았다고. 소녀들을 불러 절 아래 계곡을 찾아 내려간다. 드디어 자유를 찾은 생명체 1호는 이제야 살았다는 듯 줄행랑을 친다. 산길을 따라 내려가니 졸졸졸 물소리가 들린다. 돗자리를 펴고 열정적으로 뭔가를 잡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 옆에 선 여인 2호 이쪽으로 오라며 손을 흔든다. 엉거주춤 산길을 내려간다.
어느새 물속에 들어간 아이들, 양말을 벗고 바지를 걷어붙이고 물속에 발을 담그고 있다. 먼저 자리를 잡고 계신 분들께 여쭤보니 이 근처에선 가재가 많이 잡힌다고 그걸 잡고 계시는 거라고 친절하게 말씀해 주신다.
엄마, 나 잡았어요.
진짜예요!
연신 바위를 들춰보던 소녀 하나가 격양된 목소리로 엄마를 찾는다. 손에는 버둥거리는 생명체 하나를 들고서. 그것은 태권소녀들에게 포획된 비운의 주인공, 생명체 2호 가재다.
버리려던 플라스틱 물병에 물을 채워 잡은 가재를 모아 담는다. 소녀들은 이제 잡는 방법을 터득했는지 여기저기서 잡았다고 소리를 친다. 다 모으니 대략 5~6마리 정도. 아이들은 집에 데려가고 싶다고 애원의 눈빛을 보낸다. 엄마들은 슬픈 운명이 될 생명체 2호의 미래를 알기에 몇 번 안 된다고 타일러 보지만 결국 지고 만다. 집에 오는 길에 다*소에 들려 어항, 먹이, 자갈까지 야무지게 산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뚜껑을 여니 한 마리는 벌써 하늘나라행, 다음날 아침 남은 한 마리를 탈출해서 마룻바닥의 먼지를 다 뒤집어쓰고 다니다 큰딸의 비명소리에 놀라 다시 포획되었다. 결국 그날 저녁 다른 한 마리도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막내야. 이젠 바깥에서 잡은 것들은 가져오지 말자.
이 아이들도 사람처럼
살던 곳에 있어야 행복할 거야.
막내는 이제야 풀이 죽은 목소리로 "네~"라고 대답한다.
역사체험, 자연탐험 그 어딘가
아이들이 산과 들에서 역사를 핑계로 실컷 놀았다. 단군의 기운이 남아있는 마니산 참성단은 못 갔지만 단군의 정기가 어린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1 급수에만 산다는 가재도 살컸봤다. 아이들은 손바닥만 한 핸드폰의 네모 액정 화면에서 벗어나 하루 종일 자연에서 뛰어놀았으니 그게 어딘가. 아이들은 고인돌이 지배층의 위력과 힘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것이고 고인돌을 쌓고 올리는 과학적 원리를 기억하는 대신에 자연의 것은 자연에 두고 와야 한다는 큰 이치를 깨달았다. 바로 이런 것이 샛길독서의 가장 큰 매력이다. 책을 읽고 실제 장소를 탐험하고 몸을 체험하며 더 큰 것을 얻는다. 도전하고 탐험하면서 우연한 배움으로 연결되고야 마는 신비한 샛길독서의 마법 같은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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