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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셋+딸 하나, 부산 갈매기

by 화요일
엄마, 저 친구들이랑 부산 가고 싶은데
엄마가 같이 가주면 안 될까요?


이번엔 고1아들의 어명이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자신의 요구를 말할 때는 부모로서 거부하기 어렵다. 부산에서 하는 지스타에 가고 싶다는 명확한 요구였다. 그런데 친구 둘을 더 데려가고 싶다는 말에 살짝 주춤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지스타란 명칭은 Game Show & Trade, All-Round의 약자이며 부산국제영화제와 함께 부산광역시플래그십 행사로 불리고 있다.
지스타는 본래 1995년부터 2004년까지 열렸던 대한민국게임대전(KAMEX)을 잇는 게임쇼[3]로, 문화체육관광부경기도(2005~2008), 부산광역시(2009~)가 주최하며, 한국콘텐츠진흥원과 경기디지털콘텐츠진흥원(2005~2008), 지스타조직위원회와 부산정보산업진흥원이 주관하고 있으며, 한국게임산업협회에서 주최하고 있다. (출처: 나무위키)


며칠 고민하다 결국 오케이했다. 나는 초5 막내딸과 짝꿍, 아들은 친구 둘과 한 팀 따로 또 같이 가보자고 했다. 먼저, 숙소와 기차표를 알아본다. 그런데 이상하다. 평소보다 숙박이 비싸다. 부담스러웠지만 이미 가기로 했으니 폭풍검색으로 최적의 방을 찾는다. 기차표도 예매하고 숙소 예약사항과 1인 비용을 명시한 문서를 작성해서 아들에게 보낸다. 친구들 부모님께 공유하고 허락받아서 알려달라고 특명을 내리면서. 며칠 후, 친구부모님들의 문자와 오케 사인이 도착하고 여행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새벽 5시 기차

출발하는 날 아침, 아들은 새벽에 깨기 힘들다면서 친구 한 명과 꼬박 밤을 새웠다. 단출한 1박 2일 일정에 잠도 못 자면 안 될 것 같다고 말했지만 내 말을 고분고분 들을 분들이 아니다. 5시 40분 기차라 새벽 4시에 깨우러 같더니 대낮처럼 텐션이 업되어서 준비 다 되었다고 걱정 말라고 큰소리를 친다. 아빠찬스로 차를 타고 빠르게 기차역에 도착. 화장실도 가고 간식도 사고 기차 탈 준비 완료하고 드디어 출발이다.


아침 9시, 국밥으로 든든하게

부산도착! 초고속 기차라 3시간도 안 돼서 부산역에 도착했다. 내리자마자, 숙소로 출발. 호텔로비에 짐을 맡기고 홀가분하게 아침 먹으러 출발한다. 호텔 근처에서 풍기는 구수한 곰탕 냄새, 그 향기가 너무 진해서 무엇에 홀린 듯 지도 검색도 안 하고 그곳을 찾아간다. 국밥 네 그릇을 시키고 잠시 후, 영접한 그 맛은 과연 원초적 후각을 자극해서 사람을 유인할 정도로 국물이 진하고 고소했다. 아들들은 엄지 척을 하면서 열정적으로 국밥 한 그릇을 흡입한다. 뽀얀 국물에 밥을 말아서 시큼한 깍두기 하나 얹어 씹으니 천상의 맛이다. 젓갈맛이 깊게 나는 겉절이 배추도 번갈아 얹어 먹으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밥 한 그릇씩을 뚝딱한다.



아들은 벡스코, 엄마는 미술관

지스타가 열리는 곳은 벡스코, 바로 그 앞에 부산시립미술관과 이우환 갤러리가 위치해 있다. 아들들은 벡스코로 나는 미술관으로 향한다. 작은 갤러리 앞에 너른 정원, 조각들이 위치해 있고 주변에는 신기한 차림을 한 사람들이 보인다. 그들은 게임페스티벌에 코스프레 참가자들 같다고 아들은 말한다. 신기한 볼거리들이 많아져서 더욱 재밌다. 이리저리 눈을 굴리며 실컷 구경한다.



밤바다 불꽃놀이

왜 부산 숙박이 비싸졌는지, 이곳에 오고 나서야 알았다. 광안리, 해운대 등에서 큰 불꽃놀이가 그날 있었던 것이다. 그걸 모르고 예약했으니 당연히 비쌀 수밖에. 광안리가 주요 무대인 불꽃놀이를 보러 가려다가 사람도 차도 많아 움직이기 힘들 것 같은 예감에 일찍 숙소에 들어와 저녁을 먹고 쉬었다. 산책 삼아 저녁 밤바다를 감상할 요량으로 숙소 앞 해운대 바닷가를 휘적휘적 걸어본다. 그런데 사람들이 유독 한 곳으로 모여드는 것이 보여 나도 따라가 본다. 잠시 후, 후둑후둑 소리와 함께 불꽃놀이가 시작된다. 뜻밖의 행사에 잔뜩 신이 나서 아들들을 불러내보지만 요지부동이다. 두세 번 설득하다 결국 포기, 뜨거운 분노의 기분이 올라오지만 마법의 주문을 왼다.



그럴 수 있다.
그럴 수 있다.
그럴 수 있다.



주문을 세 번 정도 되뇌니 마음이 조금 편해진다. 결국 딸과 나만 불꽃놀이를 실컷 봤다. 바다 위 불꽃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처음에는 동백섬 끄트머리에서 살짝살짝 보이던 불꽃이 점점 중앙으로 이동해서 마지막에는 해운대 바다 위 정면에서 화려한 자태를 뽐내주었다. 기대하지 않았던 황홀경을 마음껏 즐기고 나니 왠지 로또에 당첨된 것 같은 행운을 얻은 기분이랄까. 큰돈 쓴 보람 있다 합리화하며 뿌듯함을 즐겨본다.


아침은 오마카세, 커피는 해변에서

오마카세형 조식

다음날 아침, 아들들을 소환해 밥을 먹인다. 어제 뭐했냐고 물어보니 7~8시부터 잠들었다고. 그도 그럴 것이 잠을 안자고 출발했으니 많이 피곤했을거다. 그래서 밤에 자라고 그렇게 얘기 했건만...하나마나한 얘기라 패스하고(스스로 칭찬해^^). 그저 뜨끈한 밥을 준비해본다. 애미로서 그 많은 할 일 중에 그저 잘 먹이는 것이 단연 으뜸이다.(실은 다른 것들은 다 거부한 탓도 있지만) 기본에 충실하기로 마음먹으니 오히려 편하다. 지난 저녁에 먹었던 회세트에 딸려온 매운탕을 데우고 김치와 어제 먹다 남은 치킨도 내준다. 뜨끈하게 데운 국물을 바로 떠 주고 그 국물에 라면도 추가해 즉시 서빙한다. 마치 조식 오마카세처럼. 엄마표 조식은 소박하지만 친근한 맛이 있다. 주는 대로 따박따박 받아먹는 아들들의 모습이 사뭇 귀엽다. 덩치는 커도 아기 같은 모습에 엄마미소가 절로~


휘리릭 치우고 정리해서 체크아웃을 하고 밖으로 나간다. 엄마는 성당으로 아이들은 바다로 ~ 미사를 마치고 다시 도착한 바다는 여전히 눈부시다. 떠나기 전 다시 한번 해변모닝커피에 도전한다. 저 멀리 아들들이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즐기는 커피 맛이란~


아이들은 바다에서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두 시간 넘게 놀았다. 핸드폰도 안 보고 그 긴 시간을 바다만 보면서. 시커먼 아들 셋의 소박한 수다가 이뻐 보이는 건 왜일까, 휴대폰이 점령했던 그들의 세계가 바다로 바뀌었다는 안도감 때문이었을까. 어릴 적 뭔가 대단한 장난감 없이도 산에서 들에서 바다에서 몇 시간씩 뛰어놀던 아이의 모습을 다시 보게 된 반가움 때문일까. 거기서 더 놀고 싶다는 아들의 말에 그냥 그렇게 더 기다려주었다. 그날따라 홀짝홀짝 마시는 커피맛이 유난히 달게 느껴진 건 왜일까.


깊고 푸른 바다를 뒤로 하고 다시 기차를 타러 갈 채비를 한다. 푸드덕푸드덕 날아가다 해변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갈매기들 모습이 보인다. 아들 셋, 딸 하나 부산 바다와 갈매기들이 함께 했던 짧은 여행, 나의 마음을 다잡는 마법의 주문은 세 번 정도 외친 비교적 평화로운 여행이었다. 언젠가는 자유롭고 편안하게 날아다니는 갈매기처럼 분노도 노여움도 없이 자신만의 세상을 찾아 날아오를 아들들의 도약을 기도하며 아쉬운 발걸음을 옮긴다.




#라라크루13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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