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생활을 영위해 나가는 목적은 사람마다 다양하겠지만 내 생각에는 가장 큰 목적은 뭐니 뭐니 해도 임금이다. 우리가 매달 받는 월급은 사실상 일정하게 정해져 있다. 또한 ‘월급은 통장을 스쳐갈 뿐’이라는 말이 있듯이 월급은 별로 남는 게 없다. 따라서 월급날은 그다지 큰 감동이 없다.
월급쟁이들은 임금의 플러스 알파인 성과급이 초미의 관심사다. 성과급을 받아서 쓰게 되는 용도는 각자의 경제 사정마다 다르다. 경제 사정이 넉넉한 사람은 보통 차를 바꾸고 나같이 대출이 있는 사람은 대출 총량이 줄어드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어쨌든 연말에 받는 성과급을 통해 일 년을 보상받는 뿌듯함을 느끼게 된다.
요즘 언론에 가끔 등장하는 반도체 회사들의 어마어마한 성과급은 평범한 월급쟁이들의 부러움과 박탈감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언론에 나오는 엄청난 성과급과 나의 초라한 성과급을 비교하면서 자연스럽게 신세한탄을 하게 된다. 보통 아내 주변 친구들 중의 남편 한 두 명은 어마어마한 성과급의 주인공이다. 그리고 성과급을 받은 주인공들의 신차 구입, 여행, 여러 가지 회원권 구매 등 반갑지 않은 소식이 들려오게 된다. 그때부터 인생에 대한 후회와 회의 등이 밀려들고 내 눈은 어느새 스마트폰의 주식 창을 보고 있지만 수익률 하락만 찍혀있는 내 종목 계좌를 보며 더 깊은 한숨을 짓게 된다. 그리하여 ‘돈은 안 쓰는 것이다’라는 격언을 떠올리고 아내에게 얘기해보지만 돌아오는 것은 결국 깨져버린 평화밖에 없다.
성과급은 회사 실적과 직결되는 것이므로 직원 개개인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업황도 무시할 수 없다. 내가 속했던 첫 직장은 불행히도 업황이 좋지 못했다. 이익이 잘 안나는 회사였다. 계열사 중에서도 성과급이 짜기로 유명했다. 그렇다고 일이 편한 것도 아니었다. 고생하는 것으로 치면 성과급 잘 나오는 계열사 못지않았다. 직원들의 불만이 커져가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러한 배경도 나중에 이직을 결심하게 되는 원인 중 하나였다.
새해 첫날이면 경영설명회에서 늘 하는 얘기가 있다. 올해는 사상 최대의 위기라는 것이다. 매년 위기가 아닌 적이 없었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는 것이다. 회사가 망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위기라는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회사도 망하지 않았고 별일도 없었다. 이러한 위기감을 고취시키는 문화가 우리나라 기업의 경쟁력의 원동력이라는 것은 이해한다. 실제로 위기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직원 입장에서는 이러한 명분을 내세워 임금을 줄이려는 수작으로 밖에 보이지 않아서 늘 달갑지 않은 말이었다.
그러한 상황 속에 입사 3년 차쯤에 성과급이 지급된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가뭄에 단비가 내리듯 반가운 소식이었다. 사람들은 들떠 있었다. 처음 받아보는 성과급에 나도 또한 들뜬 마음이었다. 언제나 소문은 과장된다. 어마어마한 성과급이 나올 것이라는 대중의 기대와는 달리 기대에 못 미치는 성과급이 지급되었다. 하지만 그게 어디인가 싶었다. 어쨌든 감사한 마음으로 성과급을 받았다. 돈을 쓰지는 못했다. 돈을 받아도 쓸 줄 몰랐던 것 같다. 그냥 맛집 가서 맛있는 거 한 번 먹은 걸로 끝내고 그 돈은 고스란히 어머니 통장에 들어갔다.
돈은 무엇일까 하는 철학적인 질문을 하게 된다. 돈이 많으면 미래에 대한 불안감 해소 및 든든함, 정신적 우월감 등을 얻을 수는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정신적 훈련을 통해 이러한 문제를 극복한다면 돈이 좀 적으면 소고기 먹을 거 돼지고기 먹으면 되고, 그것도 안되면 라면 먹으면서 살면 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돈이 없어도 가고 싶은데 웬만한 곳은 가볼 수 있는 선진국 대한민국 아닌가. 하지만 이것도 가족이 생기면 전혀 다른 문제가 되는 것 같다. 나한테 쓰는 돈은 얼마든지 아낄 수 있어도 가족에게 쓰는 돈은 절약하기가 극한 상황에 닥치지 않는 이상 거의 불가능하다. 이러한 돈에 대한 문제가 요즘 저출산의 근본 원인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