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하마터면 석사를 5학기 할 뻔했다.
석사 졸업
취업 성공이 결정되자 쓰고 있던 IEEE 학회 논문 완성에 대한 의욕이 현저히 떨어졌다. 그렇다고 대충 쓴 건 아니지만 꼭 되어야 한다는 간절함으로 쓰지도 않았다. 실험 위주인 옆 연구실은 IEEE 논문이 팍팍 나왔다. 열심히 실험해서 결과를 잘 정리하면 석사 때만 해도 SCI급 논문 몇 개는 쓸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 연구실 분야는 달랐다. 소위 고인 물 학문이라고 해야 할까. 이론 위주의 오래된 학문이기 때문에 SCI급 논문 쓰기가 쉽지 않았다. 물론 내 실력이 부족해서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 쪽 분야가 대체로 그랬다. 그래서 그런지 논문 쓰기가 더 어려웠던 것 같고 논문 퀄리티가 나오질 않았다.
내 논문에 대해 신임 교수님이 리뷰하시고 “너 정신 나갔냐!”라고 이야기하신 것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우리 연구실과 옆 연구실의 장단점은 명확했다. 옆 연구실은 성과 내기는 좋은 대신 일이 힘들었다. 우리 연구실은 성과 내기는 어려운 대신 일이 편했다. 내 목표는 단순했다. 석사 동안에 편하게 있다가 취직하는 것이었다. 그런 면에서 우리 연구실은 최적화된 곳이었다. 회사 간다고 SCI 논문 실적을 알아주지는 않으니까. 왜냐하면 회사는 내 전공과 전혀 다른 분야의 회사였기 때문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인생에 장기적인 콘셉트나 플랜 따위는 없었던 것 같다. 단지 임기응변으로 가장 편한 길을 선택하기 위해 노력했었다. 공학 용어로는 optimal solution 정도 아닐까? 그러던 어느 날 교수님께서 당황스러운 말씀을 하셨다. 작성하던 논문을 완성하고 졸업하기 위해 1학기 더 있다가 졸업하라는 것이었다. 즉, 석사 5학기를 하라는 것이었다. 듣도 보도 못한 석사 5학기였다.
너무나 당황스러웠지만 침착하게 대응했다. 지금 회사에 취업된 상태이고 대체 복무이기 때문에 1학기를 더하면 군대에 끌려간다는 내용으로 교수님께 말씀드렸다. 결국엔 교수님 설득에 성공하고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다. 그 당시 교수님은 정년을 얼마 안 남겨두신 학회에서 아주 높은 위치의 교수님이셨다. 그래서 그런가 연구 의욕이 젊으실 때만 못하다고 박사 과정 형들의 불만이 많았다. 나에게는 그 점이 오히려 고마울 뿐이었다. 교수님의 저하된 의욕으로 나의 논문에 대한 포기가 빨랐던 것 같다. 그래서 다행히(?) 졸업하고 무사히 회사에 입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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