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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dro Nov 09. 2021

6. 하계 수련 대회

내가 신입사원이었던 2006년에는 신입사원을 한데 모아 여름에 ‘하계 수련 대회’라는 행사를 개최했었다. 요즘은 코로나 시국인 데다가 기업 문화도 예전 같지 않아서 ‘하계 수련 대회’ 같은 유형의 행사를 축소하거나 폐지하는 회사가 많은 것 같다. 하지만 그 당시는 회사에서 ‘하계 수련 대회’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각 계열사 별로 약 1달간의 훈련(?) 기간을 거쳐 1주일 정도 되는 기간 동안 그룹사 신입사원 전체가 모여 ‘하계 수련 대회’를 성대하게 개최하였다.


1달 동안 훈련하는 것은 바로 ‘매스 게임’이었다. 전체 그룹사 신입사원을 계열사 별로 5 그룹으로 나누어 각 그룹 당 카드 섹션 매스 게임을 연습하여 그룹 별로 우열을 경쟁하는 방식이었다. 카드 섹션 메스 게임은 몇 백 명이 모여 각 인원 별로 할당된 스케치북 만한 큰 색종이를 타이밍에 맞게 접었다 폈다 하면서 전체적으로 움직이는 화면을 만드는 작업이다. 각 개인은 픽셀이었고 어느 한 픽셀이 틀리면 전체 감독하시는 분이 몇 열, 몇 행의 픽셀의 오류를 날카롭게 지적하며 공포 분위기에서 연습을 했었다.

매스 게임 완성을 위해 우리 신입사원들은 4주 동안 합숙하며 엄청난 고생을 했었다. 처음에는 일하라고 사람 뽑아 놓고 이게 뭐하는 짓인가 하는 반발심이 매우 컸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힘드니까 그런 걸 생각할 여력도 없었고 그냥 하계 수련 대회나 빨리 끝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X튜브에서 ‘하계 수련 대회’ 동영상을 찾아보니 그 당시 매스 게임 동영상을 볼 수 있었다. 역시 그 당시 동영상을 보니 북한 뺨치게 절도 있는 실력을 보면서 추억에 젖는 한편 굳이 이런 고생을 해가며 했어야 했는지 지금도 상당히 납득이 되질 않는다.


지금 생각해 보면 회사에서 신입사원들에게 심고자 했던 가치는 아마 ‘단결력’이 아니었나 싶다. 그 당시는 제조업 기반인 우리 회사의 경쟁력은 일사 분란함과 스피드였다. 선진국에서 시행착오를 통해 닦아놓은 기술 루트를 최대한 빠르게 따라잡기 위해 빠른 실행력과 선진국의 두배는 일해야 하는 근면성이 필수였다. 어쩌면 후발 주자의 비애였지만 이러한 방식을 통해 선진국의 성취를 따라잡은 나라는 우리나라와 중국 정도이고 다른 나라는 성공 사례가 없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므로 우리나라 국민들이 그러한 노력 덕분에 이 정도 누리고 산다는 고마움을 가지고 있다. 나는 한창 회사가 선진국 회사를 따라잡기 위해 전력 질주를 할 때 입사를 했고 전력 질주에 필요한 소양을 갖추기 위해 그러한 군대식의 매스 게임 훈련을 받은 것으로 지금은 이해를 하고 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생각이 들 리가 없었고 단지 높으신 분들 재밌으라고 이용당하는 꼭두각시 느낌이었다. 요즘은 우리나라 회사들이 선진국의 성취를 많이 따라잡았고 더 이상 벤치마킹 대상을 찾기 힘들기 때문에 창의성과 개성이 예전보다는 존중을 받은 문화로 바뀌어 나가고 있다. 그래서 옛날 방식의 집단 문화와 집단 성취 방식이 공감을 얻기 힘들고 그런 ‘하계 수련 대회’ 같은 훈련 방식이 이어지기 힘든 것 같다.


회사는 그 당시 몰개성의 집단주의 행사를 통해 원하는 것을 얻으려 했고 그에 대한 성과는 결국에 돌이켜 생각해 보면 성공적이었다. 그때의 빡센(?) 훈련 방식은 업무 진행 형태에 있어서도 그대로 녹아들었던 것 같다. 회사가 ‘시작’을 외치면 각 팀별, 파트별로 각자의 역할에 맞게 목표 달성을 위해 밤낮없이 일에 몰두했다. 그 당시는 사회 전체적으로 업무 강도가 굉장히 셌던 시기였다. 그러한 사회 분위기의 와중에서도 우리 회사는 업무 강도가 매우 높기로 악명이 높았다. 회사는 그러한 분위기와 문화를 ‘하계 수련 대회’라는 대규모 행사를 통해 초석을 다져 놓고 그룹사 전체 사원의 정신 무장을 시켰다. 그리고 그러한 회사 방향에 충실하고 적극적일수록 회사 내 성공 가도가 보장되었다. ‘하계 수련 대회’를 마친 나는 회사 내의 나의 성공 가능성을 직감하게 되었다. 바로 조직에서 성공할 유형은 아님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회사 밖에서 생존할 만한 대단한 능력도 없었다. 그렇다면 선택지는 하나였다. 즉, 가늘고 길게 회사에서 살아남는 수밖에 없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가늘고 길게 회사에서 생존하는 것 역시 경쟁이 치열하고 결코 만만한 길이 아니다. 관리 능력이 우수한 회사일 수록 회사는 직원 개개인을 놀면서 월급 받게 두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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