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애는 최악의 조직 관리 방법
뭐든지 처음 겪게 된 것에 대한 인상이 가장 강하게 남는다. 첫 직장에서 처음 겪게 된 부서와 부서원이 15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때는 그 부서원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굉장히 많이 받았고 지금 돌이켜 생각해봐도 여러 가지로 스트레스받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던 것 같다.
우리 부서의 구성은 부장(수석)급 부서장님, 과장(책임)급 한 분, 대리급 두 분이었다. 부서장님은 국내 유명 공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입사하신 회사에서 키워주는 인재였다. 판단력이나 이해력이 빠르신 분이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도 조직 관리 측면에서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었다. 바로 편애였다. 대리 두 분 중 한 분을 지나치게 편애했다. 과장님과 대리 두 분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겠다. (편의상 대리 두 분을 대리 1, 대리 2(편애 대상)로 부르겠다.)
먼저 과장님은 하드웨어 설계 담당이셨다. 성격은 강하실 때도 있지만 나를 잘 챙겨주시는 편이었다. 조직 내에서 정치적인 성향은 별로 없었다. 전형적인 엔지니어 스타일이었다. 기술 개발에만 몰두하셨다. 회의할 때 보면 희한하게 직급이 더 높은데도 불구하고 대리 2에게 끌려가는 느낌이었다. 신입사원인 내가 봐도 바로 느껴졌다. 부서장님의 편애를 등에 없고 대리 2가 기세 등등하게 행동했다. 근데 과장님이 제어를 못했다. 성격도 강하고 나름 스마트하신 것 같은데 상황을 통제 못하는 것 같아서 많이 답답했다.
대리 1은 나와 같이 프로그램 개발 담당이었다. 그야말로 개발만 했다. 나랑 비슷한 스타일이었다. 딱 시키는 일만 했다. 묵묵하게 일만 하는 스타일이었다. 나를 아주 잘 챙겨 주었다. 걱정도 많이 해주고 격려도 해주었다. 나이는 대리 2보다 2살 많았는데 대리 2를 전혀 통제를 못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에게 티는 잘 안 냈지만 대리 2 때문에 많이 스트레스를 받는 느낌을 받았다.
대리 2가 요주의 인물이다. 업무는 FPGA의 핵심 로직을 개발하고 있었다. 그 당시 신입사원인 내가 받은 느낌은 굉장히 간교한 성격이었다. 권력 있는 부서장이나 임원에게는 간 쓸개 다 빼줄 것처럼 아부하고 자기보다 선배여도 이용가치가 없다고 느끼면 굉장히 공격적으로 굴고 무시하는 성격이었다. 후배 사원은 말할 것도 없었다. 조언한답시고 칼퇴근, 주말출근 문제, 윗사람(부서장)한테 싹싹하게 굴지 못하는 점등을 지적하며 나를 괴롭혔다. 물론 나는 무시했지만 그래도 괴롭히니까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과장님, 대리 1을 대놓고 무시했다. 대리 1이 없을 때 나한테 대리 1 욕도 많이 했다. 대리 1의 업무 결과가 자기 성에 차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리 2는 마치 회사 사장처럼 일했다. 좋게 말하면 주인 의식이긴 한데 부서장님한테 티 내기 위해 너무 오버하니까 보기가 너무 짜증 났다. 과제를 함께 진행하다가 자기 맘에 들지 않는 부분이 생기면 다른 부서원들한테 화도 많이 냈다. 그런데도 과장님, 대리 1은 같이 화를 내거나 하면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부서장은 수수방관 혹은 대리 2에게 힘을 실어 주는 느낌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조직 분위기가 개판이 되어가는 느낌이었다. 대리 2는 매일 부서장과 퇴근하고 술을 먹었다. 자기는 부서장과 죽을 때까지 함께 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자연스럽게 과장님과 대리 1이 같은 편이 되어 둘이 같이 술을 먹었다. 조직이 둘로 갈라졌지만 힘의 균형은 절대적으로 부서장 쪽이었다.
결과적으로 과장님, 대리 1은 시차를 두고 이직했다. 물론 표면적인 이유는 더 좋은 조건으로 이직한다고 했지만 대리 2가 없었어도 이직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정의는 없나 보다. 대리 2는 그룹이 원하는 인재였다. 몇 년 뒤 얘기지만 대리 2는 본사에 픽업되어 해외 근무도 하고 아주 잘 나갔다. 부서장님과 영원히 함께 하겠다는 말은 거짓말이었다. 회사에서 성공하려면 저런 식으로 살아야 하나보다 하고 생각했다.
대리 2도 마음에 안 들지만 편애하는 부서장님이 더 싫었다. 아무리 대리 2가 자기 마음에 들고 다른 사람들은 자기 성에 차지 않는다고 대놓고 조직을 그런 식으로 이끌어 가는 것에 대해 나는 정나미가 떨어졌다. 그 이후의 얘기지만 부서장님도 처음의 기대치와는 달리 임원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그냥 그렇게 연명하는 정도였다고 나중에 들었다. 아마 조직 관리에 계속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그 당시 기회만 되면 그 부서를 탈출하기로 굳게 마음먹었다. 불행히도 당장 탈출은 실패했고 그 조직에서 2년 정도는 있었다. 그 부서에 있었던 나머지 이야기도 하나씩 풀 예정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정도로 어이없는 조직 상황은 내 인생에 다시는 없었다. 다시 말하지만 편애는 조직을 병들게 하는 가장 안 좋은 방식 중 하나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