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출처: 매일경제)
"회사가 전쟁터라고? 밀어낼 때까지 그만두지 마라. 밖은 지옥이다."(윤태호 '미생')
심리학의 대표적 관점 중에 행동주의 관점이 있는데 행동주의는 인간 행동 변화가 초점이다. 이 관점은 인간 행동은 외부 자극과 반응 사이의 결과인데 자극이 달라지면 반응도 달라질 수 있다고 전제한다. 행동주의 심리학이 우리 일상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학교에서의 교육과정 설계, 군대에서의 신병 훈련 방식, 매일 방송에서 접하게 되는 광고들 등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영역에서 행동주의 심리학 원리들이 적용된다.
행동주의 관점에서 볼 때 어떤 행동이 발생하고 유지되는 이유는 강화(Reinforcement)가 제공되기 때문이다. 이때 강화란 행동의 결과에 따라 제공되는 보상을 의미한다. 월급, 보너스, 칭찬, 마일리지 쿠폰 등은 모두 이러한 강화물인 셈이다.
한국 비즈니스 규칙
일한만큼 월급은 옛말
보상규모·시기 매번 변하는
'변동비율 강화 시대'로 성큼
그런데 이러한 강화를 제공하는 방식에 4가지 경우의 수가 있다. 우선 특정한 간격에 따라 보상이 뒤따르는지 아니면 특정한 비율에 따라 제공되는지로 구분할 수 있고 그러한 간격과 비율이 매번 고정적인지 아니면 변동하는지에 따라 구분할 수 있다.
첫째, 고정 간격 강화 조건은 정해진 시간 간격대로 행동에 대한 보상을 주는 것인데 예를 들어 월급, 고정식 과속 단속기 등이다. 이러한 강화는 완전 예측 가능하고 안정감을 제공한다. 반면 강화물(보상)을 받은 후 휴식이 가장 길다. 월급 통장은 한 달에 한 번만 확인하면 되고 과속 단속기를 지나자마자 더 이상 단속에 신경 쓰지 않는 상황과 동일한 것이다.
둘째, 변동 간격 강화 조건은 평균적인 시간 간격을 유지하되 매회 보상 시간을 바꾸는 것인데 그때그때 다른 것처럼 느껴지지만 평균을 내면 일정한 간격이 있다는 뜻이다. 버스 정류장에서 배차 간격이 10분이라고 적혀 있지만 10분마다 정확하게 오지 않는 상황을 떠올리면 된다. 버스가 방금 떠났는데 운 좋으면 1~2분 내로 다음 버스가 오고 운 나쁘면 20분 가까이 기다리는 상황을 말한다. 이 조건에서는 중간 정도의 안정된 반응 비율을 보인다.
셋째, 고정 비율 강화 조건은 시간이 아니라 횟수에 비례하여 보상을 주는 것인데 시급 아르바이트, 성과급제, 프리랜서 보상체계 등이 그것이다. 한마디로 일한 만큼 보상받는 것인데 짧은 시간 내 많은 행동을 하게 되고 강화(보상) 후 휴식이 짧다는 특징이 있다.
마지막 넷째, 변동 비율 강화 조건은 전체 평균은 유지하되 보상이 제공되는 규모나 시기는 매회 달라진다. 슬롯머신에서 잭팟이 터지는 비율은 이러한 변동 비율 조건에 의해 설계된다. 어떤 때는 10번만 당겨도 잭팟이 터지지만 어떤 때는 500번을 당겨도 잭팟이 터지지 않는다. 어떤 날은 하루에 2번 터지기도 하지만 어떤 때에는 일주일 만에 행운이 찾아온다. 하지만 전체 평균을 내보면 특정한 비율에 따라 강화(보상)가 주어지는 것이다. 몇 번이나 영업을 해야 계약을 따낼지 알 수 없는 세일즈가 이와 비슷하다. 당연히 변동 비율 강화 조건은 예측이 안 된다. 따라서 강화(보상) 후 휴식이 없고 중독과 몰입의 경험을 하게 되고 나아가 불안과 무기력을 일으킬 수도 있다. 앞서 제시된 "회사 밖은 지옥이다"라는 말은 이 변동 비율 강화 조건이 무자비하게 적용되는 세상이란 뜻이다.
이러한 4가지 강화 조건에서 사람들은 서로 다른 행동을 하게 된다. 공무원과 공기업에 대한 선호가 높은 이유는 그곳은 고정 간격 강화로 안정적이고 완전 예측 가능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대부분의 식당은 창업하고 1년 이내에 70% 이상이 문을 닫는다. 종업원에게 정해진 날짜에 월급을 못 주는 일도 흔히 발생한다. 하지만 분명히 대박 나는 식당도 존재한다. 결국 변동 비율 강화 조건이다. 이 변동 비율 조건에서는 모든 것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더 열심히 움직일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도박에 빠지는 이유도 이 때문이며 연예계의 작동 방식도 변동 비율이다. 연예인의 우울증이 기사화되는 이유도 변동 비율에서의 삶은 늘 경계에 서 있는 불안감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계속 쉬지 않고 페달을 밟아야만 하고 흔들리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변동 비율 강화 조건에서의 삶의 모습이다.
문제는 한국 사회 비즈니스 게임의 규칙이 급속도로 고정 간격에서 변동 비율 조건으로 이동했다는 점이다. 더 이상 철밥통은 없다. 아직까지는 안정적인 고정 간격 조건에 해당되는 영역들도 그리 길지 않은 시간 안에 변동 간격이나 고정 비율의 게임으로 바뀔 것이다. 따라서 당연히 스트레스가 극심하다. 잠깐 한눈팔면 곧장 나락이다. 사전에 기본값이 보장된 게임은 점점 존재하지 않는다.
좋아하며 잘 하는 것을 찾고
단점 보완보다 강점에 집중
성공의 길 걷고 있더라도
끊임없이 변화하려 노력해야
그렇다면 이러한 변동 비율 조건에서 잘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가장 기본적인 사항은 지금 자신의 게임 조건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 어떤 강화 조건에서 움직이고 있는지, 앞으로 어떤 강화 조건이 적용될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
둘째, 인간의 삶에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변동 비율 강화 조건이다. 이 원리를 알고 자연스러운 법칙으로 받아들여라. 조직을 떠나 홀로서기 하는 순간부터 게임의 규칙은 가장 안정적인 고정 간격 강화에서 가장 불안정한 변동 비율 강화로 바뀌게 된다.
셋째, 준비하라. 긴장을 늦추지 말고 늘 준비하고 대비하는 삶을 살아라. 변화를 모색하기 가장 좋은 시기는 모든 것이 잘돼 보일 때다. 고정 간격과 달리 변동 비율의 삶은 준비 없이 대처하면 큰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넷째, 강점에 집중하라.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을 찾고 강점과 재능에 집중하라. 단점을 보완하는 수준으로는 결코 변동 비율의 게임에 적응할 수 없다.
마지막 다섯째, 노력하라. 설령 내가 성공의 길로 가고 있을 때라도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라. 영원한 현상 유지는 없기 때문이다. 늘 나를 업그레이드하려고 노력하라. 그러지 않으면 퇴보할 것이다.
나는 지금 변동 비율 게임 조건에 앞서서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가? 스스로에게 계속 던져야 할 질문이다.
이 글은 저자가 소속된 트라이씨 심리경영연구소 공동대표 최윤식박사가 매일경제(회사밖은 지옥? 자기조건 따져보고 준비하라 [트라이씨 기업심리학] - 매일경제 (mk.co.kr), 2023.09.07)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