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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nd Poem Jul 29. 2015

영동선 간이역에서 내리면

 



하루 한 번

영동선 밤 열차는 10시 24분에 떠난단다

강원도 도계 즈음 작은 간이역에서

무작정 내려 기차를 떠나보내자.



폭설로 마을 길도 끊기고

형광등 껌벅거리는 텅 빈 대합실에서

불씨 수그러진 난로를 지키며

아침을 기다린다.



약속하지 않았지만

하행선 기차가 거친 입김을 내쉬며

잠시 섰다 떠난 자리에

거기 기적처럼

당신이 목도리를 흔들며 서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안부 대신

어깨에 쌓인 서로의 세월을 털어내 주며

빙그레 웃을 것 같다.



허리까지 빠지는 새벽 눈 밭을 헤치고

겨우 닿은 인가에

운 좋게도 수더분한 노부부가

휘둥그레 아랫목을 내주며

화롯불을 뒤집어 주었으면.



기쁨도 잠시

어깨에 기대고 잠이 든

여윈 당신을 지켜보다

산너머 컹컹 소리가 잦아질 무렵

문득 떠나보낼 생각에

창 밖 눈 빛이 푸르게 아플 거다.



감사 인사에 손사래 치는

배웅을 뒤로 하고

느릿느릿 역사로 가는 길에

당신이 작은 손으로 내 등을 두드린다.



- 손님, 첫 기차가 곧 도착합니다.

올 겨울에는 유난히 눈도 많지...



쉰 목소리에 새우 잠을 깨어보니

늙은 역무원이 난로에 조개탄을 넣으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대합실에는 여전히 나 혼자였고

삐걱 이는 문 틈 사이로

에이는 싸리눈이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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