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에서 여름 나기
무더위, 잡초와의 전쟁 그리고 뒷 이야기
여름방학 기간을 이용하여 시골집에서 생활한다. 우리나라에서 여름을 보내기 위해서는 고온다습한 날씨와 전쟁을 치러야 하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도시에서는 문명의 이기인 냉방기를 켜고 여름 더위를 견디지만, 농촌에서는 집에 냉방기가 설치되었다고 해도 마을정자에 옹기종기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 꽃을 피우는 것이 일상이다(농사일은 땡볕을 피해 새벽 시간과 이른 아침, 그리고 오후 5시 이후에 한다). 농촌의 여름에 전쟁 상대는 무더위만이 아니다. 의외로 무서운 전쟁 상대는 잡초(잡풀)다. 뽑고 뽑아도 오뚝이처럼 일어나 또 자라는 것이 잡초의 근성이다. 습도가 80-90%를 오르내리는 날씨에 지루한 장마라도 겹치면 잡초는 며칠 만에 어른 허리까지 올라온다. 그야말로 우후죽순(雨後竹筍)이다. 비 내린 뒤 대나무 숲을 보라. 저자는 대나무 숲에서 죽순이 올라오는 기세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대나무 숲 여기저기서 죽순이 땅을 뚫고 오는 소리가 들린 듯하다. 밤 사이 10cm 이상 자란다고 한다.
저자의 집은 마을 입구에서 1km쯤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봄철에는 도로변에 야생화들이 피어 오가는 사람들을 반겨주지만, 여름철이 되면 온갖 잡초들이 주인 행세를 하며 도로 양쪽을 꽉 채운다. 자동차로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은 잡초가 얼마나 빨리 자라든 별다른 관심이 없겠지만, 저자처럼 걷거나 달리는 사람에게는 잡초가 안전에 위협 요소가 된다. 무엇보다 마을 입구에 잡초가 무성하면 마을 경관이 어수선하고 마을의 이미지도 좋을 리가 없을 것이다. 도시의 도로에는 보행자 도로가 별도로 있어 보행자가 자동차를 안전하게 비켜 통행할 수 있지만, 농촌 그것도 마을 단위의 도로는 자동차가 교행하기조차 불편하다. 도로변 잡초를 제거하면 되겠지 싶지만, 이 또한 여의치가 않다. 우후죽순의 기세로 자라는 잡초를 집안이나 논두렁, 밭두렁에서 제거하기도 바쁘고 힘든 마당에 마을 주민의 공용 공간인 도로변의 잡초, 나훈아의 <잡초> 가사의 한 구절 "한 송이 꽃이라면 향기라도 있을 텐데, 이것저것 아무것도 없는 잡초라네"를 누가 제거한단 말인가.
농촌에는 공동체 일을 하는 데 '울력'이란 미풍양속이 있다. '울력’은 순수한 우리말로 ‘여러 사람들이 힘을 합쳐하는 일’이다. 울력을 운력(雲力)이라고도 하는데, ‘많은 사람이 구름같이 모여 일을 한다’라는 의미다(요즘엔 농촌의 인구감소로 '운력'이란 말은 현실에 맞지 않게 되었다. 저자가 어릴 적 울력은 곧 운력이었다). 우리 마을에서도 가급적 농번기를 피하면서 필요할 때는 이장의 주도로 울력을 하지만 일 년에 서너 번 정도다. 고령사회답게 울력을 나온 주민들은 65세 이상의 노인이 대다수이다. 유모차를 밀고 와서 격려하는 90대 할머니도 계신다. 바쁜 농촌에서도 꼭 지키는 세시풍속이 있다. 음력 7월 15일 백중(百中)이다. 농기구를 놔두고 농사의 수고를 위로하고 풍년을 기원하는 날이다. 이날 우리 마을에서는 새벽에 마을회관 광장에 모여 마을 대청소를 한 뒤 인근 식당으로 옮겨 음식을 나누고 서로를 위로하는 행사를 거행하고 있다.
여름철 농촌에서 잡초가 작물의 성장을 방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논밭의 잡초를 몇 회나 제거해야 할까? 정해진 횟수는 없지만 최소 5회 이상은 해야 할 것이다. 잡초를 제거하고 비가 연거푸 내린 후에는 언제 그랬느냐 하듯이 잡초가 건재함을 자랑한다. 긴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고 시원한 바람이 불 때 논밭에 살랑이는 잡초를 보면 얼마나 얄미운 생각이 드는지 잡초와 씨름하는 농부들은 이해하고도 남을 것이다. '저놈의 잡초'라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어느 시인은 잡초를 "그 가치가 아직 발견되지 않는 식물들"로 정의내린다. 잡초 중에서도 그 가치를 인정받으면 잡초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자기 논밭의 잡초와 힘겨운 전쟁을 벌이는 마을 주민들이 도로변의 잡초를 제거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울력으로 마을 공동체 차원에서 잡초 제거를 해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울력을 하는 날을 기다리다 보면 잡초는 웬만한 나무키만큼 자라 도로 쪽으로 몸을 기댈 정도가 된다. 그 사이에 어떤 사고가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다.
장마전선이 정체하고 있는 틈을 이용하여 이웃에서 풀 베는 기계('예초기'라고 부르지만, 우리말에서는 풀베기 기계로 사용하길 권장한다)를 빌려 도로변의 잡초를 제거했다. 작업 도중에 소낙비가 내려 잠시 비를 피했다 멈추면 다시 시작하기를 반복했다. 요란한 기계 소리가 도로변 이웃에게 소음 피해를 주어 미안한 생각이 들었지만, 마을 주민의 공용 공간에 우거진 잡초를 제거한다고 하면 이해할 것으로 생각했다. 사실 농촌에서 아침저녁으로 들리는 소리는 농약 하는 기계와 풀 베는 기계에서 나는 소리다(큰 비가 온 다음 날 아침 농약 기계에서 나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다). 풀 베는 기계는 꽤 무거웠다. 장화를 신고 얼굴보호용 가리개 모자를 쓰고 작업을 했는데도 잡초, 흙, 돌 등의 부스러기가 작업자 쪽으로 튀었다. 세 시간 가까이 작업을 마쳤을 때 장화는 풀범벅이 되었고, 가리개 모자는 흙이 붙어 시야를 가리고, 양손은 경련을 일으켰다. 특히 기계의 무거운 부분을 잡고 있었던 오른손은 손떨림증 환자에게서 볼 수 있는 증상을 보였다. 농촌에서의 일이란 쉬운 일이 하나도 없는 것 같다(이 세상에서 가장 신중하게 해야 할 말은 '시골에 가서 농사'나' 지어볼까'이다. 아무나 농사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다음날 어제 잡초 제거 과정에서 생긴 부스러기 잡초를 치워야 했다. 전날 내린 소낙비로 잡초 부스러기가 아스팔트에 젖은 상태로 뒤엉켜 있었다. 오후에 비가 개고 젖은 잡초가 어느 정도 말랐을 때 빗자루로 쓸었다. 젖은 낙엽을 쓸어내는 일은 마른 낙엽을 쓰는 일에 비해 몇 배의 힘이 들었다. 쓸고 또 쓸어도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많은 양의 젖은 잡초를 이렇게 오래 쓸어보기도 처음이다(젖은 낙엽을 쓸면서 혼자 웃었다. 우슷개 소리로 인생의 어느 시기를 '물에 젖은 낙엽'에 비유한다. 직장에서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구조조정이나 명예퇴직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끝까지 버티는 경우도 물에 젖은 낙엽에 비유한다. 어디 그뿐인가. 남자가 정년 뒤에 사회적 효용이 떨어져 삼시 세 끼 밥 걱정할 때도 젖은 낙엽에 비유한다. 껌딱지처럼 버텨야 하는 인생을 비유하는 말이지만 어딘지 씁쓸하다).
빗자루로 젖은 낙엽을 쓸고 있는데 산에 가는 이웃 형님이 "어제 자네가 풀을 베었는가?" "네, 기계 다루는 것이 서툴러 말끔하게 정리되지 않아 빗자루로 쓸고 있습니다." "나는 군청에서 나온 사람이 마을 길을 정리한 줄 알았네." 이웃 형님은 작년 도시에서 우리 마을로 이주한 분이다. 형님의 말씀을 드고 나서 '저런 생각이야말로 도시적이구나'라는 생각을 해봤다. 도시 사람들은 모든 일을 '돈'을 매개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도시 사람이라면 시민의 공공서비스는 대가를 받는 사람이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맞다). 울력을 하는 날도 아닌데 마을 사람이 자발적으로 그렇게 넓은 면적의 잡초를 제거한다고 생각하지 못하셨나 보다. 수고의 대가를 받고 일을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빗자루 작업이 거의 끝날 때쯤 우리 마을에서 태어나 축산업을 하며 인근 도시에서 출퇴근을 하는 형님이 말을 걸어왔다. "고생하네. 오늘 저녁에 비가 많이 온다는데 쓸고 있는가. 비가 오면 다 쓸려갈 텐데......" 농촌에서 나고 자란 원주민의 생각이다. 쓸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정리가 될 것인데 굳이 힘들게 이 더운 여름날 빗자루질을 하느냐이다. 저자는 그 형님들의 말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는 동생이 안쓰러워하는 모습을 보았다.
도시에서 이주해 온 분이나 우리 마을에서 평생 살아온 분의 말이 맞다. 마을 주민과 외부 사람들이 이용하는 도로변 잡초 제거는 면단위에서 사람을 사서 할 수도 있고, 큰 비가 와서 자연스럽게 잡초 부스러기가 쓸려 갈 수도 있다. 문제는 언제 누가 하느냐이다. 만약 산책을 나온 주민이 도로를 걷는데 잡초 숲에서 나온 뱀을 보고 놀라 마주 오던 자동차에 치이는 사고라도 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별도의 보행자 길도 없는 상황이 아니던가. 저자가 도로변 잡초 제거를 했다고 자화자찬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가 발견되면 누구든 해야 한다. 그 '누구'는 개인이 될 수도 울력이 될 수도 관주도가 될 수도 있다. 문제를 발견하거나 인식하긴 쉬워도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공동체의 안전에 위협이 문제가 있다면 즉각적인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우리 삶은 타이밍의 예술이다. 인생이 야구라면 주자가 1루 또는 2루에 있을 때 적시타를 때려 홈으로 불러들이는 이치다. 길게 뻗은 도로변이 말끔해진 모습을 보면서 자족(自足)하며 노년을 즐기는 나의 모습을 미리 본다. 안빈낙도(安貧樂道)란 결코 소극적 자족이 아닌 적극적 자족이요 실행이다. 지행합일이나 언행일치의 실천 현장은 바로 우리 주변에 있다. 무더위와 잡초와의 전쟁을 치르며 터득한 철학의 편린이다.